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응급중환자외상외과 허윤정 교수가 민(民)과 군(軍)을 오가는 새로운
진료에 나섰다. 단순 이직이 아닌 '진료환경 전환'이자 '외상외과 확장'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올해 초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중환자외상외과에서 근무를 시작한 허윤정 교수는 지난 3월부터 국군수도병원 외상센터에서 진료를 하고 있다.
국군수도병원 외상센터는 군 장병뿐 아니라 일부 민간 외상환자까지 수용하는 구조로 운영 중이며, 최근에는 민군 협력 기반 외상 진료 거점으로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이번 근무 형태는 양 기관의 협력체계를 기반으로 한다. 고대구로병원과
국군수도병원은 지난 2022년 '선진 군 의료체계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진료 협력과 의학 자문을 이어왔다.
해당 협약은 단순 자문 수준을 넘어 실제 의료진 교류와 공동 진료까지 확대되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비교적 초기 단계의 협력 모델로 평가된다.
이에 따라 허 교수는 9개월 동안 국군수도병원, 3개월 동안 고대구로병원에서 근무하는 형태로 민군(民軍) '교차 진료'를 수행하게 된다.
이 같은 교차 근무는 한 의료진이 서로 다른 의료체계를 직접 경험하며 임상 역량과 시스템 이해도를 동시에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지방
외상현장, 구조적 한계 체감…허탈감 컸다"
허윤정 교수는 앞서 충남 권역외상센터에서 약 6년 동안 근무하며 지역 외상진료를 담당했다.
충남 권역외상센터는 산업재해, 교통사고, 농기계 사고 등 다양한 유형의 중증외상이 발생하는 지역으로, 외상외과
의사에게는 폭넓은 임상 경험을 쌓을 수 있는 환경으로 꼽힌다.
그는 "산업단지, 농경지, 고속도로가 모두 있는 지역 특성상 다양한 중증외상을 경험할 수 있었고, 외상외과 의사로서 큰 자부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다만 지방 의료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는 분명했다고 짚었다.
허 교수는 "지방의료 붕괴의 근본 원인은 환자의 수도권 쏠림"이라며 "이로 인해 필수의료 인력 이탈, 응급의료 인프라 약화, 진료 기회 감소, 시설 투자 위축이 동시에 발생한다"고 진단했다.
이는 단순히 특정 병원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의료 생태계 전반이
연쇄적으로 약화되는 구조적 문제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이어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지만 추진되는 정책은 '지역 의사제'와 '국립
의대 신설'이었다"며 "이 같은 정책 방향과 현장의 기대 사이에서 개인적으로 고민이 깊어졌고, 진로에 대해 다시 판단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외상의학 정점은 군진의학…커리어 확장 선택"
이번 이동 배경에는 개인적 선택과 동시에 외상외과 의사로서 성장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허 교수는 "산업 단지, 농경지, 고속도로를 두루 갖추고 있어 사고가 끊이지 않는 충남지역 권역외상센터에 오랜 기간 근무하며 거의 모든 타입의
중증외상 환자를 치료해보았다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해외 학회에 가보면 외상의학의 하이라이트는 늘 군진의학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등 외상 선진국에서는 전쟁 경험을 기반으로 외상 진료 체계와 술기가 발전해왔으며, 군진의학이 민간 외상 시스템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쳐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어 "폭발 손상, 관통상, 다발 사상자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없는 것이 늘 스스로의 약점처럼 느껴졌고 배움에 목말라 있었는데, 좋은 기회를 통해 국군외상센터에 근무하며 외상외과 의사로서 2막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기쁘다"고 덧붙였다.
군 외상센터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시스템 중심 의료'를 꼽았다.
그는 "군진의학은 좁은 의미에서는 전시 상황에서 군인의 부상과 질병 대응에 중점을 두지만 넓게 보면 각종 재난 상황에 대한 국가 공공보건의료 시스템까지 지휘할 수 있는 체계까지 망라한다"며 "민간 외상센터와는 다르게 군 외상센터는 환자 한 명의 치료뿐 아니라 다수 사상자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 자체를 설계하고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단순한 술기 역량을 넘어 지휘·분류·자원 배분 등 '재난 대응 체계'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이러한 환경은 외상외과 의사를 술기 중심 전문가에서
시스템 리더로 성장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기존에 운영해온 외상 교육 프로그램에 군 특화 데이터와
시나리오를 결합하면 민군 협력 기반 교육·연구 플랫폼 구축이 가능하다"며 "국내 외상학이 한단계 더 도약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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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비닐로 만든 장비 등 한국 외상 열악한 현실 단면"
허 교수가 개발한 중증 복부 외상 환자용 술기는 '2026 대한외과술기연구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이는 국내 외상 진료 환경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로도
꼽힌다.
그는 "복부 손상이 심한 환자는 수술 후 복벽을 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해외에서는 자동 흡인
장비를 사용하지만 국내에서는 비용 문제로 도입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해당 장비는 복강 내 출혈과 체액을 지속적으로 배출하면서 복부를 일정한 압력 상태로 유지하고 단계적으로 복벽을
닫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이어 "랩과 비닐봉지, 흉관
튜브 등을 활용해 장비를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며
"제한된 자원으로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방식은 응급 상황에서 실제 환자 생존에 기여할 수 있는 대안으로 기능하지만, 동시에 표준화된 장비 접근성이 제한된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로도 해석된다.
그는 "이 방식은 오히려 전시와 같은 극한 환경에서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동시에 국내 외상 의료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지적했다.
"해법은
민군 통합 기반 하나의 외상 시스템으로 가야"
필수의료 인력 부족 문제에 대해서는 구조적 해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허 교수는 민간과 군 외상 체계를 별개의 영역이 아닌, 하나의 연속된 시스템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간 외상센터는 풍부한 증례와 다양한 환자군, 체계화된 술기 교육 프로그램이 강점인 반면, 군 외상센터는 재난 상황 대응 경험과 다수 사상자 처리 체계, 국가 차원의 자원 동원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보완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군과 민간의 외상 체계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하며 발전하는 하나의 연속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필수의료 인력 부족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단순 인력 확충을 넘어, 기존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협력 모델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과거에도 미래에도 필수 의료 분야는 계속해서 인력 부족의 문제에 시달릴 것이다. 따라서 나와 같은 민군 협력의사의 숫자를 늘리거나 인력 교차 파견 시스템을 구축해 인적 자원을 공유하는 시스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민간과 군 의료진이 일정 기간 상호 교차 근무하는 방식의 모델을 제시했다. 민간 외상외과 의사는 군에서 재난 대응 훈련을 경험하고, 군 외상외과 의사는 민간에서 높은 임상 볼륨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이와 관련해 그는 미국의 Military-Civilian Trauma Team Training(AMCT3) 모델을 참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당 모델은 민군 의료진이 공동으로 훈련하고 진료 경험을 공유하는 구조로, 인력 소진을 줄이고 역량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허 교수는 "이는 단순한 인력 공유를 넘어, 필수의료 인력의 역량을 유지하고 소진을 방지하는 구조적 안전망이 될 수 있다. 필수의료 인력 문제는 한쪽만의 노력으로는 풀 수 없고, 민간과 군이 하나의 국가 외상 체계로서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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