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청이 소아환자, 맑은 영혼의 성인으로 자라나길'
김지남 교수(건국대병원 성형외과)
2016.03.07 07:30 댓글쓰기

길지 않은 경력이지만 내게도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습니다. 성형외과 레지던트 1년차 들어왔을 때 처음으로 엄기일 교수의 집도로 구순구개열 수술을 받고 현재까지 추적관찰 중인 아이입니다.


아이는 양측성 구순구개열로 입술뿐만 아니라 입천장까지 갈라져 있는 상황이어서 수유도 힘들어서 여러모로 보호자의 고생이 많았습니다. 입술과 입천장이 동시에 심하게 갈라져 있는 경우에는 latham 이라는 장치를 직접 제작해서 입천장에 고정시킵니다.


장치에 나사를 연결하여 돌려주면서 입천장을 넓혀, 튀어나와 있는 전상악골을 구강내로 넣어주는 방법인데, 이제 2개월 갓 넘은 아이에겐 참으로 험난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입안에 거대한 장치를 하고 뼈를 날마다 움직여야하니 얼마나 힘이 들까요. 아기가 계속 보채고, 우유도 잘 먹지 않으니 살이 빠지고, 그런 아이를 돌보는 보호자도 덩달아 야윕니다.


그래도 점점 먹는 양이 조금씩 늘어가고, 아이도 어느 정도 장치에 적응을 하는걸 보면서 이제 좀 한숨 돌리는구나 싶은데, 딱 그 즈음에 장치를 제거하고 입술수술을 하게 됩니다.

그래도 장치를 제거하면 아이가 먹는 것이 좀 편해져서, 첫 수술 때 보다는 보채는 것도 덜하고 비교적 잘 놉니다. 그리고 확연히 갈라져 있던 입술이 수술 후에는 정상적인 모양을 형성하고 있으니 보호자도 의료진도 기쁘고 만족하는 시간입니다.


우유를 먹어 거즈가 젖을 때마다 상처 소독을 열심히 해주고, 아이와 살도 맞대고, 그러다 보면 어느 새 제가 반 보호자처럼 됩니다. 아이 성향도 파악하게 되고 언제 울지도 알게 되죠. 그렇게 수술에서 회복이 되고 외래에서 종종 만나다가 아이가 돌이 가까워져서 다시 외래에 왔습니다. 입천장 수술을 잡을 시기가 된 것이죠.

6개월 만에 아이를 만나서 그간 너무 많이 큰 모습에 깜짝 놀랍니다. 엄마 품에만 안겨있던 아이가 이제 슬슬 말도 하고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니 신기하기도 합니다. 괜히 뿌듯하기도 하고. 


비록 돌은 지났지만 입천장 수술이 아이에겐 꽤 힘이 듭니다. 특히 주변 상황 돌아가는 것을 조금씩 알 때라서 아무것도 모르고 당했던(?) 2개월 때와는 달리 더 많이 울고 떼를 씁니다.

우유만 먹던 그때와 달리 이제는 맛있는 것을 많이 먹을 줄 아는데, 수술 후 1주일간 우유만 먹어야하니 배가 고파서 짜증도 많이 냅니다. 아이 어머니는 숨어서 먹거나 아니면 혼자 먹기 미안하다며 아이와 같이 우유만 마시기도 했습니다.


입술과 입천장 수술이 다 잘 아물고 결과가 좋아서 참 보람있고 행복했습니다. 힘든 수술을 여러 번 하는데 다 잘 견뎌주고 쑥쑥 커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제가 이 분야를 택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은 다 너무 순수하고 예뻐서 눈을 맞추고 있으면 행복감이 밀려오거든요.


입천장 수술을 하고 나면 이제는 아이의 언어 발달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말의 빈도 자체가 낮은 아이들도 많고 발음이 부정확해서 부가적인 수술을 필요로 하는 경우도 있어서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발음이 여느 아이보다 좋고 언어치료도 필요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렇게 6개월에 한 번씩 꾸준히 외래에서 만나다가, 어느덧 아이가 자라서 초등학교 입학하기 1년 전에 2차적인 입술과 코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수술을 하는 것은 학교 들어가기 전에 아이의 외형을 개선시켜 교우관계에 지장이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조금 다른 얼굴 때문에 다른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입술과 코 수술을 해 주었습니다. 수술은 잘 되었지만 양측성 구순구개열의 특성이 잔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그 점이 참 마음 아팠습니다.


이제 그 아이는 잇몸 뼈 이식 수술을 해야 합니다. 양측성이어서 6개월의 간격을 두고 한 번에 일 측씩 두 번 해야 하죠. 그 작은 아이의 엉덩이뼈에서 해면골을 채취해 잇몸에 이식해서 갈라진 잇몸을 교정하는 수술입니다. 그 수술이 끝나도 아이는 또 다른 전신마취 하 수술을 앞으로도 수차례 더 받아야 합니다.


태어나서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그렇게 수술대 위에 계속해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보통의 아이들은 여간해서 겪지 않는 상황을 백일도 되지 않은 때부터 끊임없이 겪어야 한다는 것이 참 안타깝고 속상합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이 세상에 나왔을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제가 곁에서 함께할 수 있다는 것과 아이의 성장과정을 지켜본다는 것이 제게는 기쁨이고 행복입니다.


제가 수술하는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자라길 바랍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든 시기가 많고 어려운 일이 거듭되겠지만 좌절하지 않고 꿋꿋하게 헤쳐 나가기를, 그리고 고난을 겪은 만큼 더욱 더 성숙해서 맑은 영혼을 지닌 성인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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