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없는 소아과, 응급·중증·희귀난치병 걱정"
류일 교수(가천대길병원 소아청소년과)
2022.11.10 06:19 댓글쓰기

[특별기고] 맑고 깨끗하며 거짓말을 모르는 아이들을 진료한다는 생각에 시작한 소아청소년과를 평생의 업으로 삼기로 마음먹고 시작한지 이제 30여 년이 되고 있다. 


처음 전공의를 시작할 때 20여 명이었던 교실 내 소아청소년과 의사들 수는 증감을 거듭하더니 이제 11명이 됐다. 한 달이 지나면 수련을 마치는 전공의 4명이 떠나고 내년 2월이면 또 한 분은 정년으로 퇴직하면 6명이 남는다.


얼마 전 국정감사와 언론매체를 통해 알려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평균 연령은 50세, 2017년부터 2022년 8월까지 폐업한 소아청소년과는 총 662곳이라고 한다. 


인천권 4개 대학병원 중 야간소아응급실 운영 '2곳' 불과


필자가 근무하는 인천 지역 대학병원 4곳 중 야간에 소아응급실을 운영하는 곳은 현재 2개 밖에 안된다. 


더구나 필자가 근무하는 병원도 인력이 충원되지 못할 경우 한 달 후에는 야간에 응급실을 거쳐 입원이 가능한 병원은 단 1개만 남을 것이다. 이는 비단 인천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으로 점차 현실화되고 있으며 그 속도 역시 매우 빠르다. 


소아청소년과 의사 입장에서 더 걱정인 것은 소아 응급환자와 중환자, 희귀난치병 환자에 대한 염려다. 


이들 소아청소년 환자를 수용, 입원 후 치료하기 위해서는 당직에 필요한 의료진 뿐 아니라 전문 분야 별로 최소한의 인력이 필요한데 지금 실정으로는 가능한 병원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적을 뿐 아니라 이 마저도 점차 줄어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발전하는 현대의학에서 내과처럼 소아청소년과도 각 분야 별 즉, 감염, 내분비, 면역, 소화기영양, 심장, 신경, 신생아, 신장, 유전, 중환자, 혈액종양, 호흡알레르기 등 분과를 구분해서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내과보다도 더 많은 세부 전문분야, 같은 의사들도 잘 몰라"


하지만 이런 분과별 전문 분야가 내과보다 더 많다는 사실을 의사들조차 잘 모르는 실정이다. 


여기에 더해 소아청소년을 보는 여타 과들 즉, 소아외과, 소아비뇨의학과, 소아신경외과, 소아안과, 소아이비인후과, 소아청소년 정신과, 소아흉부외과, 소아응급의학과, 소아마취통증의학과, 소아영상의학과, 소아치과 등을 전공하는 의사들도 점차 줄어들고 있을 뿐 아니라 기존에 이를 전공한 의사들도 전문 분야를 다른 곳으로 바꿔 진료하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소위 인기 과인 피부과, 성형외과,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등도 소아가 앞에 붙으면 기피하는 실정이다. 


얼마 전 국내 최대 병원 간호사가 뇌질환으로 수술이 늦어 사망하였는다는 기사로 떠들썩했다. 


그런데 필자가 알기로는 소아청소년의 경우 덜 희귀한 질환 등으로 문제가 발생한 사례가 더 많았는데도 대중들, 혹은 언론에서 그 다지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 같다. 


이에 대해 소아청소년과 의사들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이들의 경우 투표권이 없어 정치인들이나 언론에 영향을 줄 수 없는 것 때문이라고 자조 섞인 한탄을 한다. 


심지어 얼마 전 언론에 알려졌던 비행기 내에서 아이가 운다고 욕설을 하거나 식당에서 노키즈존을 만든다는 소식을 접할 때 물론 부모들 잘못을 차치하고라도 우리 사회가 얼마나 아이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지 새삼 씁쓸할 뿐이다. 


그런 어른들에게 당신은 어린 시절 없이 바로 어른이 되었느냐고 묻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비단 소아청소년과 의사들만이 하는 답답함은 아닐 것이다. 


현실로 돌아와 만약 소아 심장응급환자가 있을 경우 당직 전문의나 전임의 혹은 전공의가 있어 1년 365일 이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병원은 아마 국내에 2~3개 병원 밖에 없을 것이다. 


"소아 특성상 입원 후에도 세밀한 관리 등 필요, 피로감 누적에 보호자들 관심은 큰 부담"


더구나 이런 환자가 입원할 경우 환자가 호전될 때까지 계속 병원을 떠나지 못하고 돌보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 병원도 심장을 전공한 전문의가 한 명 밖에 없어 수시로 연락하는 응급 상황과 중환자를 3년 이상 응대하다가 지쳐서 최근 사직했다. 필자의 지인 중 한 분은 20여년 이상을 운영해온 소아청소년과를 폐쇄하고 일반의사로 노인 진료를 하면서 안정적인 수입과 야간이나 주말진료가 없는 근무에 너무 만족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소아청소년의 경우 성인과 달리 기저 질환도 없이 나빠지는 경우가 있을 뿐 아니라 급성 질환의 경우 악화하는 속도가 빠른 경우가 많아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보호자들을 응대하느라 훨씬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또한 부모들 뿐 아니라 조부모들까지 포함한 많은 보호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감정 노동까지 더해지는 경우도 많으며, 심지어 각종 민원과 법적 문제를 마주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병원 경영자들은 낮은 수가로 인해 인력이나 시설 지원도 꺼려 병원 내 모든 지원 인력들 즉, 간호사, 방사선사 등의 기피 부서 1순위일 뿐 아니라 역설적으로 병원 내 모든 설비 혹은 기계조차 성인도 잘 쓰지 않는 노후화된 것을 배정하고 이를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내년도 소아청소년과 지원 전공의, 전국적으로 10명 예상"


2023년 소아청소년과에 지원할 것으로 예상되는 인원이 전국에 10여 명이라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이런 상황이면 앞으로 2~3년 후면 소아청소년과 의료는 거의 붕괴될 수준이다. 상황이 이러한 데도 이를 걱정하고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듯하다. 


더구나 출산율이 급전직하하는 요즘 국민들 뿐 아니라 정책당국자들 관심과 지원을 간절히 바란다. 


현재 소아청소년과는 대부분의 대학병원 심지어 유수의 병원조차도 각 분과 별 전문의가 1~2명이거나 아예 없는 곳도 많은 실정이다. 


소화기분과를 예로 들자면 의사 1~2명이 이물질 삼킴에 의한 응급내시경 검사를 대비해 1년 365일 언제 환자가 발생할 줄 모르는 상황에서 이를 모두 커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다른 분과들 즉, 소아외과, 소아신경외과, 소아정형외과 등도 같은 실정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 이런 인력조차도 퇴직, 신규 지원자 감소, 병원 인력 충원 중단, 기존 인력의 타 분야 이직 등으로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지역별 국공립어린이병원 설립, 불가피한 의료사고 대책, 현실적 수가 책정"


이에 다음과 같은 사항을 제안한다. 첫째, 지역별 국공립어린이병원을 설립해 각 병원에 흩어진 인력을 모아 인력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는 이미 지난 국정감사에서 서울대병원장이 언급했던 집단 ‘어텐딩 피지션’ 제도를 도입하는 것과 유사한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각 지역 내 대학 별로 흩어져 있는 각 분과 별 소아청소년 의사들과 소아청소년 관련 과를 한 군데 모아 거점 별로 운영하고 진료를 한다면 한정된 자원으로 효율적이고 지속 가능한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여기에 덧붙이고 싶은 제언은 특히 각 지자체 별로 상황이나 인력 분포도 매우 다르므로 가능하면 각 지자체 주도하에 설립을 검토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경상도 지역 몇몇 지자체에서 이미 소아응급실 근무 인력에 대한 인건비를 지원, 운영을 하고 있으므로 이를 참고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둘째, 환자를 진료하다가 부득불 발생할 수 있는 의료사고, 특히 형사상 책임에 대한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해 주는 것이다. 


이는 물론 법적, 제도적 정비가 우선해야 하는 문제이지만 생명을 다루는 과를 하고 싶어도 이에 대한 두려움으로 지원을 기피하는 젊은 의사들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의사가 최선을 다했음에도 발생할 수 있는 악(惡) 결과로 의료소송에 휘말려 심리적 정신적 고충을 겪는다면 과연 누가 이런 환자들을 진료하려고 하겠는가? 영화나 TV드라마에서 보는 것과 같이 모든 환자가 드라마틱하게 좋아지는 것은 분명 아니다. 


따라서 선의의 진료임에도 이런 고충을 겪는 동료 혹은 선후배를 보고 중환자나 응급환자를 기피하는 것은 결국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의료수가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 공무원 및 관련 인사들을 만나 의료수가에 대해 개선해 달라고 얘기하면 "너희 의사들은 항상 돈만 이야기한다"고 힐난한다. 


심전도 검사를 해본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검사를 5세 소아에서 한다고 가정해보자. 과연 아이가 가만히 누워 검사를 금방 받게 될까? 실제 상황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매우 많다. 


고통스럽고 힘든 검사가 아님에도 몸을 움직이고 울고 두려워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아이를 달래서 검사를 시행하는데 어른보다 30%정도 이상 시간이 더 걸린다. 그럼에도 보험제도 틀 안에서는 단지 30% 비용만 더 인정해 준다. 그렇다면 병원에서 과연 이 검사를 해야 할까?


5세 소아에서 이물질을 삼켜 응급 소화기내시경검사를 시행한다고 가정해보자. 


과연 아이가 가만히 침대에 누울까? 일단 눕히고 모니터를 부착해야 진정제를 투여하고 검사를 시작할 수 있는데 이런 과정까지 2~3명의 의사와 2~3명의 간호사가 아이 곁에서 달래거나 진정을 시키거나 심지어 붙잡기도 한다. 


현실에서는 보호자까지 동반해 부족한 1~2명의 소아청소년과 의사와 1~2명의 간호사가 이를 시행한다. 반면 내과 성인내시경실에서는 보조 인력이 5~6명이 있다. 


이 무슨 역설적인 상황인가. 아는 일반인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 다른 과 동료의사들도 잘 알지 못한다. 


사정이 이러 한데도 성인에 비해 가산 수가가 30%에 불과하다. 미국에서 이런 소아가 비행기를 타고 우리나라에 와서 시술 받고 귀국해도 비용이 오히려 남는다고 한다. 참으로 아이러니 한 상황이다.


사례가 제한적이지만 비단 이 것 뿐이 아님을 아마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최소한의 수가 보전이 필요하다. 이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만큼 시간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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