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병원 장례식장 ‘캐시 카우(Cash Cow)’ 옛말
저수가 보전 '해결 창구' 역할 등 위상 하락···상조회사 등장 장례문화 '급변'
2021.04.09 06:16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박대진 기자] 원가 보전도 불가능한 저수가 체제에서 일선 병원들의 수익 창출 통로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더욱이 의료법인이나 학교법인, 사회복지법인 등은 ‘비영리’라는 족쇄까지 채워져 수익사업 전개가 녹록치 않은 처지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례식장은 정부로부터 허가 받은 몇 안되는 공식적인 수익사업 창구이었다. 더욱이 꾸준한 수요에 ‘캐시 카우(Cash Cow)’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황금창구 역할을 했다. 하지만 최근 병원들의 장례식장 운영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직접 장례식장을 운영하는 직영 방식에서 외부업체에 운영을 맡기는 ‘외주’ 형태로 빠르게 전환 중이다. 장례식장 운영체계 변화, 그 속사정을 들여다 본다. [편집자주]
 
장례식장 전성시대, 무한경쟁 초래

병원계에서 장례식장과 건강검진센터, 주차장은 대표적인 수익 창출원이었다. 그 중에서도 장례식장은 고령화 및 장례문화 변화와 맞물려 황금알 낳는 거위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요즘 병원들은 “장례식장이 예년만 못하다”며 한 숨을 내쉬고 있다. 높은 수익성이 입소문을 타며 장례식장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난 탓이다.

실제 전국 장례식장이 1000개가 훌쩍 넘은지 오래고, 빈소 역시 5000개 이상이다. 1일 평균 사망자가 3일간 장례식장을 이용할 경우 필요한 빈소 보다 약 2배 이상 과잉공급된 상태다.

이러한 장례식장 빈소 과잉공급은 장례식장 영업이 자유화된 1998년 이후 심화됐다. 2003년 3113개였던 빈소는 2015년 4900개로 157% 증가했다. 
 
대학병원들 역시 앞다퉈 장례식장 사업에 뛰어 들었다. 사실 대학병원들의 장례식장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병원들은 영안실만 운영했을 뿐 장례식장까지 갖춘 곳은 극히 드물었다. 장의차가 드나들면 나머지 환자와 보호자들이 격렬하게 항의한 탓이었다.
 
하지만 장례문화가 바뀌고 장례식장의 수익성이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병원들은 물론 개인 사업자들도 장례식장 사업에 뛰어들었다.
 
14개 국립대병원이 직영하거나 위탁으로 운영하는 장례식장의 순수익은 2010∼2014년 5년간 880억원에 달했다. 평균 이익률 역시 매년 기록을 갱신하며 고공행진했다.
 
경영난에 허덕이던 병원에 현금다발을 안겨주는 장례식장에 병원들은 사활을 걸었다. 외부 장례업자에게 위탁 경영하던 장례식장을 잇따라 직영으로 바꾸는 것도 이런 시류를 반영했다.
 
경쟁이 치열해 지면서 시설투자도 유행처럼 번졌다. 웬만한 대형병원들은 건물 신·증축 등을 통해 장례식장 경쟁체제에 돌입했다.
 
특히 VIP를 위한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영업전략으로 660㎡ 이상 되는 초호화 분향소까지 등
장하기에 이르렀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경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사람을 살리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할 병원이 죽은 사람 뒤처리에 더 관심을 쏟는 기현상이 벌어졌다”고 개탄했다.

상조회사 등장, 내리막 시작

하지만 병원들의 장례식장 호사는 오래가지 못했다. 상조회사 등장은 병원 장례식장 사업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왔다.

장례식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상조회사와 나눠갖는 구조로 변화하면서 장례식장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상조회사 소속 장례지도사 출입을 막거나 장례 행사를 방해하기도 했다.

밥그릇 싸움이 심해지면서 시신인수 거부 같은 패륜적인 일마저 벌어졌다. 한 장례식장 직원이 상조회사에 향과 초, 알코올, 솜 등 장례 물품 구입을 강요하면서 사건이 일어났다. 

상조회사는 자신들의 물품을 사용하겠다며 장례식장 물품 구입을 거부하자 장례식장은 고인을 인도해주지 않겠다고 맞섰다.

장례에 사용되는 꽃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경우도 있었다. 장례식장이 외부 꽃 반입을 금지하며 상조에 가입한 유족은 별도의 꽃값을 지불해야 했다.

장례식장의 이런 영업행위는 관, 수의, 유족 의복 등 장례물품 판매와 행사 진행을 도맡아했던 것과 달리 상조회사의 시장 진입으로 매출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장례식장은 유족에게 관 덮개, 향·초 등 장례용품과 꽃 구입을 강매하게 됐고, 상조회사는 추가적인 비용을 유족에게 전가하는 악순환이 벌어졌다.

최근에는 상조회사와 장례식장의 반목이 봉합된 듯 보이지만 상대가 불편한 상황은 여전하다는 게 지배적인 분위기다.
 
여기에 최근 간소화 되고 있는 장례문화 역시 장례식장에 대한 병원들의 기대치를 감소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간소한 장례문화에 조문객이 감소하면서 음식 소비가 크게 줄었고, 이는 식당과 매점 등 장례식장의 주요한 수익원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 장례식장 운영 담당자는 “장례문화가 변하면서 조문만 하고 가는 경우가 많고, 가족과 친지만 참석해 조촐하게 치르려는 문화가 점차 확산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수그러드는 인기, 직영→외주 전환 

데일리메디가 전국 45개 상급종합병원들의 장례식장 운영현황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장례식장 패러다임 변화는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45개 상급종합병원 중 장례식장을 직영으로 운영하는 곳은 23개였다. 반면 외주를 주는 병원은 21곳으로 외주 비율이 늘고 있는 추세다.
 
마진율이 높은 직영을 선호하던 예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모습이다. 강북삼성병원의 경우 몇 해 전부터 아예 장례식장을 없앴다. 
 
해당 자리에는 멋들어지게 꾸며진 직원식당을 비롯해 교수 연구실 등이 들어섰다.
 
직원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병원의 과감한 결정이었지만 하향곡선을 그리는 장례식장 운영지표도 작용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국립대병원의 경우 여전히 직영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대병원과 분당서울대병원은 새마을금고 측에 운영을 맡겼다. 양산부산대병원도 인근 장례식장에 외주를 줬다.

사립대병원들은 대부분 학교법인이 장례식장을 운영 중이다. 관점에 따라 직영으로 볼 수도 있지만 결산상으로는 엄연한 외주 형태다.
 
물론 이 같은 상황은 과거 장례식장이 호황을 누리던 시절 학교법인들이 앞다퉈 운영권을 쥔 불편한 진실에 기인한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장례식장 운영 환경도 바뀌면서 일부 학교법인은 외주로의 전환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까지는 수익을 내고 있지만 오히려 인건비 등 운영비 부담이 늘어나면서 차라리 외주로 전환해 임대료를 받는 게 실용적이라는 계산이다.
 
한 학교법인 관계자는 “매출은 계속 줄어드는데 관리비는 오히려 상승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이제는 장례식장에 대한 운영권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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