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빗장 풀리면 췌장·담도암 치료 '세계 최고' 가능"
조재희 교수(강남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2025.11.24 05:51 댓글쓰기

[특별기고] 차세대 의료 핵심 먹거리인 인공지능(AI)과 마이크로로봇 분야에서 대한민국은 어디쯤 와 있을까. 


미국이나 중국과 비교해 기술 격차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현장에서 체감하는 간극은 결코 넘지 못할 벽이 아니다. 냉정히 말해 반 발짝 뒤처져 있을 뿐이다. 이는 제도적 뒷받침만 있다면 언제든 추월 가능한 거리다. 


미세한 기술격차 아닌 속도격차, 그 속도 늦추는 '규제'


진짜 문제는 미세한 ‘기술’ 격차가 아니라 이를 가로막는 ‘속도’ 격차이며, 그 속도를 늦추는 주범이 바로 경직된 규제라는 사실이다.


이 문제는 특히 췌장암과 담도암 같은 난치 질환 영역에서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두 질환은 진단 시점에 이미 상당히 진행된 경우가 많고 수술 가능 비율도 낮아 예후가 가장 나쁜 암으로 꼽힌다.


하지만 조기 진단과 국소 치료, 그리고 정밀한 항암·면역치료 전략이 결합된다면 생존율 변곡점을 만들어낼 여지는 충분하다.


실제로 CT·MRI 영상과 내시경 AI, 새로운 국소 치료법, 약물전달 마이크로디바이스 등 혁신 기술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한민국 기술 잠재력은 충분하지만, 이를 임상 현장에서 고도화하며 쌓아갈 생태계가 부족해 ‘축적의 시간’을 놓치고 있다. 


기술 장벽을 넘는 가장 확실한 길은 연구실의 고군분투가 아니라 기술이 병원에서 쓰이고 그 임상 데이터가 다시 개발 현장으로 환류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하지만 정작 환자 곁으로 가는 길은 규제에 겹겹이 막혀 있다.


세계 최초가 '족쇄 되는' 인허가 제도와 '수가 책정' 안된 의료신기술


첫 번째 관문은 인허가다. 혁신 기술이 문턱에서 좌절하는 풍경은 이제 익숙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을수록 식약처 허가는 더 험난해진다.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누구도 책임지고 도장을 찍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췌장암·담도암 조기 진단법이나 치료용 카테터, 마이크로로봇 같은 고위험 의료기기는 평가 기준이 부재하다는 이유로 정부가 개발자에게 “기준을 직접 만들어 오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심판이 규칙을 모른 채 선수에게 룰북(규정집)을 써오라고 하는 격이니, 이런 풍토에서 도전적 기술이 나오기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간신히 허가를 받아도 건강보험 수가라는 두 번째 장벽이 기다린다. 의료 분야에서 AI 영상진단 기술 대부분은 허가를 받았는데도 건강보험 체계에서는 단순 보조도구로 취급돼 별도 수가를 인정받지 못한다. 병원 입장에선 비용만 들고 수익은 없는 기술을 도입할 유인이 없다. 


결국 혁신 기술은 비급여나 연구용이라는 좁은 울타리에 갇히고, 기업은 재투자 기회를 잃어 기술 고도화에 실패하게 된다. 췌장·담도암처럼 치료 옵션이 제한적인 영역에서 이는 곧 환자가 치료 기회를 놓치는 결과로 이어진다.


풍요 속 빈곤, 의료 데이터 쇄국주의 '극복' 절실 


AI 기술 핵심 경쟁력인 데이터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현실 또한 심각하다. 


췌장·담도암은 환자 수가 적고 병변 특성이 이질적이어서 다기관·다년간 축적된 데이터가 필수적이다. 한국은 세계적 수준 의료데이터 인프라를 갖췄음에도, 현재 공공 의료데이터는 개인정보보호법과 공익적 목적 사이에서 길을 잃고 분산된 채 통합되지 못하고 있다.


의학 연구의 윤리적 보루인 임상시험심사위원회(IRB) 역시 지나치게 경직된 잣대를 적용해 데이터 반출과 정제 과정의 허들을 높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소위 ‘빅5’ 대형 병원들이 의료 데이터를 독점적 자산으로 인식하며 외부 반출을 꺼리는 현상까지 겹쳤다. 연구자와 기업은 데이터에 목마른데, 정작 데이터는 병원의 높은 담벼락 안에 갇혀 있는 형국이다. 말 그대로 데이터의 바다 한가운데서 ‘데이터 가뭄’을 겪고 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단순히 “데이터를 내놓으라”는 식의 규제나 의무 조항만으로는 부족하다. 책임 있게 데이터를 공유하고, 이를 공익적 연구와 혁신 기술 개발에 활용하는 병원과 기관에 대해 연구비·인력 지원, 성과 평가 가점, 인프라 투자 등 구체적인 ‘포지티브 인센티브’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데이터를 개방할수록 병원과 연구자에게도 분명한 이익이 돌아가는 구조를 만들어야, 비로소 폐쇄적인 데이터 문화와 병원 중심의 ‘데이터 쇄국주의’를 넘어설 수 있다.


환자 권익 보호는 당연히 중요하다. 그러나 위험도가 낮은 AI·빅데이터 연구까지 기존 임상시험과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합리적 규제가 아니라 제동일 뿐이다.


국가 차원 통합 IRB 가이드라인 마련 및 위험도에 따른 신속·간소화 심사(Fast IRB), 전자 동의(e-consent) 표준화 같은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이것이 이뤄진다면 한국의 방대한 의료데이터는 기술 격차를 단숨에 좁힐 비밀병기가 될 수 있다.


제도가 길 터주면 기술은 달리고 대한민국은 '의료 AI·마이크로로봇 선도자' 충분


마지막으로 병원과 산업계 협력 구조도 바뀌어야 한다. 지금처럼 임상시험 단계에서 잠깐 만나는 수준으로는 부족하다. 기획부터 상용화 전(全) 과정에 현장 의사 의견이 녹아들어야 한다. 


특히 췌장·담도암 영역에서는 담도 배액 전략, 국소 항암치료 시점과 범위, 전신 항암·면역치료와의 병합 등 임상적 맥락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정교한 AI와 로봇이라도 실제 환자 치료에 쓰이기 어렵다.


여기에는 병원, 연구소, 기업, 그리고 정부 역할이 모두 중요하다. 병원은 실제 임상 수요와 데이터를 제공하고, 연구소는 과학적 근거와 분석 역량을 축적하며, 기업은 이를 기반으로 실용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구현해야 한다. 


정부는 이런 노력이 지속될 수 있도록 지식재산권(IP)과 데이터 공유에 대한 표준계약, 인센티브 구조,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예측 가능한 ‘공동개발(co-development)’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이러한 네가지 축이 함께 돌아갈 때 비로소 기술 완성도와 글로벌 경쟁력을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다.


결국 기술 개발부터 시장 진입까지 이어지는 전 주기 병목을 해소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육성책이다. 기술 격차를 좁히는 데는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지만, 제도 개선은 정책적 의지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가능하다. 


우리가 가진 의학‧공학 분야 기술적 잠재력은 충분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 잠재력이 폭발할 수 있도록 꽉 막힌 제도의 길을 터주는 것이다.


‘규제 빗장’을 조금만 더 과감히 풀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뒤쫓는 추격자가 아니라 의료 AI·마이크로로봇 분야에서 새로운 룰을 제시하는 선도자로 나설 수 있다. 


제도가 길을 터주면 기술은 스스로 달린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우리는 의료 혁신 무대에서 진정한 주인공이 되고, 췌장암·담도암 환자들을 위한 치료 패러다임도 획기적으로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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