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시작하기도 전(前) '삐걱'
의료계-산업계, 각자 입장서 불만 토로…"기대 아닌 우려만 가득"
2023.05.19 12:33 댓글쓰기



오는 6월부터 시행되는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추진안이 공개됐으나 의료계와 산업계 입장 차는 여전한 모습이다. 특히 모호한 사업 규정에 시범사업를 철회하라는 요구까지 나오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7일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에 대해 당정 협의에 보고한 기본 추진방안을 공개했다.


계획안에 따르면 비대면진료 실시기관은 의원급 의료기관이 원칙이다. 병원급 의료기관은 예외적으로 허용되며 약국은 별도 신청이나 지정없이 적용된다.


가장 큰 관심사인 초진은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일부 환자에 한해 허용키로 했다. 우선 감염병예방법 상 감염병(1~4급) 확진 환자가 치료기간 중 타 의료기관에서 진료가 필요한 환자다.


또 ▲의료기관이 현저히 부족하거나 의료기관이 없는 지역에 거주하는 환자 ▲65세 이상 노인, 장애인 등 거동이 불편하거나 일상생활에 제약이 있는 환자 ▲휴일·야간에 소아 환자 등이다.


재진환자의 경우 의원급에서는 해당 의료기관에서 같은 질환에 대해 1회 이상 대면으로 진료를 받은 경험이 있는 환자로 정했다.


병원급에서도 해당 의료기관에서 1회 이상 대면해 진료한 희귀 질환자, 수술·치료 후 지속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의사가 판단하는 환자로 한정했다. 약사회 반발이 거셌던 약 배송은 제외됐다.


그러나 시범사업 추진안을 두고 의료계와 산업계 모두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무분별한 예외규정, 의료 본질 '훼손' 우려


먼저 의료계는 모호하고 무분별한 규정으로 의료 본질이 훼손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대한내과의사회는 19일 성명서를 내고 시범사업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의사회는 "도서벽지 개념도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은 모호한 기준으로 언제든 참여지역을 넓힐 여지를 뒀다"고 말했다.


이어 "거동이 불편한 65세 이상 노인 및 장애인도 기준이 두루뭉술하다"라며 "참여 대상인 '감염병 확진자'에 독감 등 격리도 하지 않는 법정감염병까지 포함했다"고 불편한 심기를 나타냈다.


의사회는 또 "한 번이라도 대면진료를 받은 적이 있는 희귀질환자나 지속적 관리가 필요한 환자에게 병원급 비대면진료가 가능케 한 것도 우려되는 대목"이라고 짚었다.


병원급 의료기관까지 비대면진료를 확대하면 의료전달체계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대상환자 조건 중 '1회 이상 대면진료 경험'에 대해서는 "초진환자를 보는 것이나 다름없어 진료의 안전성이 확보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휴일·야간 의료 공백 해소를 이유로 '소아환자'를 비대면진료 대상에 포함한 것도 "필수의료 살리기를 메꿔보려는 얄팍한 술책"이라고 질책했다.


만성질환자를 전반적으로 포괄한 것에 대해서는 "대면진료로도 정확한 평가가 어려운 만성질환을 모두 비대면진료로 가능케 한 것은 문제"라고 꼬집었다.


대한가정의학과의사회 역시 비판 행렬에 가세했다.


가정의학과의사회는 "정부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내용은 지난 2월 정부와 의협이 합의한 비대면 진료 원칙과 명확히 다르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같은날 대한의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대한약사회 등 보건의약 4개 단체도 "의료현안협의체를 통해 충분한 논의와 합의를 거쳐 시범사업이 진행돼야 한다"고 경고했다.


비대면진료 '사형선고'…전면 재검토 촉구


의료계와 마찬가지로 산업계에서도 불만이 거세다. 이들은 시범사업 철회까지 요구하며 전면 재검토를 촉구하고 나섰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는 입장문을 내고 ▲30일 이내 ▲동일 병원에서 ▲동일한 질환으로 ▲1회 이상 대면진료를 받은 이력이 있어야만 비대면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규정에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병원 방문이 어려워 비대면으로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국민에게 접근 자체가 어려운 대면진료부터 받으라고 하는 것은 심각한 모순"이라고 말했다.


특히 "동일한 질환으로 30일 내 대면진료 이력이 없다는 이유로 의료인과 간단한 문진을 통해 더 큰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기회조차 막는 것은 건강권 침해"라고 덧붙였다.


원산협은 또 "일부 환자는 초진을 허용했다고 하나, 그 범위는 극도로 제한적"이라며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쌓아 올린 성과가 모두 물거품이 됐다"고 비판했다.


이어 "전 세계적 규제 완화 흐름과 달리 나홀로 과거로 회귀하게 됐다는 점에서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의약품 배송 문제도 언급했다. 


이들은 "동일한 약을 반복 처방받는 만성질환자조차 무조건 대면으로 수령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의료접근성 증진이 목적인 비대면진료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의료 서비스 가장 마지막 단계가 의약품 수령 및 복용임에도 특정 단계에서만 비대면을 원천 배제한 것은 약업계 기득권만을 대변한 결정"이라고 규탄했다.


원산협은 "결국 복지부는 의약단체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고 그저 비대면으로 건강을 관리하고자 했던 대다수 국민 목소리는 철저히 외면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모든 피해는 경제활동이나 육아 등으로 비대면진료 서비스로나마 의료서비스에 접근해 온 젊은 청년세대에게 돌아가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 단체는 "정부는 즉각 비대면진료에 대한 사형선고를 철회하라"며 "지금이라도 국민 진료 선택권을 보장하고, 의료접근성을 제고할 수 있는 시범사업안을 다시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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