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쥐와 시골쥐
권은중 차장(한겨레신문 경제부)
2013.04.09 18:53 댓글쓰기

 

이솝 우화에 일화가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시골에 살던 쥐가 서울쥐의 이끌림으로 서울에 갔다가 풍족하지만 정신적으로 힘든 생활에 지쳐 다시 자기가 살던 시골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다.

 

세종시에 살고 있는 나는 요즘 시골쥐의 맘을 헤아리게 됐다. 한달전까지만 해도 서울에 가지 못해 안달이 나 목요일 저녁부터 서울에 올라가야 안심이 됐던 서울쥐인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넉달 전에 나는 세종시로 왔다. 국가예산과 경제정책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를 취재하던 나는 지난해 12월15일 재정부가 세종시로 옮김에 따라 세종시에 살게 됐다. 가을에 집을 구하기 위해 처음 온 세종시는 패닉 그 자체였다. 도시는 온통 공사 중이었고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과연 많은 공무원들이 일을 할 수는 있을지 또 내가 기사를 쓸 수 있는 곳이 마련될 수 있을까 우려됐다.

 

예상대로 많은 공무원들은 국회 출입을 이유로 내려오지 않았다. 취재는 오히려 서울에 가서 하는 게 나았다. 생활도 악전고투였다. 무엇보다 먹는 게 최악이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20km를 달려 대전으로 그리고 조치원으로 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동하는 데만 30분이 걸렸다.

 

그게 귀찮으면 구내식당을 가야 했다. 3곳의 구내식당에서 끝도 없이 줄을 서야 했는데 그렇게 긴 줄을 선 끝에 먹는 구내식당 밥은 세종시 생활을 가장 힘들게 하는 부분 중에 하나였다.(지금은 하도 원성이 자자해 많이 개선됐다.)

 

거기에 지난해 눈이 많이 내렸는데 내린 눈은 거의 녹지 않았다. 그나마 도로는 제설을 했지만 산과 들에 쌓인 눈을 보이지 않게 치우기는 불가능했다. 황폐할 대로 황폐해진 마음에 온통 눈으로 덮혀 있는 자연은 절망을 넘어 재앙이었다. 많은 공무원들이 우울증을 호소한 것은 아마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평소 낙천적인 나도 우울감이란게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세종시에 있다가 처음 서울에 올라와서 가장 놀란 것은 서울 거리에 눈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혹한에도 불구하고 서울은 눈이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물론 골목으로 들어가면 지저분한 눈이 수북히 쌓여있었지만 말이다.

 

세종시에서 눈덮힌 산과 들을 보면서 왜 조선시대 왕이 미운 신하는 평안도, 함경도에 보내고 그래도 이쁜 구석이 있는 신하는 남도로 보냈는지 이해됐다. 함경도 북관이나 경성 등으로 귀향을 가서 살아온 사람이 없었다고 하던데 그 이유는 긴 겨울 때문이었고 핵심은 눈이었다. 사방이 공사판이어서 나무도 없는 세종시의 황량한 벌판에 쌓인 눈은 황폐해진 마음에 뻥뻥 구멍을 뚫어놓았다. 그래서 겨우내 엄청나게 술을 마셨다. 동병상련인 사람이 많아 술친구도 많았다.


 살기 위해서는 세종시를 벗어나야 했다. 매주 서울로 올라갔다. 일요근무도 서울에서 출근을 하고 월요일 새벽 통근버스를 타고 세종시로 내려왔다. 주중에도 약속이 있으면 서울을 갔다가 밤이나 다음날 새벽에 내려왔다. 저질 체력이 바닥이 날 법도 했는데 마음만은 흡족했다.
 
 ▶그때 서울은 해방구이자 치료소였다. 나는 서울에 오면 무슨  광기에 빠진 사람처럼 쇼핑을 했다. 책과 음반, 옷, 구두 등을 정신없이 쓸어 담았다. 심지어 핸드크림 정도만 기웃거리던 화장품도 에센스 등 세트로 구입했다. 마카롱이나 쇼콜라퐁당 같이 잘 먹지 않던 달디단 과자나 케익도 챙겼다. 구입 기준은 선호도가 아니라 세종시에는 이런 게 없다는 이유였다. 10년을 잘 듣던 오디오가 망가지자 고쳐서 다시 쓸 생각은 하지 않고 두달 월급을 한푼도 안써야 살 수 있는 고가의 오디오를 서울에 올라가서 아무 고민도 없이 덜컥 사버렸다.(지금도 후회하고 있다.)

 

 ▶서울에서만 산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눈 덮힌 곳에서 살다가 도시의 네온 사인을 보면 포근함이 느껴진다. 나도 처음 느껴본 감정이었다. 심지어 서울의 매연에서 버터냄새를 맡게 된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접어들면 서울의 빌딩들이 무슨 버터로 빚어놓은 조형물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런 내가 3월이 들면서 서울에 잘 올라가지 않고 있다. 일요일 출근하는 주면 세종시에서 주말을 오롯이 보낸다. 이웃 대전의 카이스트 도서관에도 가보고 계룡산에도 오른다.

 

이런 변덕의 이유를 대라면 봄기운 때문이다. 초등학교 이후 단 한번도 시골에서 생활해본 적이 없는 나에게 세종시의 봄은 인상적이었다. 눈이 녹으면서 먼 산에서 봄빛이 몰려왔다. 아직 녹색은 없지만 냄새가 달랐다. 하늘하늘한 봄냄새가 났다. 처음 느껴 보는 기운이었다. ‘이게 뭘까’하는 의문도 들었다.

 

시골의 봄은 도시보다 훨씬 더 빨리 온다. 보름 이상 먼저 오는 것 같다. 매일 같은 풍경의 서울과 달리 세종시 산과 들의 풍경은 하루가 다르다. 눈이 싹 녹아버리면서 매일매일 약동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겨우내 황량하고 구멍난 마음이 스스로 아물면서 치유가 됐다.

 

주변의 풍광은 치유를 도왔다. 산과 들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사람들의 표정도 좋았다. 계룡산 수통골에서 만난 천진한 사람들의 표정은 서울 사람들의 표정과 확실히 달랐다. 서울 사람들의 화나고 쫓기는 듯한 표정을 대전과 세종시 사람들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세종시의 33평 전세가 1억5000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이들의 여유는 어디서 오는 지 대충은 짐작할 수 있다.

 

그러고보니 세종시나 대전에서는 느릿느릿 출발 한다고 뒤에서 빵빵 거리는 걸 본 적이 없다. 조금 막힐 때도 있지만 언제나 도로는 뻥 뚫려 있었고 사람들의 운전에는 여유가 있었다. 조그만 틈만 있으면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는 서울과는 달랐다. 10년 전 대전 정부종합청사로 이사온 이주의 선배격인 통계청 사람들이 “대전에서 3년 살면 서울 못가”라는 말이 슬슬 이해가 됐다.

 

그러다가 대전 시내의 성심당이라는 빵집을 가게 됐다. 튀김 소보루빵이 그렇게 맛있다는 소문에 기자들 몇 명이 대전의 도심을 가게 됐다. 대전의 88도로로 불리는 앙증맞은 하천도로를 가로질러 갔던 성심당의 튀김 소보루의 맛은 각별했다. 그날 이후로 세종시 주변에 있는 맛집을 찾아다니게 됐다.

 

그런데 놀라웠다. 튀김 소보루처럼 세종시 주변 맛집은 서울에 알려지면 아마 대박이 아니라 주변 상권이 초토화될 수 있을 정도로 맛있는 집이 많았다. 인삼이 아니라 산삼(재배 산삼)을 넣은 백숙을 4명이 먹었는데 가격이 10만원이 안됐다. 산삼 들어간 막걸리도 무한리필이다. 주인 아주머니는 서비스라면서 한사람 앞에 한뿌리씩 산삼을 주기도 했다.

 

 ▶앞마당에서 나오는 약수로 수수 조 녹두 등 곡물을 넣어 닭백숙을 해주는 주인 할머니의 표정은 돌아가신 할머니의 표정과 닮았다. 장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여유 있는 동네 할머니처럼 느긋했다. 식당 물은 약수를 담아서 나오는데 탄산이 톡 하고 쐈다. 평범해 보이지만 비범한 집이었다.

 

이건 약과다. 내가 세종시에서 가장 좋아하는 집은 금강변에 지어진 허름한 칼국수집이다. 칼국수집이 아니라 무슨 영화에 나오는 카페 같다. 자리에 앉으면 창문가득 금강이 펼쳐진다. 창문 너머로는 갈대와 함께 바람에 한방향으로 가지가 쓸린 소나무 한그루가 추사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의 소나무처럼 당당하게 서 있다. 휴일 오후에 그 집에 가서 석양의 금빛 햇빛이 쏟아지는 금강과 그 소나무를 보면서 느긋하게 칼국수를 먹는다. 풍광과 맛이 어우러지는 그런 칼국수 집은 어디에도 없다.

 

세종시 주변 금강변은 전혀 개발이 되지 않았다. 내가 26년 전 대학에 입학했을 때 첫엠티를 갔던 청평과 대성리와 닮아 있다. 지금은 가든과 모텔로 짓이겨진 북한강이 30년전 가졌던 수줍음과 풋풋함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생솔가지를 태우면서 밤새 이야기를 지새우다 새벽에 만났던 그 북한강은 내 인생의 특별한 장면으로 각인돼 있다. 그래서 19살 소녀 뺨에 수줍게 핀 홍조같은 이 아름다움을 서울 사람들이 제발 모르기만을 빌고 있다. 아름다운 날 것의 이 강변을 또다시 가든과 모텔로 성형수술하려는 대한민국의 천박함을 또다시 만나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다. 

 

이곳에 와서는 MP3나 CD가 아니라 먼지가 앉은 정태춘의 LP를 꺼내 ‘북한강’을 많이 듣는다. 대학 1학년 엠티를 다녀와서 샀던 오래된 판이다. 그 때의 실수투성이의 풋내기였던 나를 참 오랜만에 기억에서 끄집어낸다. 바보같던 그 시절의, 내 첫사랑은 어디서 무엇을 할까? 사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 헛된 상념이 강물처럼 밀려든다.  

 

뜻하지 않게 시골쥐가 됐지만 시골에서 처음 맞는 봄이 수십년 동안 쌓인 서울쥐 마음의 묵은 때를 벗겨내고 있다. 이번 주에는 ‘물의 절’로 불리는 마곡사가 있는 태화산을 다녀올 생각이다. 김구 선생이 일본 순사를 죽이고 도피하다가 머리를 깎고 머물렀던 곳이다. 절대 전쟁이 나지 않는 십승지 가운데 한 곳이기도 하다. 한 주 한 주 서울은 점점 마음에서 멀어지고 나는 어느새 서울 생활이 두려운 시골쥐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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