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아닌 집무실서 \'저속노화\' 대중화 설계\"
최종수정 2025.12.12 09:18 기사입력 2025.12.12 09:18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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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메디 문수연기자]



정희원 서울시 건강총괄관. 사진 문수연 기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의사이자 의사과학자였던 정희원 교수는 이제 ‘서울시 건강총괄관’이라는 새로운 명함을 들고 있다.


대학병원을 떠나 서울시청으로 자리를 옮긴 지도 수 개월. 그는 \"공공의료 분야 사람들은 어떻게 사고하고 일하는지 직접 배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진료실에서 노인환자들을 돌보며 고민하던 ‘노쇠·돌봄·예방’ 화두를 이제 도시 정책과 제도로 풀어내겠다는 각오다.


동시에 그는 유튜브 채널 ‘저속노화 연구소’, MBC 라디오 ‘정희원의 라디오 쉼표’를 통해 대중과도 활발히 소통하며 기존 대비 활동 폭을 넓혔다.


최근 서울시청에서 만난 정희원 교수는 “공무원들은 이미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다른 나라가 어떻게 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며 “핵심은 정치가 어떤 결심을 하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공무원들, 생각보다 훨씬 많이 고민”


시청 출근을 시작한 뒤 정 교수의 공무원에 대한 인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한국 사회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고 유지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공무원들이 개인 시간을 희생해가며 일하는 현실을 꼽았다.


눈에 잘 드러나지 않을 뿐 늦은 밤이나 주말까지 이어지는 업무가 제설, 지하철 운행, 각종 행정 시스템 유지의 기반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과거 각종 위원회에 참석할 때만 해도 그는 “정책을 만드는 쪽은 현실을 모른다”, “다른 나라가 어떻게 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러나 시청에 들어와 함께 일해보니 상황은 전혀 달랐다. 공무원들은 이미 다른 나라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고 방향성에 대한 고민도 거듭하고 있었다.


문제는 다음 단계다. 그는 “결국 정책으로 구현하고 자원을 배분하는 것은 정무적 결정의 영역”이라며 \"자원 투입권이 정치에 있는 구조 속에서 ‘알고 있지만 못하는 일’이 너무 많다\"고 짚었다.


위원회 참여 경험도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과거 외부 전문가로 참석할 때에는 \'탁상공론\'이라고 느꼈다. 실무를 모르는 이들이 자신의 과거 연구나 이론에만 기반해 발언하는 경우도 적잖았다.


반면 지금은 시청에서 정책을 집행하는 위치에서 위원회를 바라보게 되면서 공무원 입장이 훨씬 또렷하게 보인다고 전했다.


정희원 교수는 “인턴의 마음으로 일하는 중”이라며 “공공 영역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사고하고 실행하는지 익혀가는 과정에서 공무원들에 대한 존경심이 자연스럽게 커졌다”고 전했다.


“저속노화, 정책으로 옮기고 싶었다”


그가 건강총괄관으로서 처음부터 마음에 담았던 것은 한국 돌봄·예방·의료시스템 전반에 ‘노인의학적 관점’을 녹여 넣는 일이었다.


사람의 생애주기 전체를 놓고 보면 노화와 기능 변화, 노쇠의 축적, 고장의 축적, 다질환, 다제약물 사용 등은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개념이다.


그럼에도 국내 의료·돌봄 시스템의 초점은 여전히 ‘치료’와 ‘서비스 제공’에 머물러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건강한 사람이 스스로 건강 관리를 통해 질병을 예방하고, 이미 노쇠가 진행된 이들이 노쇠를 늦추고 돌봄·간병의 시점을 최대한 늦추는 개념은 정책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칼럼을 쓰고, 위원회에서 관련 내용을 제기해도 ‘노쇠 예방’, ‘돌봄 예방’이라는 주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정희원 교수는 “그렇다면 내가 직접 해보자”는 생각으로 서울시에 왔고, 지금은 이 빈칸을 채워 넣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정책 과제로 그는 먼저 ‘통곡물 밥’ 사업을 비롯한 먹거리 정책을 들었다.


한국인은 기본적으로 밥과 반찬을 중심으로 식사하기 때문에 탄수화물·섬유질·미네랄 구조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질병 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견해다.


통곡물을 하루 한 끼, 1인분 기준 20~30g 정도만 늘려도 혈압·혈당·지질, 심뇌혈관질환, 대사질환 등의 위험이 적게는 5%, 많게는 10% 이상 줄어든다는 연구들이 축적돼 있다.


마이크로바이옴 개선, 만성염증 감소, 섬유질 섭취 증가가 함께 일어나기 때문이다.


소아·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가공식품 ‘영양 신호등’ 라벨링도 중요한 축이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가공식품 전면에 빨·노·초 신호등처럼 당·나트륨·지방 등 핵심 정보를 표시하는 제도다.


정 교수는 “어릴 때부터 고열량·고당·고지방 음식에 반복 노출되면 ‘가속 노화’가 빨라지고, 성조숙증과 키 성장 저하, 성인기 조기 만성질환 위험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그는 상품 진열, 광고 노출, 레이블링을 아우르는 종합적 정책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인 영역에서 핵심 키워드는 ‘노쇠 예방’과 ‘돌봄 예방’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정책에 반영해 온 개념이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본격 도입된 사례가 없다.


정 교수는 1차 의료기관과 공공병원 등에서 노인의학 클리닉을 운영하며 ‘노인 포괄 평가’를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지 기능, 신체 기능, 다제약물, 다질환, 사회적 고립 여부 등 전반적 기능 상태를 평가해 결핍된 영역은 보완하고, 개선 가능한 기능은 적극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이 같은 접근은 통합돌봄체계와의 연계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정책 결정권자에게 노쇠와 예방, 통합 돌봄과의 연관성을 짧은 시간 안에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그는 “정책 결정자들이 너무 바쁘다 보니 설명을 듣는 시간이 제한돼 있다. 30초 안에 핵심을 전달해야 하는 ‘엘리베이터 스피치’와 같다, 그 30초를 통과하지 못하면 예산과 제도 변화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연령친화 의료, 노인 셀프 건강관리”


정희원 교수는 상급종합병원에서 ‘연령친화 의료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을 맡았던 경험도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상당히 발전된 개념으로, 미국노인병학회가 추진하는 ‘Age-friendly Health Systems’나 세계보건기구의 ICOPE(노인 통합관리)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연령친화 의료의 핵심을 “이미 노쇠와 고장이 많이 쌓인 상태인 노인환자에게서 위험 요인을 한 묶음으로 보고 관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인은 약 하나만 잘못 처방돼도 섬망이 발생하거나 하루 이틀만 누워 있어도 근육이 급속도로 빠져 낙상·골절·폐렴·와상·요양병원 입소·사망 등으로 이어지기 쉽다.


이 때문에 의료 시스템 전반이 WHO가 말하는 내재역량(intrinsic capacity)을 지키고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는 것이다.


낙상을 막기 위해 환자 손발을 묶어두면 오히려 욕창과 섬망이 늘어나는 역효과가 발생한다.


반대로 낙상·욕창·섬망을 동시에 줄이려면 환자를 가능한 빨리 움직이게 하고, 제때 적절한 영양을 공급하며, 통증을 조절하고, 불필요하게 졸리게 만드는 약을 줄이는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그는 “결국 노인이 최대한 자신의 건강 상태를 다시 찾도록 돕는 게 연령친화 의료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치료라기보다 ‘예방’에 가까운 개념이지만, 이러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수가와 인력이 뒤따라야 한다. 한국에서는 아직 그러한 구조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는 게 그의 평가다.


“우리나라 3분 진료 구조상 노인의학 실현 불가”


정희원 교수는 \"상급종합병원에서의 진료 경험을 돌아보며 연령친화 의료가 갖는 구조적 한계가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크게 체감되는지를 반복적으로 느꼈다\"고 말했다.


노인환자를 오래 듣고, 기능을 평가하고, 다제약물을 조정하는 등 노인의학 핵심 요소는 본질적으로 ‘시간·팀 기반 진료’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대형병원 외래는 빠른 회전율과 검사·처방 중심의 구조로 운영되기 때문에 이러한 접근을 지속하기가 점점 더 어려웠다고 전했다.


그는 “꼭 필요한 진료를 하고 싶어도 시스템이 허용하지 않는 순간들이 쌓였다”고 술회했다. 그렇게 누적된 고민은 결국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의료에 기여할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병원을 떠나 서울시로 옮긴 결정은 결코 가벼운 선택이 아니었다.


정 교수는 스스로를 의료현장과 연구 두 축을 모두 중시하는 의사과학자(MD-PhD)라고 규정하며, 이전 병원에서도 데이터를 기준으로 보면 연구 생산성이 높은 편에 속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비전임 계약직 신분으로 있으면서 풀타임 진료를 소화해야 했고, 본인이 감당 가능하다고 여겼던 수준을 넘어서는 진료량이 요구됐다.


여기에 의정갈등과 당직 문제까지 겹치며 신체적·정신적으로 상당한 부담이 누적됐다.


그가 추구하던 노인의학은 ‘검사를 최소화하고, 환자 얘기를 충분히 듣고, 기능과 삶 전체를 보는 진료’였다.


하지만 현실의 외래 구조는 3분 안에 환자를 내보내야 했고, 검사·처방을 많이 내는 방식이 병원 수익과 직결돼 있었다.


이 구조 속에서 점점 진료시간이 짧아졌고, 실망하고 돌아가는 환자를 보며 자괴감과 번아웃의 악순환에 빠졌다. 결국 “이 상태로는 하고 싶은 노인의학을 지속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무렵 서울시에서 공공 영역에서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이 들어왔고, 동시에 MBC 라디오에서 새로운 건강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자는 제안도 이어졌다.


정 교수는 두 달가량 병가를 내고 책 \'저속노화 마인드셋\'을 탈고하면서 자신의 삶을 정리했다. 그 과정에서 “이제는 다른 길을 가야겠다”는 마음이 분명해졌다고 회상했다.


그는 “진료가 싫어서가 아니라 ‘적정진료’를 하기 어려운 구조 속에서 전문성과 가치관이 계속 소모된다는 느낌이 컸다”며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병원 밖 사회에서 더 많이 인정받는 희열”


병원을 나온 뒤 정 교수의 활동 영역은 오히려 넓어졌다. 그는 MBC 라디오 프로그램 ‘정희원의 라디오 쉼표’를 약 6개월간 진행하며 우수 진행자 상과 인센티브를 받았다.


병원에서 늘 최하 등급 성과급에 익숙해져 있던 상황에서 “잘했다”는 평가와 함께 인정받는 경험을 하자 “눈물이 날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저속노화 관련 저서는 베스트셀러가 되며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고,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는 60만 명을 넘겼다. 클래식 연주 활동도 계속 이어가며 점점 전문 연주자 형태의 무대를 경험하고 있다.


팝업 행사와 강연 현장에서는 손편지를 받는 일도 잦다. 극심한 피로감과 건강 악화로 힘들어하다가 그의 책과 콘텐츠를 계기로 식습관·생활습관을 바꾸며 삶이 달라졌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잖다.


정 교수는 이 같은 반응을 보며 “진료실에서 평생 만날 수 있는 환자보다 훨씬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의 시선은 다시 한국 의료 시스템 전체로 향한다. 정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의료 제도를 두고 “한마디로 2000년에 멈춰 있다”고 진단한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만 하더라도 의료의 최우선 과제는 중·장년층 심혈관질환과 암 조기 발견·치료였다. 그때 설계된 제도와 수가 구조가 지금까지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사이 인구구조는 급격히 고령화됐고 후기 고령자가 크게 늘었지만 의료의 포커스는 여전히 과거의 틀 안에 머물러 있다.


그는 이제 1차 의료와 방문의료, 정신·신체·사회 기능을 함께 보는 통합 의료(주치의 개념)로 옮겨가야 하며, 노인의학적 평가와 돌봄·돌봄 예방을 시스템의 중심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환이 좀처럼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배경에는 연령주의와 연공서열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급종합병원에서는 60세 이상 시니어 의사들이 주요 발언권을 쥐고 있고, 젊은 교수들은 전공의 시절에 하던 일을 지금도 거의 그대로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현장에서 가장 많은 환자를 보고 최신 지식을 갖춘 세대가 정책·제도 논의 테이블에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구조에서는 새로운 노인의학·예방 중심 의료 시스템이 도입되기 어렵다는 얘기다.


“공론화 통한 제도 개선 후 노인의사 복귀”


정 교수의 개인적 목표는 단·중·장기로 나뉜다. 단기적으로 그는 자신이 가진 여러 ‘스피커’를 최대한 건강하게 유지·확장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유튜브 ‘저속노화 연구소’, 라디오 ‘정희원의 라디오 쉼표’, 각종 강연과 글을 통해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정론에 가까운 건강 정보’를 전하는 게 목표다.


그는 “극단적인 단식과 과도한 유행 다이어트처럼 건강을 해치는 행동이 과도하게 소비되는 현실 속에서 최소한 그런 ‘믹스 인포메이션’을 줄이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스피커들이 상업성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생존해야 한다.


정 교수는 “내가 조금 덜 벌면 되지만 제작진이 굶을 수는 없다”며 “경제적으로 무너지지 않으면서도 내용의 본질을 지키는 방식으로 버텨내는 게 당면 과제”라고 말했다.


중기 목표는 실제 지표의 변화를 확인하는 것이다. 국민건강영양조사 등에서 한국인의 식습관·체중·대사 건강 지표가 개선되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말과 글, 콘텐츠를 통해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을 3~5년의 목표로 잡고 있다. 장기적으로 대략 10년을 내다보면 그는 다시 ‘진료·연구·교육’의 장으로 돌아가길 희망한다.


단, 그 전제는 노인의학적 적정 진료를 했을 때 병원 내부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지 않는 구조다. 노인 포괄평가에 대한 적정 수가, 다제약물 조정에 대한 보상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이 조성된다면 다시 1:1로 환자를 만나고, 의대생·전공의를 가르치며, 노인의학 연구를 하는 삶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현재 서울시에서의 역할도 그 토대를 만드는 과정으로 보고 있다.


서울시 건강총괄관으로서 정 교수는 지난 9월 ‘서울시민 건강정책’ 발표를 통해 ‘먹는 것(식생활)’, ‘움직이는 것(운동·활동)’, ‘도시 환경’이라는 3개 축을 제시했다.


‘통쾌한 한 끼’로 대표되는 통곡물 밥 사업을 시작으로, 어린이를 위한 식품 표시·배치, 중·장년층과 노인을 위한 운동 환경 개선, 도시 설계와 건강을 연결하는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추진 중이다.


그는 자원과 인력이 충분하지 않은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공무원들이 피땀을 흘리며 사업을 끌고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내년에는 대부분의 사업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설계돼 있어 더 바빠질 것으로 내다봤다. 정 교수는 “아직 공개하기 어렵지만 사람들이 봤을 때 멋지다 싶은 것들이 몇 개 준비돼 있다”라고 전했다.

문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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