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해 이상 지긋지긋하게 사람들을 괴롭혔던 코로나19도 정점을 서서히 지나가는 듯하고, 연이어 치른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도 끝난 어느 날이다.
정말 오랜만에 고향 친구들과 소주 한잔을 걸쳤다. 반가운 마음에 특별한 주제 없이 얘기는 롤로코스트를 타고 이 방향 저 방향, 여기저기를 넘나들었다.
하고 싶은 말, 듣고 싶은 이야기가 꽃을 피웠다. 오랜만의 모임인지라 소위 본방송을 비롯해 지방방송까지, 여기저기 난상토론이 오히려 정겨웠다.
모두 종심(從心.70세)의 언덕을 힘겹게 넘은 나이라서 젊은 날의 추억도 다양하고 그 만큼 현재 삶도 다양했다.
그러나 긴 세월을 허겁지겁 살아 온 족적에 비해 대화의 폭이 참 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단한 삶의 흔적이 옹이가 돼 유연성을 잃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 번 먹은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맹서라도 했는지 난공불락 요새처럼 옹골찬 고집의 강도는 엄청 강했다. 그 만큼 상대방 이야기에 대한 이해 순응력에 경화증이 생긴 듯 하다.
술이 몇 순배 돌았을 때 한 친구가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대학에 재직할 때 무슨 교수였냐는 것이다. 갑작스런 질문에 잠시 당황했다.
“너 취했구나, 장 박사가 00대학 의과대학 교수였잖아.” 옆에 있던 친구가 거들었다.
“그거야 나도 알지. 하지만 옛날에는 그냥 의대교수, 법대교수, 상대교수 이렇게 불렀잖아. 그런데 지난 선거 때 텔레비전에 나와서 정치 평론한다고 떠드는 사람들 보면 무슨 겸임교수, 특임교수, 초빙교수, 객원교수 등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더라고. 그래서 물어 본거야. 장 박사는 무슨 교수였는지.”
“00대학교 명예교수야”라고 얼버무렸지만 제대로 된 대답을 한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여하튼 께름칙하고 뭔가 모자라는 대답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이 때 또 다른 친구가 딸꾹질을 하며 일갈했다.
“그런데 텔레비전에 나와서 정치 얘기하는 사람들은 맨날 그 사람이 그 사람이야. 불과 몇 명이 이 방송, 저 방송 돌아가며 나와서 맨날 똑 같은 소리를 하는데. 아니 그 사람들은 교수라면서 언제 연구하고 학생은 언제 가르치나.”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영상강의를 많이 했을 거야.” 충분한 대답이 아니라는 것은 물어본 사람이나 대답한 사람이나 매 한가지다. 참 무성의한 대답이었다.
"컴퓨터로 처음 검색해보니 참으로 다양하고 많은 종류의 교수 존재"
귀가길 전철 속에서 친구들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하지만 대학에서 40년 가까이 봉직한 나 역시 그 많은 여러 종류 교수에 대해 도저히 구분할 수가 없었다.
아울러 사회의 일반 구성원들도 궁금해 하는 문제에 대하여 정작 교수 출신이라는 사람은 왜 궁금해 하지 않았나 하는 자괴감까지 들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 경험과 연륜이 높은 친구들이 물어 온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교수’라는 명함을 그렇게 남발해도 되냐, 교수라는 직책이 얼마나 권위가 있길레 이렇게 마구 이용해 먹는 것이냐 하는 답답함과 불만의 우회적인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저지른 일도 아닌데 모든 책임이 교수로 정년퇴직한 나에게 있는 듯 가슴이 뛰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도대체 교수가 몇 종류나 되는지 컴퓨터 앞에 앉아 검색을 해 봤다. 검색을 하면서도 참 묘한 생각이 들었다. 수십 년 동안 교직에 있으면서 이런 고민을 해본 일은 한 번도 없다.
교수 종류를 검색 해 본 일은 더더욱 없다. 대학 교직자는 오로지 전임강사, 조교수, 부교수, 정교수, 그리고 정년퇴임하면 어떤 분은 명예교수가 되기도 하는 것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니 어쩌다 시사토론 같은 TV 프로그램을 볼 때 평론가로 나온 사람에 대해 자막을 통해 그 출연자 개인의 경력을 본 일이 있다.
그럴 때 마다 잘 알 수 없는 이름의 교수라는 직책을 보면서 저런 교수는 어떤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고, 어떤 형태 채용 과정을 거치는지 궁금했던 일이 머리를 스쳤다.
컴퓨터에는 교수 종류와 역할에 대해 매우 다양하게 명시돼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보편적인 교수 종류 이외에도 정말 많은 종류의 교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연구교수, 산학협력교수, 외래교수, 겸임교수, 임상교수, 초빙교수, 객원교수, 석좌교수, 기금교수, 강의전담교수, 계약교수 등등.
교수 종류와 역할을 정확하게 헤아리지도 못한 채 뭔가가 필요해서 이런 제도를 만들었겠지 하고 컴퓨터를 껐다.
"과연 지금처럼 많은 교수 종류가 필요한지 의문"
그러나 제도라는 것은 분명한 원칙이 극명하게 존재할 때 그 합리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교수라는 직책에 관한 일이기 때문에 특정 분야 학문적 발전을 위한 것인지, 대학생들 교육의 내실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국가 사회 미래지향적 발전에 공헌하기 위한 것인지 등 합리적 당위성이 있어야 한다.
학문의 깊이가 일천하고 천학비재한 사람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며칠을 곰곰이 생각해도 그렇게 많은 교수의 종류가 왜 필요한 것인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지금도 그 상태의 연속이다.
예전에 있었던 웃지 못할 일화가 머리를 스쳤다. 한 번은 부총장이 급히 불러서 만났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학장이 우리 대학을 방문하게 돼 있는데 공항에 나가 영접해 모시고 올 수 있냐는 것이었다.
그쪽 대학에서 학장이 방문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왔고 장학생 선발 문제와 하버드대학 입학 문제를 논의하자는 것이란다. 방문자는 ‘Dean 아무개’라고 했다.
일의 진행에 있어 뭔가 원칙에 어긋나는 것 같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시는 게 좋겠다”고 건의하고 마중나가는 일은 적당한 이유를 대고 거절했다.
결국 그 사람 격에 맞춘다고 나 대신 학장 한 분이 고생했다. 결과는 상대방 의도를 모르고 지레 짐작에 춤을 추고 헛고생과 망신만 당한 사건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말만 들으면 기가 죽는 하버드대학교의 Dean은 맞았다. 그런데 그 Dean은 우리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그런 품격 있는 학장이 아니고 많은 돈을 내고 그 대학에 가고자 하는 학생들을 유치하고 모집하는 행정부서 책임자였던 것이다.
돈으로 입학생을 모집하고 특히 무슨 무슨 fellow로 하버드에서 연수교육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거액의 돈을 받고 입학시키는 업무 책임자(dean)였다.
미국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오해하고 융숭한 대접을 한다고 난리를 친 것은 우리 측의 무지와 직함에 눌려서 벌어졌던 망신이었다.
요란하고 다양한 종류의 교수라는 직책을 살펴보면서 묘한 기시감(deja vu)에 빠졌다. 어느 날 어떤 일로 모래성이 무너질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