이는 의사들이 생각하는 올바른 의료와 현실에서의 괴리감과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영난 등이 원인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보니 3년 마다 치러지는 의사협회장 선거 때 마다 누가 더 투쟁의 구호를 강하게 외치는 가하는 것이 투표의 관건이 되곤 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투쟁의 구호와 함께 꾸준하게 나오는 이슈 가운데 하나가 의협의 정치 세력화다. 이 두 가지 화두가 맞물려서 2000년 이후 지금까지 의협의 지향점이 되고 있는데 생각해보면 과연 투쟁과 정치 세력화라는 말이 의사들에게 무슨 의미인지를 심도 있게 논의해 본 적도 없고 자신 있게 내세울 논리도 만들어 진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사회는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의협은 변화하는 사회에 맞는 논리의 진전 없이 오로지 투쟁이라는 구호 일색으로 지내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의약 분업 이후 일부 의사들은 사회 속에서의 의사 상이 잘 못 되어 있음을 알았고 의료계와 사회와의 소통의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소통하려는 시도를 했었다.
반면에 또 다른 부류들은 어차피 사회를 움직이는 힘은 정치고 정치인들의 속성 상 표만을 의식하기 때문에 강한 투쟁을 통해서만이 올바른 의료(?)를 정착시킬 수 있다는 강한 투쟁 논리에 더욱 매진했었다. 현 집행부의 경우 역시 투쟁의 연장선에서 갈수록 경쟁은 치열해지고 반면에 수입은 저하되는 의료 환경에 심한 자괴감을 느끼는 의사들의 염원을 바탕으로 출발을 했다.
원천적으로 모순 된 건정심 구성을 지적 한 후 탈퇴를 선언했고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병협과는 결별 했으며 복지부와는 대화를 거부한 지 오래다. 과정은 호기 있고 멋있었는데 결과도 과연 그럴까?
우선 건정심과 복지부는 아쉬울 게 없다는 분위기다. 약간의 불편함은 있지만 말이다. 병협 또한 찜찜하지만 마찬가지의 모습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부는 포괄수가제의 시행과 같은 의료계로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문제를 들고 나왔고 지난 여름 온 나라가 한동안 이 문제로 갑론을박의 과정을 거쳤었고 결과는 모 정치인의 등장과 함께 의협이 승복함으로써 너무도 싱겁게 정부의 승으로 끝났다.
그 후 의협은 민주당 경선에 회원들을 참여시키고, 의사 가족 대회를 여는 등 이런저런 행사를 통해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는데 번번이 결과는 신통치 않았던 것 같다. 그러더니 결국 파업이라는 투쟁의 카드를 내 놓기에 이르렀는데 문제는 이 또한 그다지 결과가 좋을 것 같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투쟁은 목표가 될 수가 없다. 목표는 결국은 협상일 것이다. 모든 것이 그렇지 않을까? 싸움 그 자체가 목표가 될 수는 없을 텐데 의협은 원래의 목표를 찾지 못한 채 투쟁이라는 구호 속에 메몰 되버린 느낌이다. 왜 그런가 하면 협상을 목표로 했다면 전개되어 가는 과정이 일관성이 있어야 했고 논의 가능한 뚜렷한 쟁점이 있어야 했고 그리고 대상이 명확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 보면 파업 투쟁이라는 카드에 회원들이 더 당황하고 어리둥절해 하고 있으며 정작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병원계는 전혀 깜깜하다는 것이다. 개원가만의 투쟁이란다. 병협과 이미 각방 쓰기로 한지 오래다보니 정작 중요한 시점에서 그들의 협조를 구하기가 어려웠을 것은 이해하지만 투쟁을 한다면서 개원의만 참여하는 그런 투쟁이 어디 있을까.
게다가 들고 나온 이슈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닌 해묵은 문제들이라 국민의 관심사도 아니며 정확하게 타깃을 잡기도 어려운 그런 논리들이다. 대상을 복지부라고 하기도 궁색하다. 결국 투쟁을 위한 투쟁을 하는 모습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제 우리 사회에서 투쟁으로 해결을 볼 수 있는 문제를 안고 있는 집단은 몇 안 된다고 본다.
의료계?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계는 투쟁에 몰두하고 있다. 현명한 것인지 아니면 시대착오적인 생각인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전 의료인들이 동의하지 않은, 회원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일방적인 투쟁은 결코 좋은 결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다. 보여주기 위한 투쟁이 아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