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故임세원·故윤한덕 교수 사건 막아야' 법안 봇물
의료인 폭행사건 빈발 '사후약방문'···처벌 강화 등 대책 '갑론을박'
2019.04.17 11:03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정숙경기자/기획 4]본인이 “자살을 결심한 우울증 환자였다”는 것을 밝히면서까지 위기에 노출된 정신질환자들을 끌어안기 위해 한평생을 살아온 의사. 그리고 응급실에서 쪽잠을 자면서도 중증환자들이 제때 치료받는 꿈을 꿔 왔다던 또 다른 의사. 지난 연말과 올 초 연달아 전해진 이 의사들의 사망 소식에 아직도 우리 사회는 충격과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故임세원 교수가 진료 중 조울증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한 사건에 대한 청원에는 이러한 심정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병원에서 환자의 치료에 성심을 다하려는 의사를 폭행하고 살인하는 것은 한 의사의 목숨뿐만 아니라 수많은 환자들의 목숨을 위협에 빠뜨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반의사불벌죄 폐지 등 ‘임세원法’ 줄줄이
지난 2월17일 서울 도봉구 도봉산의 한 사찰에선 임세원 교수의 사십구재가 조용히 치러졌다.유가족들은 물론 그를 알지 못하는 의료인들도 마음 다친 환자를 위해 평생을 바친 임 교수를 2018년에 두고, 그렇게 2019년으로 흘러왔다.

늦었지만 임 교수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온 국민이 슬퍼하는 사이 국회가 이른바 ‘임세원法’ 추진을 서두르고 있다.

이미 “제2의 임세원을 막자”며 여야를 막론하고 잇따라 법안을 내놓았다.

구체적으로 보면 박인숙 의원(자유한국당)이 의료기관에서 진료 방해나 의료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의 경우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더라도 처벌할 수 있도록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며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황이다.

수사기관에서 합의를 권고 받는 분위기 속에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 더불어 의료인에 대한 폭행 처벌 내용 중 벌금형을 삭제하고 징역형만을 부과토록 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박 의원은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 일정규모 이상의 보안장비 설치와 보안요원을 배치토록 하고 관련 예산은 국가에서 지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승희 의원(자유한국당)도 의료법 개정안 발의에 합류해 있다. 김 의원은 의료기관 개설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설치기준에 따라 의료행위가 이뤄지는 장소에 비상벨이나 비상문· 비상공간을 설치토록 하는 내용을 담아 법안을 제출했다. 소요 경비는 정부 예산 범위에서 지원하자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김 의원 역시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며 “지금까지 ‘의료인 안전은 병원 몫’이라는 무책임한 태도를 취해 온 정부의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기동민 의원(더불어민주당) 역시 의료인에 대한 폭력 행위를 엄단하는 내용을 담아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재발 방지를 위해 응급실 외 진료공간에서 발생하는 폭력 행위도 엄벌에 처하도록 했다.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응급의료법 개정안과 마찬가지로 진료 중인 의료인을 폭행해 상해나 중상해, 사망의 결과가 발생한 경우 가중처벌하도록 했다. 

이외에도 신동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의료행위가 이뤄지는 장소에서 안전한 진료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보건복지부 장관이 매년 진료환경 안전에 관한 실태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며 의료법 개정안을 제출한 상태다.

여기에 지난 11일 의사의 ‘진료거부권’ 신설을 담은 법안까지 제출되면서 적지 않은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김명연 의원(자유한국당)이 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은 의사가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를 법률로 규정하자는 것이 골자인데 이는 법적 구속력 보장과 맞닿아 있어 자칫 의사와 환자 간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현행 의료법 제15조1항은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 거부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당한 사유'에 대해선 복지부 유권해석을 따르도록 하고 있다.

김 의원은 “안전한 진료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확실한 법적 구속력이 보장된 정당한 사유의 구체적 사항을 법률에 직접 명시할 필요가 있다”며 “의료기관내 폭행 등 사고의 우려가 있을 때 진료를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윤한덕법도 추진 속도 낼까…“의사 안전 모른척 했다”
‘임세원법’과 함께 ‘윤한덕법’ 추진도 국회 내에서 본격적으로 속도를 낼지 지켜봐야할 대목이다. 국립중앙의료원 故윤한덕 응급의료센터장은 지난 설 연휴, 병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고인은 명절을 앞두고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는 돌발 응급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재난의료상황실에서 근무하다 누적된 과로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다.

때문에 현재 보건복지위원회 내에서는 계류 중인 법률안 1179건 모두 시급히 처리돼야 하지만 장시간 근무에 노출된 의료계의 근무환경을 개선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심각성을 인지한 듯 기동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1일 응급의료 관련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응급실을 전담하는 인력 부족은 과도한 업무량과 근무시간,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이어져 결국 응급의료종사자의 근무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현행법에 따르면 국가 및 지자체 예산 범위에서 응급의료기관 및 응급의료시설의 재정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응급의료기금으로 응급환자 진료시설 설치 자금 융자 또는 지원, 자동심장충격기 지원 등을 규정하고 있다.

기 의원은 “故윤 센터장의 과로사를 계기로 낙후된 응급의료 체계 개선과 인력부족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며 “국가 및 지자체가 응급의료기관 및 응급의료시설에 대해 지원할 수 있는 재정범위에 응급의료종사자 확충을 위한 비용 지원을 추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위 소속은 아니지만 같은 당 권칠승 의원도 국내 응급의료 체계 구축에 헌신해온 故윤 센터장 사망 사건을 계기로 현재 응급의료센터의 살인적인 노동 강도를 우려했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한 권 의원은 “직무 성격상 다양한 사고로 인한 환자들의 참혹한 상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며 “일상적으로 생과 사를 경험하게 됨으로써 의료진 역시 심리적, 정신적 손상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현장에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경우가 많아 인력 수급의 한계로 직결되기도 한다. 권 의원은 “의료진의 심리적 안정을 통한 업무 지속성 제고와 함께 효율적 직무 수행을 위해 권역외상센터에 의료인을 대상으로 한 트라우마센터가 설치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여기에 복지위 간사 최도자 의원(바른미래당)은 당 의원총회 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처리돼야 할 입법 과제는 임세원법인 ‘의료법’과 ‘정신건강증진법’, 그리고 ‘윤한덕법’인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 처리”라고 환기시켰다.

그러면서 고인의 뜻과 같이 불합리한 응급구조체계 개선 내용이 담긴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처리되지 못하고 현재 계류 중이라며 유감의 입장을 전했다.

최 의원은 “환자 안전에 집중하는 동안 의사 안전은 사실상 모른척 했다”며 “국민 건강과 안전을 위해 불철주야 자신의 삶을 내어놓는 의사들이 더 안전한 근로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으려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변죽만 울린 국회…임세원·윤한덕法 대폭 완화
하지만 사건·사고 초기 일었던 여론에 비해 국회가 내놓은 결과는 의료계가 원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물론 외래치료지원제(외래치료명령제)·정신질환자 퇴원사실 통보·의료인 폭행 등에서는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으나, 반의사불벌죄 폐지 무산·응급의료기관 내 청원경찰 배치 의무화 및 국가 경비 부담 등은 예산책정도 어렵게 됐다.

우선 임세원법은 임의 후견인 지정과 가정법원의 강제입원 판단 등 사법입원제를 제외한 채 외래치료지원제 등 내용이 담겼다. 개정안은 보호의무자 동의가 삭제되면서 기존 보호자가 부담하던 치료비용을 국가가 부담토록 했고, 외래치료 상한기간 철폐(1년)는 포함되지 않았다.

정신질환자 퇴원사실을 통보하는 내용도 본인·보호의무자 등에 사전에 사실을 알리고, 당사자가 퇴원을 거부하는 경우에는 통보할 수 없으며, 정신건강심의위원회 심의를 받은 후 통보토록 했다.

통보 대상자는 자신 또는 다른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에 해를 끼치는 행동으로 입원한 사람이다.
의료인폭행방지법에서 반의사불벌죄 폐지는 무산됐고, 처불수위도 응급의료법보다는 낮고 형법보다는 높은 수준으로 접점을 찾았다.

이에 따라 처벌수위는 의료인 상해 시 7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상 7000만원 이하 벌금, 중상해 시 3년 이상 10년 이하 징역, 사망 시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 등으로 결정됐다. 처벌수위와 관련해서는 여야간 진통이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응급의료법은 상해 시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상 1억원 이하 벌금, 중상해 시 3년 이상 유기징역, 사망 시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더불어 응급의료기관 내 청원경찰 배치 의무화 및 국가 경비 부담 등은 예산책정 없이 기금을 통한 지원으로 이뤄지게 됐다.

대상은 전체 의료기관이로 하되, 복지부 하위 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기관 규모별로 의무사항을 차등화 하는 것으로 수렴됐다.

예를 들어 보유 병상별로 장비나 인력을 달리하는 식이다. 복지부는 임세원·윤한덕법 등 법안소위 통과에 대해 “복지부 소관 개정 법률안을 통과시켜준 데에 감사하다”며 원론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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