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병원문화 '환자 중심' 혁신 이건희 회장
10년 철저 준비 오픈 삼성서울병원, 환자 행복 슬로건과 무촌지 등 '3無 경영' 도입
2020.10.26 06:01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혁신이었다. ‘삼성이 병원을 세운다는 명제부터 10여 년에 걸친 준비작업, 개원 이후 보여준 시스템 등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국내 병원문화에 혁신을 불러일으켰다. 삼성의료원이 걷는 한 걸음 한 걸음은 다른 병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의료문화 개혁으로 이어졌다. 환자에게 시혜를 베풀던 개념은 고객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개념으로 바뀌었다. 진료현장에 종이차트를 없앤 것도 삼성의료원이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일들이 당시에는 삼성, 그것도 이건희 회장이 병원 개혁을 외쳤기에 가능했던 일들이다.

“낙후된 병원이 환자 입장에서 얼마나 큰 고통인지 너무도 잘 알면서 그대로 둔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기업의 총수로서 할 일이 못된다.”
 
개원 30여 년 만에 국내 의료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의료기관으로 자리매김한 삼성서울병원. 이 같은 대장정의 출발점에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남다른 의료철학과 환자 중심관(觀)이 있었다.
 
지난 1993년 삼성의료원 공사 현장을 방문한 이건희 회장은 “3시간 대기 3분 진료 현실, 보호자 노릇 3일이면 환자가 되는 현실, 촌지라도 집어줘야 좀 어떠냐고 물어보는 현실”을 지적하며 새로운 병원 문화를 주문했다.
 
당시 이 회장은 “일의 양을 반으로 줄이더라도 친절해야 한다”며 “‘삼성은 왜 꼭 친절해야 하는가’라고 말하는 의사들이 있는데, 지금 다른 병원이 안하는 것을 하니 오늘의 삼성이 됐음을 잊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건희 회장의 당부는 촌지 척결을 비롯해 기다림·보호자가 없는 '3무(無) 경영'으로 이어졌다. 당시 이 같은 슬로건은 병원계를 비롯해 사회적으로 적잖은 경각심을 울렸다.

또한 국내 병원 최초로 진료예약제를 실시했으며, 소란스럽고 어수선했던 영안실의 폐습을 합리적으로 개선한 새로운 병원장례문화를 도입했다.
 
이런 노력으로 삼성서울병원은 1990년대 초 병원계 일각에 드리워졌던 낡은 관행을 주도적으로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국내 병원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개원 준비만 10년···이건희 회장 신념으로 탄생한 ‘환자 중심병원’
'최선의 진료로 국민에 봉사, 첨단의학연구로 의학발전 기여, 우수의료인력 양성으로 국민보건 향상에 기여'를 건립 이념으로 시작한 삼성서울병원은 10년에 걸쳐 철저한 개원 준비를 했다.
 
개원 3년 전부터 중견 의료진을 미리 선발해 해외연수를 보냈으며, 이건희 회장 의견에 따라 해외 선진병원 공사를 수주한 회사를 찾아 시설설계를 참고했다.

“회장으로서 가장 신경을 쓰는 데가 반도체와 병원”이라고 말할 정도로 병원에 대한 이건희 회장의 관심은 각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오랜 준비기간 끝에 삼성서울병원은 마침내 1994년 서울 일원동에서 1100병상 규모의 병원을 개원했다. 
 
개원과 함께 ‘환자중심’ ‘고객만족’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환자’에 ‘고객’이란 개념을 더해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으로, 당시에는 파격적인 인식의 전환이었다.  
 
대(對)환자 서비스뿐만 아니라 초기 원내문화 정착에도 신경을 기울였다. 개원 이듬해인 1995년엔 병원계 최초로 준법경영실을 설치하고 감사팀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또 환자를 가장 가까이서 돌보는 전문간호사를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간호부장을 이사직으로 발령내면서 간호사의 지위를 격상시켰다.
 
이근환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부장은 ‘삼성서울병원의 윤리경영 성과와 한계를 중심으로’란 제목의 논문에서 "삼성서울병원은 기존 병원계에는 생소했던 윤리적 리더십과 윤리경영시스템, 조직윤리가치 등 윤리경영을 내세웠다"고 설명했다.
 
처방전산화시스템·의학영상저장전송시스템·통원수술 등 선진의료기술 최초 도입
 
“소프트를 아는 사람을 찾아라.” 이건희 회장은 국내 의료서비스의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선진화를 적극 모색했다.
 
삼성서울병원은 개원 당시부터 첨단 IT를 활용한 업무 개선을 추진했다. ‘환자 중심’이라는 슬로건에 맞게 편의성을 증대하기 위한 다양한 선진기술을 도입했다.
 
대표적인 게 처방전달시스템(OCS)이다. 당시 병원들은 수기 차트를 사용했다. 환자 차트를 의료진에게 일일이 전달하는 과정에서 검사나 진료가 지연되기 일쑤였다. 차트를 보관할 공간 또한 부족했다.
 
전자처방전달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환자들의 이러한 불편함은 대폭 감소했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방전달이 이뤄지면서 투약 오류나 검사 오류를 방지해 보다 안전한 진료도 가능케 됐다.
 
개원과 동시에 전면적으로 투자한 의학영상저장전송시스템(PACS)도 환자의 대기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켰다. 1000 병상 이상 대형병원이 PACS를 도입한 것은 세계 최초이기도 했다.
 
당일 수술 받고 퇴원하는 통원수술(DAY SURGERY) 역시 보호자들의 부담감을 덜어줬다. ‘기다림과 보호자가 없는 환자중심병원’ 이건희 회장의 의료철학은 수많은 선진 IT기술이 국내 의료기관에 도입되는 계기가 됐다.

개원 30주년을 바라보고 있는 삼성서울병원의 기본정신은 ‘환자 행복’이다. 모든 발전의 근간인 병원 이념에는 이 같은 이건희 회장의 뜻이 자리하고 있다.

첨단 의료시스템 도입을 주도한 삼성서울병원이 국내 대표의료기관으로 성장하는 동안 삼성그룹은 국내 의료바이오 분야 성장에도 주력했다.

바이오의약품 시장의 주류인 동물세포 기반의 항체의약품을 전문 생산하는 바이오 CMO(위탁생산) 업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 2010년 "삼성의 주력상품인 스마트폰, LCD 등의 상품도 10년 내에 따라잡힐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해야 한다"는 이건희 회장의 발언에서 출발했다.

이에 삼성그룹은 5대 신수종 사업 중 하나로 제약 산업을 점찍었고 2011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탄생했다.
 
한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10월 25일 서울 일원동 서울삼성병원에서 향년 78세로 별세했다. 지난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5개월만이다.
 
고인은 심폐소생술(CPR)을 받고 소생해 지금까지 치료를 이어왔다. 이후 자가호흡을 하며 재활치료를 받아왔으나 끝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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