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중증도 보정' 비상 걸린 상급종합병원
지원금 차단 등 경영손실 우려…진료과 간 위화감 ‘몸살’ 예고
2019.10.24 12:22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박대진 기자/ 기획 3] 의료전달체계 단기 대책 중에서도 최대 화두는 단연 ‘환자 중증도’였다. 경증환자 진료에 따른 패널티 부여가 예고되면서 전국 상급종합병원들은 그야말로 비상이 걸렸다.

여기에 대폭 상향 조정된 중증환자 비율이 상급종합병원 지정 조건으로 제시돼 병원장들을 긴장케 하고 있다.
중증도가 의료전달체계의 핵심으로 급부상하면서 진료현장에서는 벌써부터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억지춘향식 중증도 보정작업부터 진료과 간 위화감 문제까지 상급종합병원들은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이다.

수가 패널티에 진입장벽 높아진 상급종병

우선 대학병원들은 환자 쏠림현상 해결책으로 병원에 대한 패널티 카드를 꺼내든 것에 대해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정부는 현재 질환 경증이나 중증 여부에 관계없이 환자 수에 따라 동일하게 지급하던 의료질평가지원금과 종별가산율을 대폭 수정했다.

상급종합병원이 100개 질환에 해당하는 경증환자를 진료할 경우 의료질평가지원금을 지급하지 않고 종별가산율 적용 역시 배제시켜 중증환자 진료 중심으로 전환한다는 복안이다.

의료질평가지원금의 경우 상급종합병원 1등급 기준으로 외래진료 당 8790원이 지급된다. 개선안이 적용될 경우 상급종합병원들은 약 400억원대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병원계는 추산했다.

뿐만 아니라 상급종합병원에서 외래 경증으로 확인된 환자에 대해서는 종별가산율 30% 적용도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정부는 경증환자에 대한 수가 보상을 줄이는 대신 중증환자에 대한 보상은 적정 수준으로 조정한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상급종합병원 지정기준 역시 중증도 조정에 초점이 맞춰졌다.

지금까지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되기 위해서는 전체 입원환자 대비 중증환자 비율이 21% 이상이어야 했지만 앞으로는 30% 이상으로 강화된다.

특히 중증환자 비율이 최대 44%에 달하는 병원은 상급종합병원 지정평가에서 가산점을 부여함으로써 중증환자 진료 기능 강화를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반대로 경증환자 비율은 입원의 경우 기존 16%에서 14%, 외래환자는 17%에서 11%까지 하향조정하기로 했다. 경증환자 비율이 낮을수록 많은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상급종합병원 중 이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란 게 병원계 분석이다. 4주기 평가의 대혼동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경증환자 비율 줄여라!”

상급종합병원들의 중증환자 비율을 높이고 경증환자 비율을 낮추기에 정책 방향이 설정되면서 진료 일선에서는 벌써 심상찮은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환자 구성비율이 상급종합병원 지정 평가에서 60%라는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당락 여부의 결정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빅5 병원’과 달리 중증환자 비율이 상급종합병원 지정 기준에 못미치는 병원들의 경우 재지정에 대한 불안감이 상당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때문에 수도권 소재 일부 대학병원들의 경우 중증환자 구성비율을 맞추기 위해 임의로 환자비율을 조절하는 촌극까지 연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자력으로 힘든 중증환자 비율 높이기 보다 경증환자 비율을 줄이는 방식으로 환자 구성비율을 맞추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A대학병원은 최근 의료진에게 ‘외래진료시 경증환자 비율을 줄이라’는 특명을 내렸다. 환자수 감소를 감수하더라도 상급종합병원 자격은 유지하겠다는 의지의 발로였다.

B대학병원 역시 경증환자 설득 작업이 진행 중이다. 기존 같으면 1일 외래환자 수에 집착했겠지만 최근에는 경증환자가 밀려와도 달갑지 않다는 분위기다.

C대학병원은 경증환자 줄이기 보다 원칙론에 입각해 중증환자 비율을 높이기 위해 협력병원들을 종용하고 있지만 환자 수에는 큰 변화가 감지되지 않았다.

4주기 평가에서 ‘상급종합병원’ 타이틀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중증도 보정작업이 필요한 만큼 일부 병원들은 질병코드 변경 등의 편법까지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중증도 문제는 상급종합병원 내 진료과 간 위화감 조성으로도 비화되는 모습이다.

상대적으로 경증질환 비율이 높은 진료과의 입지는 줄어들고 중증질환을 주로 보는 진료과의 위상은 높아지는 기조가 형성되고 있는 실정이다.

가정의학과를 필두로 피부과, 이비인후과, 안과 등은 울상이며 외과와 흉부외과, 신경외과 등 중증환자 수술 빈도가 높은 외과계열 진료과 등은 웃음을 짓는 형국이다.

경증질환 분류체계 비현실성 논란

중증도 보정 전쟁 한 켠에서는 경증질환 범위에 대한 불만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복합상병을 고려하지 않은 천편일률적 질환 분류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우선 복지부가 이번 단기대책 발표에서 규정한 ‘외래 경증질환’ 범위는 ‘약국 요양급여비용총액의 본인부담률 산정특례 대상’에 포함된 100개 질환이다.

약제비 본인부담 차등제는 가벼운 질환으로 대형병원을 이용하는 경우 환자들에게 약제비를 더 부담토록 한 제도로, 지난 2011년 의료기관 기능 재정립 기본계획에 따라 시행됐다.

100개 질환에 해당되는 환자가 상급종합병원 처방전으로 약을 구입하면 50%, 종합병원 발행 처방전이면 40%, 병의원 처방전이면 30%의 본인부담률이 적용된다.

당초 52개였던 약제비 본인부담 차등적용 질환은 지난 2018년 11월부터 100개로 확대된 바 있다.

복지부는 이 100개 질환에 해당하는 환자가 상급종합병원 외래를 바로 이용할 경우 현재 60%인 진료비 본인부담률도 인상하고 본인부담상한제에서도 제외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빅5 병원을 비롯한 상급종합병원 대부분이 경증질환의 분류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고 지적했다. 환자의 기저질환이 담보되지 않은 일차원적 분류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한 상급종합병원 병원장은 “중증환자들의 기저질환을 담보하지 않은 경증질환 분류는 오히려 환자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며 “복합질환을 기본으로 하는 체계 분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상급종합병원 기조실장은 “정부는 개원가의 다빈도 상병 100개를 경증질환으로 판단하지만 이는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서울대병원은 정부가 의료전달체계 개선 단기대책 및 상급종합병원 지정기준에서 제시한 경증질환 분류체계의 비현실성을 바로잡기 위해 별도의 TF를 꾸렸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중증환자의 복합질환을 반영한 질병 분류작업을 진행 중”이라며 “정부와 협의해 경증질환 분류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가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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