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진료 선택 ‘재량’ 후속 조치 ‘책임’
진단 불확실 땐 의사 합리성 존중…수술 후 이상·응급상황 대응 엄격
2026.10.26 11:08 댓글쓰기



최근 의료사건 판결에서는 심급별로 의료진 책임 범위를 다르게 판단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어 주목된다. 특히 진단이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진료 선택은 당시 사정을 폭넓게 고려하는 반면, 위험신호가 확인되거나 실제 대응이 가능한 상황에서는 필요한 조치가 이뤄졌는지를 보다 엄격하게 보는 흐름도 엿보인다. 결과 자체보다 당시 의료진이 확보한 정보와 선택 가능한 조치, 실제 대응 가능성이 책임 판단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모습이다. 최근 판결을 통해 의료진 진료재량과 법적 책임의 경계가 어디에 놓이는지 살펴봤다. [편집자주]


최근 대법원 판결에서 의료진의 합리적인 진료 선택이 인정되는 범위와 법적 책임이 문제되는 경계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진단이 불확실하고 선택 가능한 치료법마다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는 사후적인 결과만으로 특정 선택을 과실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반면 객관적인 위험신호가 확인된 뒤 필요한 조치를 적시에 했는지는 엄격하게 따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피부질환 치료제인 답손(Dapsone)을 투여받은 12세 환자가 전격성 간부전과 간장애를 입은 사건이다.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지난 7월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기소된 피부과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환자는 답손 복용 이후 고열과 발진, 간기능 수치 이상 등을 보였다. 그러나 당시 증상만으로 답손에 따른 약물과민반응증후군인지 세균·바이러스 감염증인지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웠다.


약물과민반응증후군이라면 스테로이드 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감염증이 원인일 경우 고용량 스테로이드가 면역반응을 억제해 상태를 악화시킬 위험도 있었다.

 

실제 환자는 약물과민반응증후군의 주요 지표인 호산구 수치가 정상범위를 벗어나지 않은 반면 감염 가능성을 시사하는 지표들이 나타났다.


대법원은 이 같은 상황에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스테로이드를 지속적으로 투여하지 않고 감염 여부를 확인하면서 다른 치료방법을 선택한 것을 의료상 과실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대법원은 “의사는 환자 상황과 당시 의료수준,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따라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진료방법을 선택할 상당한 범위의 재량을 가진다”며 “그 선택이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면 결과를 놓고 다른 조치를 취한 것이 과실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당시 의료진이 처한 불확실성도 구체적으로 짚었다. 약물과민반응증후군과 감염증이라는 상충하는 가능성 사이에서 어느 치료를 선택하든 각각 위험이 따랐다는 점이다.


대법원은 “의료진은 상충하는 두 가능성 사이에서 각 진료방법이 가져올 위험과 이익을 비교·판단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며 “오직 하나의 합리적인 방법만 존재했고 의료진이 그 범위를 벗어났다는 점이 충분히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피부과 전문의가 답손 처방 이후 필요한 혈액·간기능검사를 하지 않고 부작용 대응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부분은 별도로 판단했다. 


이 같은 과실이 인정될 여지가 있더라도 그것 때문에 환자가 간이식과 간장애에 이르렀다는 인과관계까지 형사재판에서 증명돼야 한다고 봤다.


대법원은 “의사 업무상 과실이 증명됐다는 사정만으로 인과관계가 추정되거나 증명 정도가 낮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같은 의료사고의 민사소송에서 병원 측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됐더라도 형사책임에 필요한 과실과 인과관계는 별도로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다.


수술 후 환자 이상소견·응급환자 거절 등 대응 집중 심리


반대로 수술 이후 객관적인 이상소견이 확인됐는데도 필요한 후속조치가 적시에 이뤄졌는지가 문제 된 사건에서는 원심 판단이 뒤집혔다.


허리통증과 다리 저림으로 척추내시경을 통한 추간판 제거술을 받은 환자는 수술 이후에도 다리 저림과 마비, 통증, 배변장애를 호소했다.


수술 직후 시행된 MRI 검사 결과에는 ‘수술 주위 부위에 혈성 액체가 고여 있어 심각한 중앙부 압박으로 즉각적인 경과 관찰이 요구된다’는 내용이 기재됐다.


하지만 병원은 약 한 달 뒤 후속 수술을 했고 환자의 신경학적 증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후 환자는 의료진 과실로 신경이 손상됐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2심은 수술 특성상 최선의 주의를 다하더라도 신경학적 이상이 발생할 수 있다며 병원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달리 봤다.


대법원 3부(주심 이숙연 대법관)는 환자에게 나타난 마미증후군에 부합하는 증상을 설명할 다른 객관적인 원인을 찾기 어렵고, 혈종에 따른 신경 압박을 해소하기 위해 재수술 등 시급한 조치가 필요했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대법원은 이 같은 사정에 비춰 의료진이 필요한 조치를 적시에 시행했는지를 충분히 심리하지 않았다고 보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후속조치 적정성·실제 처치 가능 여부까지 판단


수술 후 발생한 증상을 단순히 예상 가능한 후유증이나 합병증으로 보는 데 그치지 않고, 당시 확인된 검사 결과와 환자 증상에 맞는 후속조치가 이뤄졌는지를 다시 따져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응급의료기관 환자 수용의무를 둘러싼 행정소송에서도 병원의 구체적인 대응 가능성이 판단 기준이 됐다.


지난 2023년 대구에서 건물에서 추락한 10대 환자가 치료받을 병원을 찾지 못해 숨진 사건과 관련해 한 병원은 당시 다른 중증외상 환자 응급수술에 의료진이 투입돼 환자를 받을 여력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1심은 병원 측 주장을 받아들였지만 2심은 수술에 참여하지 않은 신경외과와 영상의학과 전문의 등이 환자에게 필요한 처치를 할 수 있었다며 환자 수용 거절에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구급대원으로부터 전화로 전해 들은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특정 진료과목 진료가 어렵다는 이유로 선별적으로 수용을 거절한 것에 ‘정당한 사유’를 인정할 경우 응급의료법 취지를 몰각시킬 우려가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병원 측 상고를 심리불속행 기각해 보조금 지급 중단과 시정명령이 적법하다고 본 2심 판단을 확정했다.


이처럼 최근 판결에서는 의료사고 결과 자체보다 당시 의료진이 처한 상황과 확보할 수 있었던 정보, 선택 가능한 대응 방법이 책임 판단에 중요하게 작용했다. 


의료진 역시 진단이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치료에 따른 위험과 이익을 충분히 살피고, 객관적인 위험신호가 확인된 이후에는 환자 상태에 맞는 필요한 조치를 적시에 시행하는 데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가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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