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계 덮친 '약가인하' 공포…학계 "정책 의문"
"기업은 수익 없으면 존속 불가능"…권혜영 교수 "후진국형 발상" 비판
2026.01.27 06:51 댓글쓰기

정부 약가제도 개편안을 두고 산업계, 학계에서 잇따라 재검토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과 제약바이오 산업의 혁신 생태계 조성을 목표로 추진 중인 ‘기등재 의약품 약가 재평가 및 약가제도 개편안’이 거센 후폭풍을 맞는 모양새다. 


지난 26일 국회에서 백종헌·한지아·안상훈 국민의힘 의원 주최로 열린 '약가제도 개편 이대로 좋은가' 정책 토론회에서는 산업계, 학계, 정부 관계자들이 참석해 제약바이오 산업육성책에 대한 의견을 공유했다. 


이날 패널토론에는 이재현 성균관대 약대 교수가 좌장을 맡았고, 윤재춘 대웅제약 부회장, 김영주 종근당 대표이사, 조용준 동구바이오제약 대표(한국제약협동조합 이사장), 권혜영 목원대 보건의료행정학과 교수, 김연숙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과장 등이 참석했다. 


정부는 신약 개발 중심 체질 개선을 위해 칼을 빼 들었다는 입장이지만 산업계는 개편안이 기업의 생존 기반을 저해해 제약 주권을 포기하게 만들 것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산업계 "영업이익 5% 불과, 약가 20% 깎으면 공멸" 


이날 토론회에서 대형 제약사는 물론 중소, 중견 제약사 대표들이 이구동성으로 정부 약가 인하 정책이 가져올 영향에 대해 수치와 당장 처한 현실을 거론하며 성토를 쏟아냈다.  


윤재춘 대웅제약 부회장은 제약바이오 산업 본질적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부회장은 "기업에게 영업이익은 곧 생존이자 미래를 위한 '돈'"이라며 "돈이 없으면 신약 개발도, 기업의 존속도, 글로벌 시장 진출도 불가능한 것이 냉혹한 현실"이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국내 제약사들이 글로벌로 나아가려는 중요한 시점"이라며 "이 결정적 시기에 약가 인하는 한국 제약산업은 외국계 제약사 하청으로 전락하거나 종속될 수 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신약 개발에 소요되는 비용과 열악한 수익 구조도 다시 한 번 상기 시켰다.  


윤 부회장은 "글로벌 임상 3상에만 수천억원이 들어가고, 제대로 된 신약 하나를 개발하려면 1조원에서 2조원이 투입돼야 한다"면서 "문제는 국내 제약사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5% 미만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약가인하를 단행하면 그 충격을 견뎌낼 수 있는 기업은 사실상 없다"며 "삼성바이오처럼 그룹 차원의 자금력을 갖춘 대기업을 제외하면 독자적으로 글로벌 임상을 진행하고 마케팅을 펼칠 수 있는 회사는 전무하다"고 강조했다. 


김영주 종근당 대표이사는 한국 제약산업 생태계에서 제네릭이 갖는 특수성을 강조했다.  


김 대표는 "제네릭 의약품은 단순히 오리지널 복제품이 아니라 국내 제약사들이 신약을 개발하기 위한 R&D 투자 재원을 마련하는 핵심 수단"이라며 "급격한 약가인하는 중소·중견 제약사들 매출 감소와 수익성 악화로 직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수익성 악화는 필연적으로 R&D 투자 위축을 불러오고, 제약 주권 상실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 것"이라며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자국 내 의약품 생산 능력이 보건 안보에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이를 위해 김 대표는 ▲ 단계적 인하 방안 도입 ▲R&D 투자 실적 및 원료 의약품 국산화 여부에 따른 차등 적용 ▲필수의약품에 대한 약가 보전 및 생산 장려금 지원 등을 제안했다. 


중소 제약사를 대변한 조용준 한국제약협동조합 이사장(동구바이오제약 대표)은 이번 개편안이 제약산업 '허리'를 끊어놓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 이사장은 "약가 인하로 중소 제약사들의 경영이 무너지면 바이오 벤처들의 자금난이 가중돼 신약 개발 생태계 전체가 위축될 것"이라며 "필연적으로 구조조정을 부르고, 이는 생산직 근로자를 포함한 대규모 실직 사태와 고용 불안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외국 약가 단순 차용은 유럽만 참고할 방식, 시장 경쟁 유도해야" 


학계 전문가로 참석한 권혜영 목원대 보건의료행정학과 교수는 보건경제학적 이론과 데이터에 기반해 정부의 약가 인하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권 교수는 이번 개편안에 대해 "사회적 합의나 충분한 공론화 과정 없이 발표돼 학계 입장에서도 매우 당황스럽다"며 정책의 실효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가격이 내려가면 사용량이 늘고 총액은 줄어들지 않으며, 실제로 한국은 과거 수차례의 제네릭 약가 인하에도 불구하고 재정 절감을 실현한 적이 데이터상 단 한 번도 없다"고 꼬집었다. 


특히 권 교수는 정부가 추진하려는 '해외 약가 비교 재평가' 방식에 대해 우려를 드러냈다. 


그는 "해외를 기준으로 국내 약가를 깎는 방식은 국경이 인접해 국가 간 병행 무역이 활발한 유럽 등에서나 참고할 방식이지 가격 결정 기준이 될 수 없다"며 "단순히 해외 약가를 가져와 가격을 산정하는 것은 정책적으로 퇴보하는 '후진국형'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미국 등 선진국은 제네릭 처방 비중이 90%에 달하지만 전체 약품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불과하다"며 "이는 더 싸게 내놓을수록 더 많이 팔리는 시장 가격 경쟁 기전이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리베이트 경쟁 구조 때문에 가격을 낮춘 약이 시장에서 더 많이 선택되지 않는다"며 "정부가 인위적으로 수치를 정해 가격을 깎을 것이 아니라 가격 경쟁을 통해 자연스럽게 저가 약이 선택받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부 "단순 삭감 아닌 '구조 개편'이 목표, 지원 강화" 


김연숙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은 이번 개편의 취지가 단순한 재정 절감이 아닌 '지속 가능한 제약 생태계 조성'에 있음을 강조하며 진화에 나섰다. 


김 과장은 "이번 약가제도 개편은 고가의 신약 접근성을 높이고 필수의약품 공급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에서 출발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산업계가 우려하는 것처럼 전체 약제비를 줄이는 것 자체가 목표가 아니다. 불필요하게 새는 재정을 효율화해 그 재원을 신약 등재와 필수의약품 공급망 강화에 재투자하려는 '구조적 전환'이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산업계 고충에 대해서는 "국내 제약산업이 제네릭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특수성을 충분히 감안하고 있다"면서 "혁신적인 생태계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코자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한국 제네릭 약가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사실이며 성분당 100개가 넘는 품목이 난립하고 있다"면서 "기계적으로 해외 수치를 대입해 약가를 깎지 않고 전문가 및 협회와 긴밀히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김 과장은 약가인하에 따른 충격 완화책과 지원 방안도 제시했다.  


그는 "약가 조정 과정에서 저가 의약품, 단독 등재 의약품 등 수급 안정이 필수적인 약제는 조정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인하 폭을 조절할 것"이라며 "국산 원료를 사용하는 의약품에 대한 약가 우대 대상을 기등재 의약품까지 확대하는 등 지원책도 병행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어 "혁신형 제약기업에 대한 약가 우대 기간을 현행 1년에서 3년 이상으로 대폭 늘려 안정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등 R&D 투자에 대한 보상 체계도 강화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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