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술과 그림 만남, 폭발적 시너지가 매력"
메디컬아티스트 유진수 교수(삼성서울병원 이식외과)
2022.12.12 05:40 댓글쓰기

환자들에게 의학용어는 비록 본인의 질병일지라도 생소하고 낯설다. '어떻게 하면 의학정보를 좀 더 쉽게 전달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모든 의료진의 공통 과제다. 삼성서울병원 이식외과 유진수 교수는 그가 몸담고 있는 간이식 분야부터 다양한 질환을 만화로 알기 쉽게 설명하는 ‘그림 그리는 의사’다. 환자 눈 높이에 맞춘 스토리텔링뿐만 아니라 의료현장서 사용되는 ‘메디컬 일러스트’를 통한 전문성도 강화하고 있다. 그림을 통해 환자 마음을 보듬고 있는 유진수 교수를 최근 데일리메디가 만나봤다. [편집자주] 


Q. 최근 ‘닥터단감’이라는 캐릭터로 만화책을 출간했다. 어떤 내용인가

'닥터단감'은 2012년 만화로 의학정보를 전달하고자 만든 캐릭터다. 지금까지 <닥터단감의 의학이야기 1/2권>, <닥터단감의 만화정신의학>, 그리고 최근에 <닥터단감의 간이식만화>를 출간했다.


의학 얘기는 개별 질환들을 꽤 상세하게 설명하는 에피소드 형식이다. 만화정신의학 같은 경우 교과서 내용을 담고 있어 의대생이나 정신과 레지던트, 심리학을 하는 분들이 읽을만 하다. 간이식 만화는 직접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간이식을 왜, 언제, 어떻게 하고, 이식 후 부작용, 관리방법 등을 망라하고 있다.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하면서도 깊이 있게, 간이식에 몸 담은 이후 보고 느낀 점들을 중심으로 얘기를 담았다. 일간지에 연재 중인 <닥터단감의 도시서바이벌>도 얘기하고 싶다. 건강상식, 일상에서 궁금한 건강정보를 4컷 만화로 그리고 있다. 100회를 바라보고 있는데, 추후 단행본으로 출간 예정이다.


Q. 그림 작업에는 언제부터 관심이 있었나

그냥 옛날부터 그림을 좋아했다. 학교 교과서에 낙서하던 시절부터 그랬다. 전문적으로 배우고 연습한 것은 아니었고 흥미가 있다 보니 태블릿도 구매하고 포토샵으로 그림, 만화를 꾸준히 그리면서 여기까지 오게 됐다.


Q. 일러스트와 외과 술기, 연관이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그림을 잘 그리니까 손재주가 좋은 것이고, 손재주가 좋으면 수술도 잘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실상은 많이 다르다. 지식과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결국 열심히 공부하는 머리이지, 손재주가 좋다고 좋은 외과의사가 되지는 않는다. 속도가 빠른 의사, 꼼꼼한 의사 등 스타일이 매우 다르다. 수술에서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환자 상태에 대한 지식과 의사 결정이다.


Q. 만화 소재는 주로 어디에서 찾나

주변이다. 연재 만화에 나오는 소재들은 당장 관심을 갖게 됐거나 주변사람들이 물어보는 내용들이 주다. 가령 해외여행을 가서 시차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관련 내용을 다룬다. 단순히 경험만 담는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시차적응을 하면 좋은지 공부해서 내용을 꾸린다. 시차적응하기 위해 하루에 한시간씩 일찍 자거나 늦게 자야 한다는 의학정보를 담는 형식이다. 하지만 막상 현실에서 지키기는 어렵더라.


진료실서 못다한 얘기 그림으로 풀어내

“메디컬일러스트, 저작물 가치 인정받아야”

“그림으로 환자와 소통할 수 있어 보람”

“딸처럼 어린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의학만화 지향”


Q. 현재 운영 중이 스튜디오 설립 계기는

메디컬아티스트, 다른 말로 '바이오메디컬비쥬얼라이제이션 아티스트'라고도 한다. 최근 이런 직종이 많이 늘었지만 10년 전만 해도 상당히 드물었다. 무엇보다 그림과 저작권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었다.


개인적으로도 다른 이들에게 상당한 노력이 들어가는 작업물을 주고도 인정을 못받는 경험을 하면서 그냥 ‘그림 잘 그리는 의사’가 아니라 ‘전문적인 메디컬일러스트를 제공해 주는 의사’가 돼 보자 싶어 하게 됐다.


처음에는 입소문으로 의뢰가 들어왔는데 현재는 전문적 서비스를 받고자 하는 문의로 범위가 꽤 커졌다. 현재는 국내서도 다행히 메디컬일러스트의 저작권이 충분히 인정을 받게 된 것 같다.


Q. 지망생들에게 조언을 해 준다면

메디컬일러스트는 그림을 잘 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확하게, 원하는 바를 잘 표현해주는 게 필수적인 만큼 충분한 공부와 커뮤니케이션이 요구된다. 예술성보다는 정보 전달을 창의적으로 해내는 게 중요한 영역이고, 그래야 인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지망생들도 그런 부분을 알고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 요즘은 다양한 영상작업도 수행한다. 의료영상 기반 3D 모델링, 3D프린팅, VR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새로운 분야인 만큼 힘들기도 하고 개척하는 맛도 있다. 정해진 미래가 아닌 무엇이 펼쳐질지 모르는 세상에 발을 디딘 것이라고 생각을 해도 좋을 것 같다.


Q. 의술과 그림이 시너지를 낸 경험이 있나

너무 많다. 첫째는 만화를 통해 환자·보호자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병동이나 진료실에서 보여주지 못하는 면들을 보여드린다는 점이 참 매력적이다. 본업인 간이식 관련 만화는 짧은 시간동안 설명해 주지 못하는 것들을 차근차근 전달해 주기 때문에 환자나 가족들이  한번씩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둘째는 메디컬아트 측면에서 필요한 그림을 직접 그릴 때다. 논문에 들어간 그림이 SCI 저널 커버아트로 실렸던 것도 영광이었다. 연구결과를 담고 있는 내용인 만큼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연구 계획서들을 쓸 때마다 ‘10장짜리 글보다 한장짜리 그림이 낫다’라는 것을 몸소 체험하곤 한다. 하고 싶은 연구를 잘 정리한 그림을 넣어줌으로써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어 뿌듯하다.


Q. 향후 계획이나 지향점은

의술과 그림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뛰어다니는 중이지, 아직 잡았다고 보기 힘든 것 같다. 정체성은 간이식 전문의에 더 방점이 찍혀있고 실제 대부분 시간을 그쪽으로 보내고 있다. 의사로서 아직도 많이 배워야 하고 내실을 다져야 한다. 쓰디쓴 경험을 감내하고 계속 자기 발전을 이뤄낸 후에야 손에 토끼가 있는지 확인해 봐야겠다.


그림 쪽으로는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고 있다. 마감이 임박해서야 짬을 내서 만화를 그리는 정도다. 대부분의 메디컬아트 작업은 다른 아티스트들과 공동으로 한다. 플레이어보다는 코치처럼 있는 셈이다. 결국 그림 쪽으로도 토끼를 잡지는 못하는 것은 아닌지 은근 우려도 된다. 의사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고, 대학병원 교수답게 계속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특히 현 장점을 잘 융합해서 재미있는 것들을 해보고 싶은 게 계획이다.


어린이들이 읽을 수 있는 건강의학만화를 하나 그리는 목표가 있긴 하다. 딸이 직접 읽을 수 있는 그런 만화를 꿈꾼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것보다 재미는 덜하지만 그래도 더 좋다'고 얘기하는 딸아이가 더 나이 들기 전에 하고 이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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