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운영 간납사 바라보는 불편한 시각
김성미 기자
2016.05.02 16:33 댓글쓰기

[수첩]의료기기 유통질서 확립 차원에서 ‘간납업체’ 문제 해결 목소리를 높여온 의료기기 업계에 반갑지 않은 소식이 전해졌다. 학교법인 I학원이 병원 물류구매대행업체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I 학원 이사회는 지난 2월 중순 의료원 산하 5개 병원의 치료재료 및 의료소모품, 의약품 구매를 대행할 ‘신규물류대행업체 설립 안건’을 이사 9명 전원 찬성으로 의결했다.


이사회는 산하 병원의 경영난 해소를 위한 수익사업 일환으로 물류대행업체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합작투자 방식으로 법이 허용하는 49% 지분을 투자하고 2대 주주로서 병원 간 거래에서 발생되는 수익에 대한 배당을 최대한 끌어와 부속병원 회계에 편입시킨다는 구상이다.


I학원의 새 수익사업 소식에 의료기기 업계가 예민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름만 다를 뿐 그동안 의료기기 유통질서 교란의 주범으로 지목한 간납업체가 또 시장에 등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간납업체는 업계가 토로하는 가장 큰 고충이다. 납품 대가로 업체에 과도한 가격 할인을 요구해 제품을 제값 받고 공급할 기회를 잃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또 가격 할인으로 이득을 보는 주체는 병원인데 수수료는 외려 의료기기 업체가 내야한다.


간납업체 중에서도 특히 I학원이 추진하는 ‘재단 관련 업체’의 경우 그 폐해가 심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병원 수익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과도한 할인율과 수수료를 요구해서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등 불공정 거래가 발생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업계는 이 같은 폐해를 정부에 알리고 불공정 거래를 방지할 제도 개선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오랜 노력 끝에 최근 정부와 의료기기 유통 질서 확립이 필요하다는데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성공했다.


보건복지부는 약사법에 명시돼 있는 ‘특수 관계인 거래금지 조항’을 의료기기법에도 넣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약사법의 경우 2촌 이내 친족이거나 지분 50% 이상을 보유한 의료기관과 특수 관계에 있는 도매상과의 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유통 질서 확립을 위한 신호탄이 쏘아졌다는 점에서 분명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정부가 입법을 위해 준거로 삼고 있는 약사법의 특수 관계인 거래 금지 조항도 ‘편법’을 걸러내지는 못한다.

지분만 49% 보유했을 뿐 법망을 교묘히 피해 실질적으로는 병원에 경영권을 행사하면서 특수 관계에 의한 내부거래, 일감 몰아주기 등으로 유통 질서를 교란하는 행위까지 막아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의약품유통협회도 최근 열린 이사회에서 이 같은 문제를 제기하며 합법을 가장한 의료기관 직영 도매를 근절하기 위해 지분을 아예 투자할 수 없도록 법을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도 “현행법상으로는 의료기관의 우회적인 투자까지 원천적으로 차단할 방법은 없다”면서도 “비정상적인 거래가 발생했을 때 사후적으로 엄정히 대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의료기기 유통 질서 확립을 위한 노력이 단순히 약사법 수준으로 보완이 이뤄지기 보다 시행 착오를 줄일 수 있는 촘촘한 법망이라는 결과물로 이어져야 하는 이유다.

I학원의 간납업체 설립 추진 소식을 전해 들은 한 의료기기 업계 관계자는 "차라리 잘됐다"고 말했다. 재단 관련 간납업체의 문제점을 정부와 공유하고 차근차근 짚어 나갈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

의료기기 선진 유통 구조를 만들기 위한 첫 시도인 만큼 의미있는 성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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