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필수의료가 붕괴되고 있다"
양동호 광주광역시의사회 대의원회 의장(연합외과 원장)
2023.01.02 05:25 댓글쓰기

[특별기고] 필수의료가 화두로 떠올랐다.


지난해 서울아산병원에서 간호사가 뇌출혈로 수술을 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건에 이어 인천 길병원에서는 소아과 전공의가 부족해 입원실을 폐쇄하는 등 필수의료 붕괴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광주에서도 맹장염 수술이 필요한 세 살배기 남자아이가 소아외과 전문의가 없어 수술을 맡을 병원을 구하지 못하고 약 200㎞ 떨어진 대전지역 대학병원으로 이송돼 수술을 받았다.


영광지역 사업장에서 작업 중 손가락 일부를 절단 당한 30대 남성도 접합수술 전문병원과 대학병원 등 광주 대형병원 모두가 ‘수용 불가’ 입장을 보이자 119 구급대에 의해 전북으로 가서 수술을 받았다.


필수의료란 무엇일까? 정부는 필수의료를 '긴급하게 제공하지 못하면 국민 생명에 심각한 위협을 주는 의료로서 수요 감소 등으로 제대로 제공되기 어려운 의료서비스'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정의에 해당하는 정확한 의료분야가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아직 부족한 것 같다.


"필수의료 붕괴 조짐, 의료인력 부족이 아닌 수가 너무 낮아 의사들이 기피하는 것과 연관"


요즘 부쩍 필수의료 붕괴 조짐이 보이는 것은 얼핏 보면 의료인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의료인력은 충분한 데도 필수의료에 대한 수가가 너무 낮게 책정돼 있어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기피하는 것과 연관이 있다. 


필자는 외과의사다. 일례로 대한외과학회가 분석한 국내 외과 수술 평균 수가는 지난 2017년 기준 미국 18.2%, 일본 29.6% 수준이었다. 같은 수술을 해도 미국 외과 의사가 100만 원을 받을 때 한국에선 18만2000원밖에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한국에서 맹장수술 수가는 수술비만 40~60만원이며 포괄수가제로 입원비까지 전부해서 100~130만 원 정도다. 쌍꺼풀 수술비용보다 훨씬 싸다.


반면 미국은 평균 1만3000달러로 우리 돈으로 하면 1500만 원이 넘는다. 우리나라는 외과 수술을 하면 할수록 병원이 손해를 보는 걸 정부도 알고 있다.


2017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의료기관 건강보험진료 평균 원가보전율은 85%에 그쳤다. 기본진료(75%), 수술(76%), 처치(85%) 등이 원가에 못 미친다. 반면 검체(159%), 영상(122%) 등은 원가를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과 의사들 "수술 할수록 손해, 환자는 검사만 하고 다른 병원 보내는게 이익" 자조적 넋두리


외과 의사들이 '환자가 오면 검사만 하고 다른 병원에 보내는 게 이익'이라고 우스개 소리를 하는 건 이 때문이다.


중증환자 치료 시 당연히 발생할 수 있는 환자 사망과 같은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해서도 요즘에는 민사합의 뿐만 아니라 형사적으로 인신을 구속하는 판결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 의사들이 필수의료과를 지원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병원 입장에서도 필수의료를 해봤자 수입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해당과 의료인력을 뽑지 않으려고 하고 필수의료를 전공한 의사들도 취직 자리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으니 기피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광주 소재 전남대병원만 해도 총 278명의 전문의가 있는데 그 중 비인기과인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과들을 보면 흉부외과는 5명, 산부인과 9명, 외과는 21명으로 소수에 불과하다. 이 중 소아외과 전문의는 광주, 전남 지역에 단 한 명밖에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국가가 저수가, 저급여, 저비용 의료정책으로 지금의 기형적 구조를 보이는 의료체계를 수수방관 했다는 뜻이다.


그럼 해결책은 무엇일까?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는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수가를 대폭적으로 인상하고 인센티브를 주는 유인책을 펼쳐 현재 전공의들이 필수의료과를 지원토록 유도하는 것이 비용도 적게 들고 효과도 빨리 보는 지름길 방법이 아닌가 싶다.


정부가 말하는 대로 필수의료분야 인력부족을 의사전체 인력부족으로 몰아 무작정 의사수를 늘리기 위해 공공의대를 지어서 의료인력을 양성한다고 한들, 공공의대를 지으려면 수천억 원의 돈이 들고 기간도 전문의를 양성하려면 지금부터 약 10년 이상이 걸린다.


또 이들이 필수의료를 기피할 것이므로 강제적으로 5년 정도 필수의료를 전담토록 한다고 한들 그 인력은 어차피 5년 후 열악한 환경에 다른 직종으로 이직할 것이 분명하다.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의사에 과도한 형사책임 지우지 말아야 필수의료 복원 가능"


두 번째는 의료를 하다보면 생길 수밖에 없는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 대해 의사에게 과도한 형사책임을 지우는 것을 근절해야 한다. 


최소한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책임만이라도 면할 수 있도록 '의료사고 처리특례법이 조속히 지정돼야 한다.


아울러 필수의료를 수행하다가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있는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한 민사적인 배상도 일정부분 국가가 함께 책임지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부나 정치권에서는 이 쉬운 방법을 외면하고 자꾸 비용도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공공의대 쪽으로 화살을 돌리고 있으며, 필수의료 후 생길 수밖에 없는 안 좋은 결과에 대해 의사들에게 형사적인 책임을 전가하는 판결이 날로 증가하고 있어 답답한 마음이다.


정치인들이야 표를 의식해 공공의대 설립을 주장할 수 있지만 정부는 이 시점에서라도 국민들에게 현재 의료실상을 정확히 알리고 진실로 국민건강을 위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더 이상 머뭇거리다가는 우리 국민들이 간단한 수술조차도 받을 곳이 없어서 떠돌아다니는 운명이 될지도 모른다. 정부의 현명하고 조속한 계획 수립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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