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부터 문재인 대통령 시대까지 의사는 사회 공적인가?
박두혁 데일리메디 논설위원
2018.04.29 20:20 댓글쓰기


1980
12.12 군사쿠데타를 거쳐 198133일 대한민국 제 12대 대통령에 취임한 전두환은 취임식 며칠 후 대한의사협회 회장을 비롯한 임원진과 주요 대학병원장 등 의료단체장들을 청와대로 초대해서 상견례를 가졌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의료인은 청와대를 나서자마자 앞으로 의료계 앞날이 심히 걱정된다며 한숨을 쉬었다.

왜 그러냐고 이유를 물었더니, 일국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의사들을 앞에 놓고 하는 말이, 나는 몸이 건강해서 그런지 병원에 거의 안 갑니다. 감기가 왔다싶으면 소주에 고춧가루를 확 풀어서 마시면 낫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렇지 않겠지요? 아프면 병원에 가야지요. 그런데 병원비가 너무 비싸다는 게 문제입니다. 여기 모인 선생님들, 제 부탁이니 병원비 좀 싸게 해주세요!” 하면서 자기 배를 탕탕 두드리더라는 것이다.

80년대 초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한 나라의 대통령이 우리 사회의 가장 엘리트그룹이라고 할 의사들을 앞에 두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참석했던 의료인들은 모두 몸서리를 쳤다고 한다. 힘 있는 자들의 속성은 자신보다 힘은 없으나 기술이나 지식, 심성에서 앞서가는 사람을 못살게 구는 것으로 만족을 느낀다는 속설이 있다. 이는 전두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전두환에 이어 대통령자리를 물려받은 노태우는 집권 초 군사독재에 시달려 온 민심을 달랜다면서 의료보험을 전 국민에게 확대 적용하는 소위 국민건강보험시대를 열었다. 이 과정에서 수가 조정 등 의료계의 요구는 거의 묵살됐다.


문민정부를 자처한 김영삼 대통령시절은 어떠한가
? 의료계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무려 9개 의과대학을 새로 허가했다. 장기적인 의료인력 수급정책보다는 의사 수가 늘면 경쟁을 통해 의료비를 낮출 수 있다는 산술적 하급 발상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는
국민에 대한 약속을 핑계로 의약분업을 밀어붙였다. 측근들이 너무 급하게 서두르지 않는 게 좋겠다는 충언이 있었으나 돌아온 답은 정치하는 사람은 표를 먹고 삽니다였다고 전해진다. 4천만 표에다 10만 표를 비교할 수 있느냐는 뜻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의료보험재정의 건실화를 앞세워
공급자관리를 통한 재정누수 방지를 주요 정책으로 내세웠다. 의료급여심의위원회를 적극 가동하여 심사 평가를 대폭 강화했다. 의약분업 이후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한 리베이트 문제를 슬슬 캐내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 초기 대통령인수위원회에 참여하였던 한 의료인은
정부가 의료보험요양기관 당연지정제도를 폐지, 또는 개선하고 의약분업 재평가를 통한 선택분업 등 획기적인 보건의료개선정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해 모든 의료인이 큰 기대를 걸었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된 것이 없다. 임기 내내 리베이트 폭풍만 휩쓸고 지나갔을 뿐이다.


박근혜 정부도 마찬가지다
. 의료보험 보장성강화를 내세워 급여확대를 계속하면서 의료계가 요구하는 수가현실화는 임기내내 외면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뜬금없이 원격의료를 들고 나와 의료계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치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의료계는
문재인 케어를 앞에 두고 칼을 벼르고 있다. 그러나 저지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실패할 가능성이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때마다 의사를 이기적인 공공의 적으로 몰아가는 정치가와 관리들의 술책이 늘 이겼기 때문이다.

의사와 환자 관계에서 믿음이 많이 깨진 사회구조


일반적인 상거래에서도 그렇기는 하지만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에서는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
. 더구나 존경받고 신뢰를 받아야 할 의료계를 계속 불신으로 몰아가는 정책이 과연 좋은 것일까? 의사를 사회의 공적으로 만들어서 좋을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곰곰 생각해봐도 떠오르는 것이 없다.


그러니
, 당사자인 의사들은 더욱 갑갑하고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요즘 개원의사들은 모두 희망이 없다고 푸념한다. 지난 30여 년간 의사라는 특수성 때문에 할 말 못하고 참고, 참아 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사실 어떻게 되리라는 희망도 없으면서 의협이 결정한다면 진료실 문을 닫고 거리에 나서겠다고 한다
. 며칠 뒤 보건소나 경찰서에서 오라 가라, 진술서나 각서를 쓰라고 할 것이 빤하지만 그럴지언정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가 많이 빨아먹고, 떼어갔으니, 이제는 좀 놓아둘 수 없겠느냐는 호소일 뿐 외침도 고함도 아니다. 여기에 찾아오는 환자들과 살갑게 마주앉아서 진료도 하고, 집안이야기도 나누면서 의사답게 살게 해달라는 것이 그들의 작은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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