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프라이버시 포함 디자인적 가미 '병원 건축' 늘어'
정희정 해안건축 메디컬 플래너
2019.12.29 18:53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박민식 기자] 과거 병·의원 등 의료기관 의사 중심 공간이었다. 병원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곳이며 환자를 치료하는 사람이 의사라는 점에서 이는 일견 당연해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의료기관은 환자를 비롯한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국내 병·의원 건축에서도 조금씩 변화의 기미가 보인다. 환자와 병원에서 일하는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들이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국내서 약 20여년 간 의료기관 건축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정희정 해안건축 메디컬 플래너를 만나 병원 건축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희정 메디컬 플래너는 미국에서 UCSD Jacobs Medical Center, Kaiser Permanente Medical Center, 국내서는 분당서울대병원 마스터플랜, 인하대병원 권역응급센터 신축, 국립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 병동 신축 등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현재 헬스케어디자인학회 교육이사와 한국의료복지건축학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Q. 병원 건축은 어떤 점에서 여타 건축물들과 차이가 있는지

일반 건물은 지어 놓기만 하면 이후에는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인테리어를 하고 공간을 구획하기도 한다. 하지만 병원은 생명을 다루는 곳이기 때문에 동선 등에 대한 고려 없이 설계를 하면 응급상황이 벌어질 경우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공간 하나, 하나를 사전에 전부 치밀하게 계획해야 한다. 이를 위해 병원 내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행위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한데 세부적으로는 진료과 별로도 고려해야 할 부분들이 굉장히 많고 상이하다. 그런 것들을 다 반영해서 각 층별, 건물 전체 동선을 짜내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다.
 

Q. 과거에 비해 최근 들어 우리나라 병원들도 건물 구조와 인테리어 등에 관심이 높아졌다. 국내 병원 건축 패러다임 변화를 소개해달라

한국의 경우 1970년대 후반 정도까지를 1세대라고 본다. 의사가 모든 것을 관할하기 때문에 의사 중심으로 모든 공간을 구성했다. 거기에는 간호사도, 환자도 없었다. 1990년대 초까지 이어진 2세대 들어 환자도 많아지고 의료진이 많이 배출되며 병원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다. 양(量)으로 승부하는 시기였고 당시에는 국내 병원건축에 대한 노하우가 없어 해외 설계사들을 데려와 병원을 짓기 시작했다. 3세대인 90년대 말부터는 규모만을 키워서는 의미가 없다는 사실에 병원들이 눈 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쌓아온 병원 브랜드와 의료 노하우들등의 특색을 살린 자기들만의 병원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건축도 다양성이 생기기 시작했다. 환자 프라이버시를 생각하고 디자인적인 부분들도 고려하는 등 예전과 다른 느낌을 주는 병원들이 많이 건립되고 있다.
 

Q. 미국의 경우는 어떤가

미국도 처음에는 의사가 중심이었다. 그러다가 2세대로 넘어가며 환자 중심이라는 말이 나왔다. 국내에는 최근 들어 등장한 개념이지만 미국서는 15~20년 전부터 주목받고 있었다. 미국은 우리나라처럼 국가보험이 아니기 때문에 환자에게서 수익이 나와야 한다. 자연스레 환자 서비스가 중요해지고 환자가 병원에 들어와서 나갈 때까지 편히 치료를 받고 나갈 수 있도록 하는 환자 중심이 핵심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지금은 환자 중심을 넘어 가족 중심으로 가는 중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간호·간병 서비스를 하면서 병동서 가족들을 내보내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오히려 병동에 가족들을 집어넣는다. 환자들이 가족과 함께 있을 때 회복률이 훨씬 높다는 것을 고려한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1인실이더라도 보호자를 위한 공간이 없는데 미국은 병실 안에 보호자를 위한 공간을 별도로 마련하고 있다. 침대가 있고 테이블 등이 마련돼 있어 가족들이 잠을 자고 간단한 업무도 볼 수 있도록 했다. 또 중환자실에 가족들이 쓸 수 있도록 화장실, 샤워실을 설치한 병원들도 있다.

"일반 건축물과 달리 생명 다뤄 어려운 측면 많은 작업"
"국내서도 환자 중심 개념 등 적용, 병원 건축 다양성 확대"
"미국 시카고 소재 어린이병원 가장 인상 깊었고 지역 커뮤니티 참여 감동적"
"환자외 가족들 등 불러 모으는 한국적 병원시설, 감염 등 취약할 수 있어"
"병원 건축 기획단계부터 의료진과 메디컬 플래너 함께 논의하면 시행착오 많이 줄일 수 있다"

 

Q. 지금까지 본 병원 건축물 중에 인상 깊었던 곳이 있다면

미국에서 병원 투어를 많이 다녔었는데 시카고의 앤&로버트 H. 러리 어린이 병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시카고 도심 한가운데 있는 병원인데 밖에서 볼 때는 병원이 아닌 일반 오피스 건물처럼 생겼다. 그런데 사실 이 병원의 가장 큰 특색은 건물 외형보다도 아이들을 위한 요소가 곳곳에 들어 있다는 점이다. 특히 건축 과정에서 커뮤니티 참여가 굉장히 활발했다. 지역의 소방서, 미술관 등이 합심해 각 층마다 주제를 다르게 잡았다. 예를 들면 소방서에서 담당한 층은 어린이들이 소방차를 타볼 수 있는 등 소방과 관련된 테마로 꾸며져 있다.
또 다른 층은 바닷 속을 테마로 잡았고 그런 곳에 들어오는 그림들은 지역 미술관에서 협찬하거나 미술 전공자들이 같이 디자인에 참여했다. 이렇게 지역 사람들이 함께 참여해서 환자로 2~3개월 병원에 머물러야 할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려해 병원을 디자인하고 동선을 잡아놓은 부분들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옥상 층에는 3개 층 정도를 뚫어서 실내정원을 만들었다. 그 공간을 병상으로 채운다면 수익적 측면에서 훨씬 도움이 될 수 있음에도 병원장이 이를 과감히 포기한 것이다. 대신에 실내 정원을 통해 어린이 환자와 의료진 보다 쾌적한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Q. 미국서도 의료시설 관련 프로젝트를 다수 진행했는데 한국 의료시설 차이점이 있다면

일단 의료 체계가 다르다. 우리나라는 의료수가가 낮아 환자들의 병원 접근성이 높고 하루에 의사 한명이 보는 환자 수가 미국에 비해 월등히 많다. 이러한 시스템의 차이가 의료 공간에 대한 접근 방식도 다르게 만든다. 미국은 기본을 중요시 여긴다. 시설로 보면 열악한 미국 병원들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작은 병원이더라도 의료라는 기본 기능에 충실하다. 환자가 있어야 하는 공간, 의료진이 있어야 하는 공간, 그리고 둘이 만나는 공간에 대한 구분 등이 엄격하다. 
우리나라는 일단 환자도 많고 공간도 부족하다보니 환자들에게 손쉽게 어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인테리어를 화려하게 바꾸는 데 집중한다. 또 우리나라는 진료 외 부분에서 수익을 내기 위해 사람을 병원으로 자꾸 끌어들이려고 한다. 병원 내에 식당가도 커지고 갤러리를 만들어 놓는 등 상업시설이 늘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을 병원으로 불러들이면 감염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은 병원에 절대로 그런 시설들을 집어넣지 않는다. 미국은 환자 진료를 통해서도 충분한 수익이 나기 때문에 식당도 환자와 방문객들이 쓸 수 있게 아주 간단하게 돼 있다.

 

Q. 최근 국내외적으로 감염병 예방 관심이 높다. 병원 건축이 어떤 방식으로 도움이 될 수 있나

그런 부분이야말로 디자인으로 풀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메르스 이후 감염이 심각한 이슈가 됐다. 병원에서 리노베이션도 많아졌고 격리실과 관련한 법률도 새로이 제정됐다. 하지만 처음부터 환자 동선, 의료진 동선, 서비스 동선을 명확하게 디자인을 통해 구분했었다면 그렇게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병동에 가면 손 씻는 세면대가 있는데 이것도 그냥 설치하면 안 된다. 의사가 먼저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환자를 볼 수 있도록 하는 등 디자인을 통해 동선을 잡아줘야 한다. 병동도 마찬가지인데 방문객과 환자 전용 라운지를 별도로 둬야 한다. 나중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남는 공간에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계획 단계부터 그런 것들을 고려해 건축해야 한다. 요즘에는 환자 전용 엘리베이터, 의료진 전용 엘리베이터, 방문객 전용 엘리베이터 등이 별도로 있는데 한 홀에 두고 엘리베이터만 구분하지 말고 아예 홀을 다르게 해야 한다. 이렇게 사전에 디자인적으로 고려가 잘 돼 있다면 감염병 전파 확률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
 

Q. 정신질환자, 치매 환자 등에 대한 인식이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이들을 위한 의료시설은 어떤 방향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나

우리가 생각하는 정신의료기관은 암울한 이미지로 정상인이 들어가도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 있다. 따라서 환자들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정신질환자들이 기피하는 색상을 디자인에서 배제하는 식의 배려가 필요하다. 정신질환자들은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경우가 많아 건물에 창문을 아예 만들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이는 환자의 심리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창문을 만들되 열리지 않게 하거나 위쪽에서 열리게 하는 식으로 창문을 설치할 수 있다. 치매 환자는 본인 방이 어딘지 몰라 계속 헤맬 수 있다. 환자들이 쉽게 병실을 찾을 수 있도록 코너마다 표지를 둔다던가 층별로 디자인적 요소를 달리할 수 있다.
 

Q. 마지막으로 병원 건축과 관련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병원 건축 기획단계에서부터 의사와 메디컬 플래너가 함께 논의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야 병원의 비전과 미션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건축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개축, 증축을 고려한 설계도 가능해진다. 가령 수술실에 다빈치 수술기기를 도입하기 위해 공간을 개조해야 한다고 하자. 그런데 의료기술은 매년 발전하기 때문에 건물이 지어져서 오픈할 시기에도 다빈치가 계속 활용되고 있을지 알 수가 없다. 그런 의료계 흐름은 의료진이 더 잘 알 수 있는 부분인데 사전에 메디컬 플래너와 논의할 시간이 있다면 그런 부분도 설계에 반영할 수 있다. 초기 논의 과정을 거치지 않아서 오픈과 함께 리노베이션에 들어가야 하는 병원들도 많다. 처음부터 제대로 논의가 이뤄지고 방향성을 잡아간다면 그런 문제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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