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시대 국가예방접종…‘고효능 백신 도입論’
영유아 넘어 ‘생애 전주기’ 필요성 제기…질병청 “제도 반영 노력”
2026.04.28 09:48 댓글쓰기

초고령화 시대에 들어서면서 국가예방접종(NIP)의 패러다임을 기존 영유아 중심에서 ‘생애 전주기’로 전환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감염병 취약층이 영유아에서 고령층으로 확장되고 있지만 NIP는 여전히 영유아 중심 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생애 전주기 예방접종 전환 논의가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박희승·이개호(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고령화 시대 생애 전주기 예방접종’ 토론회를 열고 전문가들과 국가예방접종 현주소를 진단,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을 논의했다.


패널 토론은 정희진 고려대병원 감염내과 교수가 좌장을 맡았고, 노영준 미래소비자행동 사무국장, 이재갑 한림대강남성심 감염내과 교수, 하진 질병청 예방접종정책 과장 등이 참여했다. 


이날 논의 내용은 고령층에서 기존 백신만으로 충분한지 다시 봐야 한다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해, 이들에게 일반 백신보다 예방 효과가 더 높은 백신 옵션이 필요하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고효능 백신은 보통 일반 백신보다 더 강한 면역반응을 유도하도록 설계된 백신을 뜻한다. 특히 고령층처럼 면역반응이 약해지기 쉬운 사람들에서 예방효과를 높이기 위해 쓰인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도 65세 이상에서 고용량(high-dose) 또는 면역증강제(adjuvanted)가 들어간 독감백신 등에서 더 높은 효과를 기대할 때 사용을 권고한다. 


시민단체 “소비자 선택권 중요, 사회적 합의 이끌어내야”

의료계 “선진국 대비 정책 뒤쳐졌으며 고효능 백신 도입 절실”


시민단체에서는 예방접종 확대 방향성에는 동의하지만 그 과정에서 소비자 권리와 형평성이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노영준 미래소비자행동 사무국장은 “생애 전주기 예방접종 정책이 소비자인 국민에게 어떤 부담을 가져오는지 철저히 따져봐야 한다”며 ‘접근 공정성’, ‘비용 부담 형평성’, ‘소비자 알 권리 보장’ 크게 세 가지 요소를 지적했다.


그는 “고령층 내에서도 소득 수준이나 거주 지역에 따라 접종 기회의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며 “특정 집단이 소외되지 않도록 정밀 타겟팅을 통한 바우처나 쿠폰 시스템 도입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NIP 확대를 위해 건강보험 재정을 끌어다 쓸 경우, 필연적으로 보험료 인상과 전 국민의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며 “가입자 반발이 있을 수 있는 만큼, 감염병 예방이라는 공공재적 영역을 개인 기여 기반의 건강보험으로 충당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의료기관 간 정보 비대칭으로 인해 소비자가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다”며 “65세 이상에서 고효능 백신을 맞았을 때 입원율이 얼마나 감소하는지 등 통합된 데이터를 국가가 제공하여, 소비자가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끝으로 “정책 입안 전 전국 단위의 대규모 소비자 인식 조사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필수적”이라며 “사회적 합의 없는 성급한 재정 다각화는 정책에 대한 신뢰 저하와 새로운 건강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의료계에선 한국 수준에 비해 정책이 정체 되고 있는 부분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1인당 GDP가 이미 일본을 앞섰고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임에도 불구하고, 예방접종 전략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영국 같은 경우 공공의료 체계 특성상 비용-효과 분석에 매우 민감하다. 당장 백신 가격이 비싸더라도, 510년 뒤 환자 발생으로 인한 의료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면 즉각 국가 필수 예방접종에 포함시킨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영국은 1회 접종에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대상포진 백신과 RSV 백신을 선제적으로 NIP에 도입한 바 있다.


이 교수는 “한국도 인플루엔자 고면역성(고효능) 백신이나 폐렴구균 단백결합 백신 등의 비용 효과성에 대한 데이터가 충분히 마련돼 있다”면서 “장기적으로 건보 재정을 아껴줌에도 기재부 등은 단기적인 예산 지출만을 이유로 결정을 수년째 미루고 있다”고 우려했다.

“영유아 중심 양적 성장 지나, 이제는 질적 성장 도모할 것”


정책의 키 쥐고 있는 정부도 무거운 책임감을 표하며 정책 개선의 의지를 드러냈다.


하진 질병관리청 예방접종정책과 과장은 “예방접종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영유아 중심의 전통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면서 “2009년 민간 의료기관 접종 참여 논의가 시작됐고 2014년에 이르러서야 민간 의료기관에서 전액 국가 지원으로 접종하는 기틀이 마련됐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지난 10여 년간 어린이 필수 백신 18종을 무료로 제공하는 등 폭발적 양적 성장을 이뤄왔다면 이제 대상과 질환을 넓히는 ‘질적 성장과 변화’가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다만 재원 다각화, 성인·고령층 NIP 확대는 공공의 이익이라는 대원칙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하 과장은 “NIP 사업은 철저히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다수의 이득, 집단 면역 형성을 위해 취약계층을 정책적으로 보호하는 사업”이라며 “일각에서 ‘나는 건강하니까 백신이 필요 없고 비용을 부담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방역의 관점에서는 사실상 ‘무임승차’와 다름없다”고 짚었다.


이어 “공공의 이익 차원에서 진행되는 국가예방접종 정책의 방향성을 국민들께서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시길 바란다”며 “질병관리청은 단순한 논의에 그치지 않고, 재정 당국 등 타 부처와의 끈질긴 협의를 거쳐 실제 정책과 제도로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질병에 걸린 후 막대한 치료비를 쏟아붓는 사후약방문식 의료 체계에서 벗어나 선제적인 ‘생애 전주기 예방접종’으로 정책 전환이 속도감 있게 이루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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