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대 교수→보건복지부장관→분당서울대병원 교수
보람·미련·회환 점철된 1년 11개월, 정진엽 “의료계 협상력 키워야”
2017.10.10 05:52 댓글쓰기

지름 1.6㎝, 무게 6g에 불과한 배지의 중압감은 상당했다. 나름 각오는 했지만 국무위원이 짊어 져야 할 책임과 무게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새벽 출근은 기본에, 온전한 휴일은 언감생심이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현안에 늘 마음을 조려야 했고, 이해관계가 첨예한 정책 추진 과정에서는 늘 험난한 파고를 넘어야 했다. 1년 11개월. 장장 2년이란 세월을 그렇게 살았다. 그럼에도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걸···’이라는 시(詩)의 구절과 함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마친 정진엽 前 보건복지부 장관. 퇴임 두 달여 만에 만난 그는 한결 편안해 보였다. 여전히 온화한 미소로 악수를 청하는 그의 손에서 만감이 전해졌다.

 

감성으로 극복한 ‘관료사회 주의보’

당연지사 지난 2개월의 근황을 먼저 물었다.

“2020km를 달렸네요.” 퇴임 전 공언한 전국일주를 마쳤다는 답이 돌아왔다. 동해와 남해에 이어 서해까지 2000km 이상을 자동차로 달렸다.

국무위원 시절 꿈도 꾸지 못했던 꿀휴가 얘기에 한껏 흥이 올랐다. “나도 남편이 있었구나” 여행 중 아내가 던진 농담도 들려줬다.

10여 일의 여행은 오롯이 자신을 위한 시간이었다기 보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 국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묵묵함으로 내조한 가족에게 선사하는 보상에 가까웠다.

실제 의사 출신으로 사상 초유의 메르스 사태 수습 특명을 받고 취임한 정진엽 前 장관은 일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감성행정’으로 직원들과 호흡하며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 △국가 항생제 내성관리 대책 △읍면동 복지 허브화 △보건의료산업 성장률 제고 △결핵안심국가 실행계획 수립 등 굵직한 행적을 남겼다.

취임 당시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은 얘기는 ‘관료사회 주의보’였다.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가장 힘든 부분은 늘공(늘 공무원)들의 텃새라는 조언이었다.

“초반에 확~ 휘어 잡아야 합니다.” “한 번 끌려다니기 시작 하면 나중에는 답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조언들이 강경책 일변도였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4000명이 넘는 큰 조직을 운영해본 경험에서 우러나온 소신이 있었다. 물론 특유의 친화력도 작용했다.

취임 후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직원들과의 소통이었다. 물론 초반 서로의 탐색전이 있었지만 장관이 내민 생소한 ‘감성행정’에 직원들이 동화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직원을 우선시 하는 수장답게 재임기간 동안 188명의 정원을 늘리고 3개국, 10개과를 신설하는 등 근무여건 개선에도 각별한 신경을 썼다.

“업무 과부하에 대한 호소가 가장 많았어요. 열심히 행정안전부를 뛰어 다녔습니다. 일할 맛 나는 직장을 만들어 주는 게 조직의 수장이 해야 할 일이니까요.”

복지부 직원들의 숙원을 풀어줄 수 있었던 것은 재임기간도 한 몫했다. 지난 2015년 8월 27일 취임한 정진엽 前 장관이 복지부에 몸담은 시간은 1년 11개월.

이는 2000년 이후 복지부를 거쳐간 15명의 장관들 중에서도 상위권에 해당된다. 꼬박 2년을 채운 전재희 前 장관에 이어 두 번째 장수 장관이다.

“많은 장관들이 인력 충원의 필요성은 절감하면서도 정작 재임기간이 짧아 실현시키지는 못했어요. 그나마 오랜 시간 재임한 덕분에 미약하나마 힘을 보탤 수 있었죠.”

“가슴으로 품은 원격의료, 아쉬움 가득”

공직생활을 반추해 달라는 요청에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찰나의 순간 보람, 아쉬움, 미련, 자부심 등 가슴 속 켜켜이 쌓아 놓은 감정들이 일시에 분출되는 모습이었다.

재임기간 가장 의미 있는 행적으로 주저없이 ‘국가 항생제 내성 관리대책’ 수립을 꼽았다.

“항생제 내성 문제는 최근 유엔(UN), 세계보건기구(WHO), G20 등 주요 국제회의에서 다루고 있을 만큼 글로벌 보건 분야의 최우선 과제입니다.”

정진엽 前 장관은 ‘글로벌 보건안보 구상(GHSA) 고위급 회의’ 등을 통해 각국 대표들과 항생제 내성 문제를 고민했고, 그 논의를 기반으로 대응책을 마련했다.

국제사회의 흐름에 동참하고자 지난해 8월 ▲항생제 적정 사용 ▲내성균 확산 방지 ▲감시체계 강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국가 항생제 내성 관리대책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아직 항생제 내성 문제에 대한 인식이 저변화 되지 못한 국내 상황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전했다.

“정말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인데 인식은 여전히 미흡한 실정입니다. 국가적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이 문제를 대비해 나가야 합니다.”

보건의료산업 육성은 가장 도드라진 성과 중 하나였다. 정진엽 前 장관 취임 후 국내 보건산업 수출은 무려 20% 넘게 성장했다.

그 기저에는 정부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고 자부했다. “대통령 해외 순방에 동행할 때마다 장관이 아닌 마케터로서의 책임감이 더 컸어요.”

실제 그는 중동을 비롯해 유럽, 중남미 등 세계 각국을 돌며 한국의료 마케터를 자처했다. 중동의 병원 수출, 중남미 국가들의 한국 의약품 등록절차 간소화 등 굵직한 성과가 가득이다.

“국내 보건의료산업이 시대의 흐름에 맞는 새로운 옷을 입을 수 있도록 노력한 것도 소중한 기억이네요. 바이오헬스 7대 강국으로의 도약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가장 아쉬운 대목은 ‘원격의료’였다. 새 정부 들어 금기시 되고 있는 원격의료는 정진엽 前 장관이 그 필요성을 줄기차게 강조했던 정책이었다.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국민들에게 적정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라며 법제화에 사력을 다했지만 임기 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원격의료는 가슴으로 품은 자식 같은 느낌입니다. 공공의료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서 꼭 필요한 제도인데 불필요한 오해로 답보 상태에 놓여 여간 마음이 아픈게 아닙니다.”

“진정한 귀거래사는 지금부터”

그는 장관이기 이전에 의사였다. 때문에 국무위원 배지를 달기 전까지 여느 의사들과 마찬가지로 복지부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

하지만 정작 힐난의 대상이던 복지부 공무원이 돼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밖에서는 미처 보지 못했던 그들의 고충을 접하며 비로소 깨달았다.

특히 정부의 모든 정책에 대립각으로 일관하는 의료계의 행보가 여간 안타까운 게 아니었다. 협상의 기술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 것도 부지기수였다.

“대한의사협회를 위시한 여러 의료단체들이 프레임에 갖혀 제대로 된 협상 조차 못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너무나 안타까웠어요.”

복지부는 제도 변화에 따른 저항을 감안해 나름의 협상에 임할 자세가 돼 있지만 의료계는 늘 협상 테이블에 앉으려 하기 보다 대립각을 세우는 게 먼저라는 지적이다.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국내 건강보험체계 내에서는 정부와 의료계가 함께 갈 수 밖에 없어요. 대립보다 협상의 기술을 키워 실익을 얻어내는 게 더 현명한 대처 아닐까요?”

최근 사회적 화두인 ‘문재인 케어’에 대해서는 신중론을 견지했다. 前 정권의 장관인 만큼 새 정부의 의료정책을 논하는 것에 적잖은 부담을 느끼는 모습이었다.

“글쎄요. 정책의 방향성은 맞다고 봅니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는 모든 정부의 과제였죠.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겠다는 정책에 반감을 갖는 이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속도 조절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너무 급진적인 변화는 혼란을 초래할 수 있으니까요. 재원 조달에 대해서는 재임기간 추계해 본 적이 없어 답을 드리기 곤란하네요.”

정진엽 前 장관은 얼마 전 복귀 후 첫 환자를 진료했다. 다시금 의사의 삶으로 돌아왔다. 교수와 병원장, 그리고 장관까지 나름의 삶에 의미를 부여했다.

‘의사는 환자와, 원장은 직원과, 장관은 국민과 동고동락하는 자리’라고 나름 정의 내렸다. 이들 자리 모두 ‘보람’으로 귀결된다는 부연도 곁들였다.

그는 이제 역동적이었던 행적을 정리할 시기라고 했다. 정년까지 남은 3년이란 시간동안 교수의 삶, 원장의 삶, 장관의 삶을 찬찬하게 정리해 나갈 생각이다.

“남은 시간 본연의 업무인 진료에 매진하며 저서 업데이트 등 정년 준비에 들어갈 계획입니다. 진정한 삶의 귀거래사는 이제부터 아닐까요?”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가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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