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삶에 인문학적 접근이 갖는 의미
장성구 교수(경희대 의과대학)
2014.06.15 20:00 댓글쓰기

의과대학을 다니던 1970년대 초중반 우리나라 의학교육의 방법론을 지금과 비교한다면 하나의 전설과 같은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거의 졸업 학년이 돼서야  비로소 강의실에 나타나기 시작한 획기적인 교육 재료 중 하나가 원격조정이 가능한 환등기(projector) 정도였으니, 나머지 상황은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처럼 강의 내용을 요약해 인쇄물로 나누어주는 일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고, 강의하시는 교수님이 교단에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초스피드로 구연을 하면 학생들은 오로지 노트에 모든 것을 받아 적는 것이 전부였다.

 

미처 받아 적지 못한 부분은 옆줄을 좍 그어놓았다가, 쉬는 시간에 그 부분을 받아 적은 학생의 노트를 빌려 채워 넣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내가 받아 적지 못한 부분은 대부분의 학생들도 받아 적지 못해서 애를 태운 웃지 못할 경우도 있었다.

 

한번은 경상도가 고향이신 교수님께서 한참 강의하시다 보니 당신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는 학생은 한 명도 없고, 모든 학생들이 책상에 머리를 처박고 열심히 필기만하고 있는 것이 답답하셨던 모양이었다.

 

서슴없는 사투리로 “이과대학생은 기림(그림)도 기리고, 시도 쓰고, 가끔 나발도 불어야 한다 아니가”라고 외치셨다. 물론 교수님의 이 말씀을 거의 모든 학생들이 그대로 노트에 받아 적었다.

 

그 당시는 분명 하나의 해프닝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여러가지 깊은 의미를 생각해 볼만한 일이며, 교수님께서 무슨 뜻으로 말씀을 하신 것인지 조금은 이해가 될 듯하다.

 

진료와 학업 정진에 바쁜 나날들…의료계 자화상은?

 

이렇게 하루하루를 정신없 보냈던 것이 의과대학 학창 시절이고 그 뒤에 이어진 수련 과정 역시 스스로의 존재감이란 찾아볼 수 없는 삶이었다.

 

환자 진료와 논문 발표, conference 등 의학과 의술에 삶의 모든 것을 걸고, 그곳에 파묻혀서 인생을 잃어버린 채 인생을 살아 왔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살아온 의사들의 가슴과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과연 어떤 것일까?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의료 일선에서의 사투(死鬪)는 마치 강호(江湖)에 달랑 던져진 오리알 정도의 하찮은 존재임을 인식하는 순간의 허탈함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감당할 수 없게 밀려오는 사회적 책임은 의지할 난간 없이 벼랑 끝에 서있는 초라한 지사의 모습이다.

 

이제는 한 발 물러서서 나 자신과 내 주위를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게 됐다. 환자에 대한 진단 및 치료 행위는 태생적으로 침습적(invasiveness)이며 동적(movable)인 것이기 때문에 의사들은 평생을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걸어야만 하는 운명체이다.

 

여기에서 오는 일종의 스트레스는 참으로 큰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내 주위에는 의사면서 음악, 미술, 문학 활동에서 거의 전문가 수준의 경지에 도달한 의사들이 많다. 참 부러우면서도 권장할 만한 의사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의학과 예술, 동일선상에서 접근해야

 

어떤 의미로 보면 의학과 예술은 본질적으로 같은 선상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의성(醫聖)으로 추앙받는 Hippocrates는 그의 총서(후학들이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에 아주 유명한 말을 했다. 

 

Life is short, Art is long. 물론 이것이 후세에 완전 오역이 되어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시대적 배경과 역사성을 고려하여 제대로 변역한다면 “인생은 짧고, 의술은 길다“가 맞을 것이다.

 

왜냐하면 총서의 1장 1절에 “인생은 짧고, 의술은 길다. 기회는 흘러간다. 실험은 위험하고, 결정은 어렵다. 의사는 자신이 보기에 올바른 일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또한 환자와 조수와 외적 요소들의 협조를 이끌어 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라는 말이 나온다.

 

Hippocrates 총서가 누구에 의하여 쓰여 졌던 간에 이 내용은 기원전 1세기 때의 기술이다. 이쯤 되면 Art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알만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 격언과 같은 내용을 현대 의학의 기준으로, 의사의 생활 지침서로 정한다 하여도 하등의 문제가 없을 만큼 위대한 내용이다.

 

당시에는 Art라는 말이 의술, 기술, 예술로 혼용됐을 것이다. Art라는 한 단어가 갖는 의미를 어원의 원초적 연관성만을 우회적으로 해석한다면 “의사는 평생을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 속에 살아가야 하니까 예술을 가까이 해라” 정도로 유추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의사들이 예술을 겸비한다면 분명 의사들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여 줄 수 있는 일임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의사들에게 천부적 재능이 어느 정도 있어야 가능한 음악, 미술, 문학에 입문하라는 것을 권고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마음의 어느 한구석에 나 스스로를 위로 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을 가져 보라는 말이다.

 

인문학의 사전적 의미는 언어, 문학, 역사, 철학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되어 있다. 어떤 의미로 보면 한곳을 향하여 평생을 끝없이 달려가야 하는 우리가 훨씬 부담 없이 여유 있게 접근할 수 있고, 많은 기회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 넓은 의미의 인문학적 접근이라고 생각 한다.

 

왜냐하면 인문학적 접근에는 특별한 재능이 필요 없다, 다만 관심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인문학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의사들은 논리를 전개함에 있어 그 이유를 첫째, 둘째 하는 식으로 분명하게 나열하는데 아주 익숙해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글 쓰는 사람이 동료들에게 각자 마음에 들고, 관심을 끌 수 있는 인문학적 분야에 대한 접근을 권장하는 이유를 몇 자 적어 본다.

 

우선, 의술은 의사들의 외로운 숙명이고, 인문학은 영혼을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다. 또한 의학은 아주 예리한 창과 같은 것이지만, 인문학은 방패와 같은 존재이다.

 

이와 더불어 의술은 강력한 직선적 통찰력이 있지만, 인문학은 완곡한 곡선의 아름다움이 있다. 의술은 자식을 키우는 것이고, 인문학은 손자 손녀를 키우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끝으로 의학은 끝없는 지식을 요구하지만, 인문학은 끝없는 관심만을 요구한다.

 

우리가 마음에 드는 한 권의 책을 들고 있을 때, 그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나도 모르게 가슴 속에 풍만함을 느끼고, 끝을 모르는 미소가 이어짐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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