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이 2029년 가동을 목표로 \'차세대 양성자 치료기\' 도입을 확정하면서 국내 암 치료 지형도에 변화가 예고됐다.
이미 중입자 치료기를 가동 중인 연세의료원, 2031년 국내 최대 규모의 중입자 센터 가동을 예고한 서울아산병원 사이에서 서울성모병원이 \'차세대 양성자\'를 선택한 배경에도 의료계의 이목이 쏠린다.
소위 \'꿈의 암 치료\'로 불리는 입자 치료(Particle Therapy) 시장에서 서울성모병원이 내린 결정은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인 전략적 투자\'라는 것이 병원 측 설명이다.
\'탄소\' vs \'수소\'…무게가 결정하는 \'파괴력\' 차이
두 치료법의 가장 큰 차이는 사용하는 입자의 종류다. 양성자 치료는 수소 원자 핵(양성자)을 가속해 암세포를 타격하는 반면, 중입자 치료는 수소보다 12배 무거운 탄소 입자를 사용한다.
두 입자 모두 특정 깊이에서 에너지를 폭발시키고 사라지는 \'브래그 피크(Bragg Peak)\' 특성을 공유한다. 신체를 관통하며 정상 조직까지 손상시키는 기존 방사선(X-ray)과 달리 부작용이 현저히 적은 이유다.
차이점은 \'살상력\'이다. 중입자는 입자 자체가 무겁기 때문에 암세포 DNA를 파괴하는 생물학적 효과비(RBE)가 양성자보다 2~3배 가량 높다. 이 때문에 기존 방사선이나 양성자 치료로 효과를 보지 못했던 저산소증 암세포나 육종 등 난치성 암 치료에 강점을 보인다.
서울성모병원 \"방사선 치료 패러다임 변화, 고형암 치료 역량 대폭 강화\"
그렇다면 서울성모병원은 왜 파괴력이 강한 중입자 대신 양성자를 택했을까.
병원은 이번 결정을 두고 방사선 치료 패러다임이 입자 치료로 전환되는 과도기적 국면에서 내린 \'전략적 선택\'임을 분명히 했다.
서울성모병원 관계자는 \"이번 도입은 향후 10년을 내다보고 고형암 치료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투자\"라며 \"그동안 \'서울성모 혈액병원\'이 쌓아온 세계적인 경쟁력을 고형암 진료 분야로까지 동일한 수준으로 확장해 나가겠다는 의지가 담겼다\"고 밝혔다.
특히 중입자가 아직 비급여 영역이 많아 환자 부담이 큰 반면, 양성자는 제도적 기반이 잡혀 있다는 점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 관계자는 \"양성자 치료는 현재 건강보험 급여 적용을 받고 있어 임상적 접근성과 환자 혜택 측면에서 강점이 뚜렷하다\"며 \"이러한 요소들을 종합할 때, 현시점에서는 최첨단 양성자 치료기 도입이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인 투자라는 것이 병원 내부 중론이었다\"고 강조했다.
기술로 승부…\'적응형 치료\'와 \'다이나믹 아크\'
서울성모병원의 \'현실적 선택\'을 뒷받침하는 것은 기술적 진보다.
도입 예정인 \'IBA Proteus Plus\'는 기존 양성자 기기 한계를 기술적으로 극복했다는 평가다.세계 최초로 적용되는 \'적응형 치료(Adaptive Therapy)\'가 핵심이다. 치료 기간 중 환자 체중 변화나 종양 크기 축소 등을 즉각 반영해 실시간으로 계획을 수정하는 기술이다.
여기에 아시아 최초로 도입되는 \'다이나믹 아크(Dynamic ARC)\' 기술은 360도 회전하며 빔을 조사해, 복잡한 형상의 종양도 빈틈없이 타격하며 정상 장기 보호 효과를 극대화한다.
쉽게 말해 중입자가 강한 화력을 지닌 \'대포\'라면, 차세대 양성자는 초정밀 유도 기능을 갖춘 \'스마트 미사일\'인 셈이다.
대다수 고형암에서는 양성자만으로도 충분한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소아암이나 뇌종양 등 민감한 부위에는 안전성이 입증된 양성자가 여전히 1차 선택지가 될 것이라는 것이라는 평이다.
삼성서울·서울대 가세…2030년 암 치료 지형 요동
결국 2030년대 국내 암 치료 시장은 ▲난치성 저항암 위주의 \'서울아산·연세(중입자)\' ▲정밀 타격이 필요한 다빈도 암과 소아암, 그리고 급여 혜택을 통한 대중적 접근성을 무기로 한 \'삼성·서울성모(차세대 양성자)\'로 양분될 전망이다.
이에 2015년부터 양성자 치료기를 운영해 온 삼성서울병원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서울성모병원의 이번 계획으로 두 병원을 사이에 둔 강남권 환자들의 선택지는 더욱 넓어졌고, 고속터미널 인근이라는 강점까지 합치면 지방 환자들의 흡수도 가능하다.
경쟁 병원들이 최신 인프라로 무장하는 상황에서 기존 장비만으로는 경쟁 우위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에 의료계 일각에서는 삼성서울병원의 기기 업그레이드나 신규 모달리티 도입 논의가 앞당겨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병원계 관계자는 \"서울성모병원 참전으로 2030년대 초반 \'빅5 병원\' 암 치료 인프라 경쟁은 정점에 달할 것\"이라며 \"각 병원이 수천억원을 투입한 만큼 환자 유치를 위한 마케팅과 진료 성적 입증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서울대병원은 부산 기장군에 중입자 치료센터를 건립 중이다. 2027년 하반기 개원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수도권 접근성이 떨어져 환자군은 다소 분산될 것으로 보인다.
조재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