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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上] 필수의료 인력난이 임계점으로 치닫고 있다. 수가인상과 인건비 지원 등 정부가 각종 유인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이미 ‘돈 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의사를 단기간에 늘리는 것도, 해외에서 데려오는 것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얼마나 더 확보할 것인가’에서 ‘한정된 인력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인가’로 질문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한다. 데일리메디는 모든 병원이 비슷한 필수의료 인프라를 갖춰야 하는 기존 틀에서 벗어나 병원별 기능을 나누고 의료진과 시설을 집중하는 ‘지역 단위 필수의료 재편’ 가능성을 짚어본다. 아울러 과거에도 수 차례 제기됐지만 번번이 좌초했던 의료기관 기능 분화 한계를 살펴보고, 교차진료와 의료진 공동운영, 법정 인력기준 완화, 지역 단위 보상체계 등 ‘선택과 집중’을 현실화하기 위한 해법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필수의료 인력난이 갈수록 심화되면서 수가 인상이나 인건비 지원 등 기존 유인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회의론이 확산되고 있다.
더욱이 단기간에 국내 의료인력을 대폭 늘리기 어렵고 해외 의사 도입 역시 면허와 언어, 의료의 질과 책임 문제 등 넘어야 할 산이 적잖은 만큼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의료계 일각에서는 한정된 필수의료 인력을 개별 병원마다 나눠 배치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 단위로 의료자원을 재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른바 ‘병원별 선택과 집중’이다. 모든 병원이 비슷한 필수의료 기능을 형식적으로 유지하기보다 지역 내 의료기관들이 담당 분야를 나누고 의료진과 시설, 장비를 집중하자는 구상이다.
실제 정부 역시 필수의료 위기 원인으로 의사 부족과 개원 쏠림, 응급·당직 부담 등에 따른 기존 인력의 번아웃 및 이탈을 지목하고 있다.
특히 지역에서는 환자와 인력의 수도권 유출에 병원 간 경쟁까지 겹치면서 필수의료 인프라 유지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병원마다 ‘풀세트’ 유지…인력난에도 문 닫기 어려워
현행 의료기관 체계는 기본적으로 병상 규모와 시설, 인력 등 구조적 요건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종합병원은 100병상 이상을 갖추고 내·외·산‧소 중 중 3개 과목을 비롯해 영상의학과, 마취통증의학과, 진단검사의학과 또는 병리과 등 7개 이상 진료과목과 과목별 전문의를 둬야 한다.
300병상을 초과하면 여기에 정신건강의학과 및 치과를 포함해 9개 이상 진료과목과 과목별 전속전문의를 갖춰야 한다.
상급종합병원은 기준이 한층 까다롭다. 필수진료과목 9개를 포함한 20개 이상 전문과목과 과목별 전속전문의가 요구되며 중앙·권역 또는 지역응급의료센터 지정도 받아야 한다.
성인·소아·신생아중환자실 설치와 각각의 전담전문의 배치 역시 지정기준에 포함된다.
문제는 필수의료 인력난이 심해질수록 이러한 ‘기관 단위 완결성’이 오히려 의료인력을 분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령 한 지역에 여러 종합병원이 있다면 각각의 병원이 법정 진료과목과 응급·중환자 진료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제한된 전문의 인력을 서로 확보해야 한다.
특히 응급의학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외과계 진료는 전문의 1~2명 확보로 끝나지 않는다. 야간과 휴일을 포함해 지속 가능한 당직표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인력이 필요하다.
결국 의료진이 충분했던 시기에는 ‘한 병원에서 다양한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으로 작용했던 구조가 극심한 인력난에서는 오히려 소수 인력을 분산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병원마다 필수의료 기능을 유지하느라 전문의 2~3명씩을 나눠 배치하는 것보다 특정 병원에 6~7명을 모아 안정적인 당직체계를 만드는 게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전문학회 회장은 “전문의가 충분할 때는 여러 병원이 각각 응급·중환자·필수진료 기능을 갖추는 게 환자 접근성 측면에서 유리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작금의 상황은 가뜩이나 부족한 전문의를 여러 병원에 분산시키는 것보다 한 곳에 충분한 인력을 배치하는 게 오히려 환자안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A병원 ‘소아’·B병원 ‘심뇌’·C병원 ‘외과’ 등 역할 분담 명확히
때문에 의료계 일각에서는 의료기관 단위가 아닌 ‘지역 단위 필수의료 완결체계’로 정책의 기준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일정 지역 내 A병원은 소아응급 및 소아입원, B병원은 심뇌혈관질환, C병원은 응급수술과 외상, D병원은 분만을 전담하는 방식이다.
각 병원이 모든 기능을 보유하는 대신 자신이 맡은 분야에는 충분한 전문의와 간호사, 시설·장비를 집중하고 나머지 분야는 협력병원으로 신속하게 이송하는 체계다.
핵심은 ‘병원 하나가 모든 것을 해결하는 구조’에서 ‘지역 전체가 하나의 종합병원처럼 작동하는 구조’로의 전환이다.
정부 정책도 이미 일정 부분 이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의료개혁을 통해 상급종합병원, 2차 병원, 전문병원, 의원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 지역 2차 병원에 인력을 집중시키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특히 중진료권 내 필수의료 협력진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분야별 필수의료 질환센터 형태로 종합병원·병원을 지정해 인력과 보상을 집중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소아·분만·응급·외과계 수술 등 특정 필수의료 분야에 특화된 병원을 육성하는 모델도 정부 구상에 포함돼 있다.
지난해 발표된 의료개혁 2차 실행방안에서도 병원을 규모화하지 않더라도 특정 필수진료 분야에 전문역량을 갖추고 24시간 기능을 수행할 경우 기능 중심으로 보상하는 방향이 제시됐다.
지역 2차 병원과 필수특화 기능 육성 등에 3년간 2조3000억원을 투입한다는 계획도 담겼다.
결국 정책의 지향점은 이미 ‘모든 병원의 모든 기능 유지’에서 ‘기능 중심 분화와 협력’으로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반복된 ‘기능 분화’ 인지하면서도 왜 번번이 구호에 그쳤나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이러한 방향성이 실제 의료현장의 구조개편으로 이어지려면 기존과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사실 병원 간 기능 분화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의료전달체계 개편이나 지역완결형 의료체계 논의 때마다 거점병원 육성, 진료의뢰·회송 활성화 등의 필요성이 반복적으로 제기돼 왔다.
그럼에도 현장에서는 병원 간 기능 분담보다 경쟁구조가 지속됐다.
가장 큰 이유는 의료기관 종별 지정 및 평가, 보상체계가 여전히 개별 의료기관이 얼마나 많은 인력과 시설을 갖췄는지를 중시해 왔기 때문이다.
병원 입장에서는 특정 필수의료 분야를 과감하게 내려놓고 인근 병원에 맡길 경우 당장 종별 기준이나 각종 평가, 수가와 지원사업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을 걱정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보내는 순간 수익도 함께 이동한다.
협력을 강조하면서도 실제 보상은 개별 의료기관의 진료량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구조에서는 병원들이 자발적으로 진료영역을 양보하기 어렵다.
정부 역시 현행 의료체계 문제점으로 지역 거점병원 약화와 함께 병·의원 간 협력 전달체계 부재에 따른 ‘무한경쟁 구조’를 지목하고 있다.
환자들 의료이용 관행도 걸림돌이다.
지역별·병원별 기능이 나뉘더라도 환자가 어느 병원이 어떤 필수의료를 담당하는지 알기 어렵고 원하는 의료기관을 직접 선택하는 현행 구조에서는 실질적인 기능 분화가 쉽지 않다.
특히 응급환자는 병원별 실시간 진료역량을 파악해 적정 의료기관으로 이송할 수 있는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기능 집중은 오히려 병원 간 전전 문제를 키울 가능성도 있다.
결국 기능 분화 논의가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던 이유는 ‘협력하라’는 주문은 있었지만 병원들이 실제 기능을 나눠도 손해를 보지 않는 제도적 장치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대한병원협회 관계자는 “그동안 병원 기능 분화 논의가 없었던 게 아니다. 문제는 정부는 협력을 예기하면서 실제 평가와 보상은 의료기관 단위로 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환자를 다른 병원에 보내면 수익이 줄고, 기능을 내려놓으면 각종 지정·평가에서 불리해지는 상황에서 병원이 자발적으로 역할을 나누기는 어렵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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