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폐지 확정, 앞으로 법 개정 방향 중요'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법제이사
2019.04.22 06:00 댓글쓰기
[특별기고]헌법재판소가 임신한 여성의 자기 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269조 제1항, 의사가 임신한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 을 받아 낙태하게 한 경우를 처벌하는 형법 제270조 제1항 중 '의사'에 관한 부분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정부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하며, 관련부처가 협력해 헌법불합치 결정된 사안에 관한 후속조치를 차질 없이 진행 해나갈 예정이라고 발표 했다.
 
그러나 정부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이후에도 관련 법 개정 전까지 낙태가 불법행위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나섰다. 국회가 낙태죄 개선 입법을  현행법에 따라 낙태는 불법행위로 간주되며, 현행법과의 충돌 문제로 인해 별도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복지부도 규칙이 현재로서는 완전히 폐기된 것은 아니며, 앞으로도 행정처분 유예가 지속돼 사실상 폐기 수순으로 접어들지도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는 헌법재판소가 내린 판결의 취지를 심하게 훼손하려는 시도로 볼 수밖에 없다.

헌법불합치는 즉각적인 무효화에 따른 법의 공백과 사회적 혼란을 피하기 위해 오는 2020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국회가 관련 법 개정 시까지 계속 적용 된다 점을 밝힌 것이다. 법 개정 전까지 법을 존속시키는 결정이라는 점에서 어쩔 수 없는 후속 조치다.

"어떤 판단을 기준으로 대안입법 마련할지 관건"
 
이 때문에 정부와 국회는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대안입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 헌법불합치 이후 입법과정에서 어떠한 판단을 기준으로 할 것인지가 주요 쟁점이다.
 
모자보건법 시행령 제15조(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법 제14조에 따른 인공임신중절수술은 임신 24주일 이내인 사람만 할 수 있다는 조항을 헌법재판소 판단대로 22주로 개정할 것인지도 관심 사안이다.

임산부 건강을 위해서라면 허용주수를 22주로 단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임산부의 건강이 임신을 지속하기에 위험 한 경우에는 22주 이후라도 허용돼야 한다.
 
임신초기 12주 까지는 어떠한 사유를 요구함 없이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숙고와 판단 아래 낙태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12주까지는 태아가 모체 밖으로 나와도 생존할 수 없는데다 임산부 건강에도 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로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등이 임신 12주를 초기 낙태 허용 기준으로 삼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22주 이후라는 기준은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의사가 적극적인 치료를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나라에서 낙태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모자보건법상의 사회 경제적 정당화 사유에는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를 추가해야 한다.

예를 들면  학업이나 직장생활 등 사회활동에 지장이 있을 것에 대한 우려, 소득이 충분하지 않거나 불안정한 경우, 자녀가 이미 있어서 더 이상의 자녀를 감당할 여력이 되지 않는 경우, 부부가 모두 소득활동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느 일방이 양육을 위하여 휴직하기 어려운 경우, 상대 남성과 교제를 지속할 생각이 없거나 결혼 계획이 없는 경우 등이다.
 
또  상대 남성이 출산을 반대하고 낙태를 종용하거나 명시적으로 육아에 대한 책임을 거부하는 경우, 다른 여성과 혼인 중인 남성과의 사이에 아이를 임신한 경우, 혼인이 사실상 파탄에 이른 상태에서 배우자의 아이를 임신했음을 알게 된 경우, 아이를 임신한 후 상대 남성과 헤어진 경우, 결혼하지 않은 미성년자가 원치 않은 임신을 한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할 수 있다.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는 임신초기,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중절을 허용하는 경우에 그 절차와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것을 시행령에 포함돼야 한다. 
 
현재 모자보건법(제14조)은 임산부의 우생학적,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전염성 질환이 있을 때로 낙태 허용 사유를 규정하고 있는데, 낙태죄가 폐지된 이후에는 별도 허용 사유가 불필요해 보인다.
 
또 동법의 배우자 동의가 있어야 임신중절이 가능하다는 조항도 삭제돼야 한다. 강간의 경우는 입증책임을 완화해 성폭력범죄 행위로 인해 임신했다고 인정할 만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임신중절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약물에 의한 낙태에 관한 규정 또한 어느 정도의 기준이 마련돼야 혼란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의사는 신념과 종교적인 이유로 낙태를 거부할 수 있도록 의료법상 진료 거부로 보지 않는다는 조항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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