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문턱서 소환된 '대한민국 필수의료'
박대진 데일리메디 취재부장
2022.10.21 15:22 댓글쓰기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 김연수 소설가의 말이 부쩍 자주 소환되는 요즘이다.


과거를 회상하는 횟수가 잦아짐이 서럽지만 한 켠 기특하기도 하다. 아련한 옛생각은 아득한 앞날을 위한 자양분이라 위안도 삼는다.


그 시절 노래가 가미되면 과거를 호출하는 힘이 배가된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편이지만 가끔은 사무치게 돌아가고 싶을 때도 있다.


그곳에는 늘 누군가가 자리한다. 친구나 동료에 의해 그 시절이 복원되기도 한다. ‘추억’에는 ‘함께’라는 부사가 붙어 있어 가능한 일이다.


기억과 추억 차이에 대한 질문을 왕왕 받는다. 천착 끝에 ‘그리움’이란 답을 찾아냈다. 그 유무에 따라 두 단어를 구분하는 게 가장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기억은 기록할 ‘기(記)’에 생각할 ‘억(憶)’을 사용한다. 직역하면 ‘생각을 기록한다’라는 의미 쯤 되겠다. 추억은 따를 ‘추(追)’에 생각할 ‘억(憶)’을 쓴다. 생각을 따라가는 것이다.


추억은 어떤 과거 사실이나 상황, 분위기 등이 함께 묘한 조합을 이룰 때 더 많은 기억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나와 다른 사람들의 관계가 자리하고 있다. 살면서 스쳐지나가는 사소한 것들도 언젠가는 기억 속에서 슬그머니 추억으로 자리매김 한다.


그 추억은 어느 순간 기억에서 멀어지다가 또 어떤 계기를 만나면 아련한 추억으로 나타나 그리움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러나 추억은 그냥 그렇게 우리 속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기도 하다. 어쩌면 추억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가는 능동적 기억의 습작일지 모른다.


가을의 문턱에서 발생한 한 간호사의 사망 사건으로 ‘필수의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국내 최대 규모 병원에서 뇌지주막하출혈 환자의 개두술을 할 수 없어 다른 대학병원으로 전원한 사건은 우리나라 필수의료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이 사건 발생 후 의료계뿐만 아니라 정부, 국회, 언론 등에서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고 있다.


필수의료 살리기 해법으로 의사 수 확대, 의료지원인력(PA) 활용, 해외의사 도입, 공공임상교수제, 필수의료 수가 인상, 의료기관 인력 투자 보전 등 다양한 정책적 제안이 쏟아졌다.


특히 가장 중요한 공급자인 의료계의 필수의료 해법은 각 진료과별로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시대적 분위기에 경쟁적으로 편승하려는 움직임에 혹자는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


"전문가 100명에 물어보면 100가지 방안 제시 등 해법 모색 어려운 필수의료"


보건복지부 주무과장은 “필수의료와 관련해 100명에게 얘기를 들으면 100가지 방안이 나온다”고 어려움을 호소하며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필수의료’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생명을 보존할 수 없거나 심신에 중대한 위해(危害)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의료서비스로 정의할 수 있다.


응급의료·외상·암·심뇌혈관질환·중환자·감염병 등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분야나 임산부·신생아·소아 질환 등 반드시 필요하지만 공급 부족으로 공백이 발생하는 의료가 해당되겠다.


필수의료 살리기에 대한 해법이 이해 관계자마다 쏟아져 나온다는 것은 역으로 확실한 해법을 찾기가 그만큼 쉽지 않음을 의미한다.


오랜 세월 복잡다단함으로 곪아 온 필수의료 문제를 단박에 해결하기를 바라는 것은 과욕일 수 있다. 그렇다고 좌시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간호사의 고귀한 희생이 지핀 ‘필수의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사그라들기 전에 묘책을 찾아야 한다.


바야흐로 가을의 문턱에 접어들었다. 만추(晩秋)에 다다를 즈음이면 그 해법도 어느정도 윤곽이 잡힐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훗날 2022년 가을이 의미 있는 국내 필수의료 변곡점으로 기억되고, 필수의료 현장을 지키는 인력들이 추억을 소환할 수 있게 되길 간곡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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