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기고] 2024년 2월 6일, 윤석열 정부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과 함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일방적으로 발표하면서 촉발된 의정사태는 한국 의료계에 전례 없는 충격을 남겼다.
갈등의 반복을 넘어 재건을 위한 길
1년 6개월 이상 이어진 의정사태는 저임금·고노동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희생을 감내해 온 전공의들이 가까스로 지탱해 온 대한민국 수련병원 시스템의 허약함과 불안정성을 드러냈다.
이번 사태는 의료계가 더 이상 과거 관행으로는 버틸 수 없음을 보여줬으며 새로운 질서를 모색해야 하는 ‘뉴노멀(New normal)’ 출발점이기도 하다.
지난 2025년 6월 28일, 서울아산병원 전공의 대표 한성존 위원장을 중심으로 새롭게 출범한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대전협 비대위)는 무너진 의료체계 재건을 위한 로드맵을 제시해 왔다.
대전협 비대위는 적극적인 대화 기조 속에서 공개·비공개 접촉을 폭넓게 이어가며 전공의들이 ‘사직’이라는 최후의 선택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현장 목소리를 각종 언론과 미디어, 간담회, 세미나 등을 통해 끊임없이 알렸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설문조사를 여러 차례 진행, 전공의들 의견을 담았고 요구 내용을 분석, 우선 순위 및 중증·핵심의료 문제, 여성 전공의들 임신·출산·육아 실태까지 다각적으로 수렴했다.
그 결과, 대전협 비대위는 ‘무너진 의료시스템 재건’을 위한 세 가지 축의 로드맵을 공식 제안하게 됐다.
첫번째 축 : 젊은의사들 목소리 충분히 반영되는 ‘현장 전문가 중심 거버넌스’ 구성
지난 7월 19일 열린 대한전공의협의회 임시대의원총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구안을 공식화했다.
첫째는 필수의료 정책패키지 재검토를 위한 현장 전문가 중심 협의체를 구성하고 둘째,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및 수련 연속성 보장, 그리고 셋째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 완화를 위한 논의기구 설치다.
대전협 비대위는 이 요구안을 기반으로 대한의학회, 대한수련병원협의회, 수련환경평가위원회와 함께 보건복지부와의 공식 협의체인 ‘수련협의체’를 꾸려 7월 25일부터 논의를 시작했다.
협의는 속도감 있게 진행됐고, 8월 7일 열린 3차 회의에서 보건복지부는 일부 요구를 수용하며 공식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정부는 “전공의·젊은 의사들이 신설 예정인 ‘가칭국민참여 의료혁신위원회’에 충분한 참여를 보장하며, 의료사고 안전망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재검토 과정에 현장 목소리를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9월 하반기 전공의 모집이 재개됐지만 중증·핵심의료 과목의 수련 재개율은 의정 사태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최근 대전협 비대위가 수련을 재개하지 않은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87.1%는 “언젠가는 돌아올 의향은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 미해소(81.1%) ▲정부 실질적 대책 부재(72%) ▲열악한 수련환경(54.3%) ▲기입대자의 수련연속성 불확실성(50.5%) 등을 이유로 수련 재개를 미뤘다. 이들 다수는 중증·핵심의료 분야 전공의들이다.
만약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면 수도권 대형병원 쏠림과 기피과 인력 부족은 더 심화될 것이다. 특히 중증·핵심의료의 공백은 국가적 대응 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향후 관건은 ‘가칭국민참여 의료혁신위원회’다. 이 기구가 젊은 의사들 참여와 현장 전문가들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낼 수 있을지, 그 실효성이야말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첫 시험대가 될 것이다.
두번째 축 : 수련시스템 재건 열쇠(KEY) ‘환경·교육·연속성’
8월 4일, 국회에서 열린 ‘수련환경 개선 및 수련 연속성 확보 정책세미나’에서 대전협 비대위는 현행 도제식 수련 한계를 지적하며 패러다임 전환을 제안했다.
지금까지 전공의들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며 값싼 노동력으로 소모됐고, 교육받을 권리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의정 사태는 전공의들 희생 위에 세워진 수련병원 시스템이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음을 드러냈다. 여성 전공의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는 현실을 잘 보여준다.
임신·출산·육아로 6개월 이상 수련이 중단될 경우 제도적 보호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94.1%, 수련과 육아 병행이 어렵다는 응답이 75.1%였다. 특히 신경외과·흉부외과·외과·응급의학과·내과 등 중증·핵심의료 분야에서 어려움이 두드러졌다. 최소한의 기본권 보장 없이는 기피과 해소도, 의료인력 확충도 불가능하다.
현재 국회가 논의 중인 전공의특별법 개정안은 ▲근로시간 단축 ▲육아·질병·병역 휴직 및 수련 연속성 보장 ▲전공의 1인당 적정 환자 수 제한 ▲수련비 국가지원 강화 ▲수련환경평가위원회 거버넌스 개편 ▲벌칙 조항 신설 등을 담고 있다.
이는 단순한 노동 중심 수련에서 벗어나 역량 중심 교육으로 나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수련연속성 보장 논의도 중요하다.
군 복무로 수련이 끊긴 전공의가 전역 후 다시 수련을 이어갈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한수련병원협의회, 대한의학회, 대한전공의협의회는 8월 7일 3차 수련협의체, 8월 8일 공동성명서를 통해 군(軍) 복무로 수련이 단절된 전공의가 전역 후 사직 전 병원·과목·연차에서 수련을 이어갈 수 있도록 제도적 방안을 마련해 줄 것을 정부에 강력하게 건의했다.
8월 18일, 보건복지부 정은경 장관은 국회 전체회의에서 수련연속성 방안에 대한 국민의힘 서명옥 의원 질의에 대해 “군 복무 중인 사직 전공의는 복귀 시 사후 정원을 인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특히 필수의료 분야는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단절되고 망가진 수련시스템의 재건을 위한 이러한 논의는 미래의료 안정성과 유기적 연결성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며 관련 사안은 수련협의체에서 지속 논의하고 해결이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병역 이행 후 수련연속성 보장 문제를 비롯해 수련 시작 시점의 분절로 인한 인턴들의 내년 레지던트 TO와 지원 관련 사안, 졸업 시점 분절로 인한 의과대학 본과 4학년의 내년 인턴 모집 문제 등에 대한 로드맵 제시를 통해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를 통해 무너진 수련 연속성을 회복하고, 유기적인 수련시스템을 정상화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복원 문제가 아니다. 작금의 주먹구구식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재편하고, 독립적이고 체계적으로 수련제도를 운영 할 ‘가칭수련교육원’을 설립하는 계기로 나아가야 한다.
전공의는 값싼 노동력이 아니다. 스스로 고된 길을 선택한 미래의료 주역이다. 이들에게 제대로 된 수련을 보장하는 것은 곧 환자 안전과 국가 의료시스템 지속 가능성을 지키는 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세번째 축 : 의료사고 법적 부담 ‘완화’ 절실
7월 14일, 대전협 비대위는 민주당 보건복지위원회 국회의원들과 ‘중증·핵심의료 재건을 위한 간담회’를 열고, 정부가 규정한 ‘필수의료’라는 명칭을 ‘중증·핵심의료’로 재명명하자고 제안했다.
모든 전문과목에는 필수적 진료영역이 존재하므로 의료계에서 흔히 ‘바이탈과’라고 부르는 생명과 직결된 과목들에 대해서는 ‘중증·핵심의료’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의미에 더 부합한다는 취지였다.
이러한 중증·핵심의료 위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언론은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같은 자극적 표현만 소비했을 뿐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는 제대로 비추지 않았다.
대전협이 공개한 설문조사 결과는 명확하다. 중증·핵심의료 과를 선택하지 않은 전공의 90%, 중증·핵심의료 수련을 중도 포기한 전공의 80%가 의료사고에 따른 법적 부담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기피 현상 뿌리에 ‘사법 리스크’가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따라서 재건 출발점은 분명하다. 의료사고에 대한 과도한 법적 부담을 완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미 유사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의료사고 안전망을 확충한 해외 국가들 사례를 참고, 의료사고 공적 배상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특히 의사가 최선을 다한 의료행위의 불가피한 결과에 대해 과도한 수사·기소를 완화하면서 형사처벌 부담을 완화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 마련이 절실하다. 이것이 수반될 때 대한민국 중증·핵심의료가 회생될 수 있고 이는 의료현장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이다.
의료계와 정부, 환자 모두에게 이번 사태는 신뢰의 위기였다.
환자는 접근성 불안을, 의료계는 제도 불합리를 경험했다.
이제 ‘뉴노멀’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국가적 대응을 통해 향후 수련을 재개할 의향은 있으나, 아직 결심하지 못한 중증·핵심의료 사직 전공의들 목소리를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된다. 이들 목소리를 반영해 현실적인 허들(장벽)을 낮추기 위한 해법을 내놓을 때다.
대전협 비대위가 제안한 ▲전공의와 젊은 의사들이 참여하는 현장 전문가 중심의 지속 가능한 거버넌스 구성 ▲합리적이고 안전한 수련환경 및 수련연속성 보장ㆍ교육 중심 수련제도 혁신 ▲의료사고 법적 부담 완화가 함께 추진되지 않는다면 동일한 사태는 반복될 수 있다.
이번 사태를 갈등의 반복으로 남길지, 제도와 정책 혁신으로 승화시킬지는 앞으로의 선택에 달려 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지금이라도 반복된 갈등을 끝내고, 환자와 의사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새로운 의료질서를 만들어가야 한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가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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