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선과 전문의, 그 미묘한 영역
2002.01.05 15:00 댓글쓰기
정확히 출처가 기억나지 않지만 대학시절 어느 책에서 읽은 '마음의 살이 아프면 소설을 써고 마음의 뼈가 아프면 시를 써라'는 문장이 기억난다.

아마 이름난 문학 비평가나 작가의 책에서 읽은 듯하다.

만약 이 문장을 의사에게 들려준다면 "마음의 살이 아프던, 마음의 뼈가 아프던 먼저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아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할 지 모른다.

일반인이 생각하기에 의사는 그렇게 딱딱하고, 비문학적인 인물로 받아들여지기 쉽상이다.

'반고흐의 예술론'보다 '반고흐의 전기'가 좋다

중앙대 용산병원 방사선과 김건상 교수는 '터키인의 말안장'(Sella Turcica)이라 불리는 뇌구조의 명칭에 관해 설명하는 것으로 인터뷰를 위한 말문을 열었다.

"사람의 두개골 바닥에 위치하며 뇌하수체를 감싸고 있는 뇌구조물이 '터키인의 말안장'이라 불려지게 된 것은 서양인들이 한때 강성했던 터키를 두려워한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김 교수는 현재 한 인터넷 의료정보사이트에 '의학용어를 알면 서양문화가 보인다'는 칼럼을 연재중이다.

물론 '터키인의 말안장'도 그 동안 연재된 칼럼에 수록돼 있는 내용의 일부분이다. 그는 지금까지 연재된 칼럼을 모아 금년중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독서를 좋아하는 편인데 주로 읽는 책은 수필처럼 '생각을 정리한 책'보다 역사서나 기행물처럼 '사실을 정리한 책'입니다. 그래서 '반고흐의 예술론'보다는 '반고흐의 전기'가 훨씬 재미있습니다."

그의 '책읽기 편식'은 교수실 한 켠에 놓여 있는 책꽂이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전공서적들 사이에 간간이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같은 책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올해는 '유종의 미'를 거두는 한 해

김 교수의 새해 소망은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이다.

대한의학회 부회장으로 임기 1년을 남겨두고 있는 그는 새롭게 마련된 '세부전문의 인증 규정'이 일부에서 제기되는 '세부전문의 자격증 남발'이라는 우려를 완전히 털어 내고 제대로 자리매김 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또 의대부터 인턴, 레지던트, 전문의로 이어지는 의학교육의 모든 교육과정을 총괄하는 단체를 연내에 설립하는 것도 그의 또 다른 희망사항이다.

"의학교육의 단계별 모든 과정을 전반적으로 총괄하는 기구의 필요성에 대해 의료계에 폭넓게 인식돼 있습니다. 지금까지 수 차례의 공청회나 세미나를 통해 어느 정도 합의가 도출된 상태이기 때문에 연내 설립도 기대해볼 만합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위기의 방사선과(?)'에 대한 그의 생각은 의외로 담담한 편이다.

"현 상황을 방사선과의 총체적인 위기로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단지 의약분업 이후 여러 가지 악조건으로 인해 방사선과 전문의로는 개원이 힘들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지면서 지원자가 줄어들었을 뿐입니다."

그가 내세우는 해결책은 방사선과의 전문영역을 극대화시켜 타 진료과와 차별화를 실현하는 것이다.

"우선 제도적으로 방사선과 전문의의 전문성을 인정받도록 해야 합니다. 현재 영상진단등 특수검사의 정도관리 사업에 대해 복지부와 의견 접근중이며, 이를 통해 방사선과 전문의의 전문성을 한층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의료와 신기술, 그리고 의사 '김건상'

"X선을 발견한 뢴트켄은 물리학자였고, CT의 개발자 역시 음반회사 엔지니어였습니다. 의학은 발전은 의사나 의료계에 의해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와 합쳐질 때 더욱 발전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의학은 의사들만의 고유영역'이라는 기존관념이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대한PACS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 교수는 앞으로 의학분야에 있어서 전자공학과 생명공학 분야에 대한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터넷등 전자공학의 발전에 따른 의료계의 변화 흐름이나 추세는 좋다, 싫다의 문제가 아닙니다. 결국 이러한 변화 추세는 어쩔 수 없는 대세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긍정적, 능동적으로 받아들여 그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방사선과 전문의로서 자신을 평가해 달라는 요청에 그의 대답은 짧고 간결했다.

"전문과를 잘 선택했다는 생각입니다. 방사선과를 통해 다이나믹한 변화를 경험했고, 내과나 외과처럼 환자를 직접 치료하는 데서 오는 보람은 없었지만 그들이 환자를 치료할 수 있도록 조력자 역할을 했다는데 만족합니다."

취재를 마친 기자의 눈에 조금 낡은 듯한 '포켓 이태리어 여행회화'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해 이태리에 갈 기회가 생겼는데 그때 구입한 것입니다. 요즘 우리 나라에 이태리 음식점이 많이 생기는 것 같아 음식 이름만 외우고 있습니다. 하 하 하……."

김상기기자bus19@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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