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심평원 국감서 드러난 '맹탕' 질의·응답
한해진기자
2020.10.24 06:20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한해진 기자/수첩] “개선하겠다는 얘기만 하지 말고 실질적인 대책을 말해봐라.”
 
업무보고 등으로 국회에 불려가는 정부 기관장들이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특히 이 같은 발언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유독 자주 등장한다.

국회의원들은 정부 관계자들이 조금이라도 머뭇거리는 찰나를 놓치지 않고 파고든다. ‘확실한 대책을 얘기하라’며 언성을 높이고 호통을 친다. 기관장들은 쩔쩔매며 사과하거나 입을 다물어야 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정감사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이번 국감 화두는 문재인 케어와 건강보험 재정 문제였다. 모든 의원들이 약속이나 한 듯 재정 적자와 부채 비율을 지적했다.
 
건보공단 김용익 이사장은 “비급여 관리를 철저하게 하겠다”고 답했고 심평원 김선민 원장도 “관리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답변을 이어갔다.

물론 만족스러운 대답은 아니다. 의원들은 “마련하겠다고만 하면 뭐하냐” “실질적인 대책을 얘기하라”고 재촉했지만 “지적하신 부분에 대해 고민하겠다”는 신통찮은 반응만 얻었을 뿐이다.
 
사실 이런 답변에는 이유가 있다. 문케어로 인한 재정 적자의 확실한 해결책이라면 문케어 포기일 것이다. 의원들은 그런 폭탄 발언을 원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현실불가능한 답변이다.

결국 문케어 추진 과정에서 나타나는 위험요소를 최대한 관리해야 하는데, 이미 공단은 이에 대한 대책을 요구한 바 있다. 바로 국고보조금 확대 요청이다.

본래는 예상 수입액의 20%를 받을 수 있지만 제대로 시행된 적이 없다. 현재 기획재정부를 통해 본예산에 이를 반영해 달라는 요청을 해 둔 상태다.
 
건보재정 낭비 요인 중 하나로 꼽히는 사무장병원 단속과 관련해서는 특별사법경찰권한 부여를 추진하고 있지만 이는 국회에서 법률안 개정안이 통과돼야 하는 부분이다.

20대 국회에서는 자동 폐기됐고 21대 국회에서도 공단의 재추진 의지는 있으나 마음먹은 대로 이뤄질 지는 미지수다.
 
건보공단의 국고보조금 확대 요구는 문케어 시행 전부터 있어왔고, 특사경 도입은 매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해 좌절됐다. 이 밖에 보험료 상한률 조정이나 건보공단 산하 병원 추가 설립 역시 국회 법 개정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가 역으로 “돈이 왜 없냐. 어떻게 할 거냐”고 되물으니 기관장들로서는 할 말이 없게 된다.

“국회에서 해 주면 되는 일이다”라고 반박이라도 했다간 역풍을 맞을 게 뻔하니 “잘못했다, 시정하겠다”는 의미 없는 말만 되풀이하는 것이다. 사실상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립서비스에 불과한 셈이다.
 
21대 국회에서 복지위도 이번이 첫 국감이었고, 또 절반 이상이 초선 의원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정책 이해도가 눈에 띄게 낮았다는 지적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보장성 강화를 기치로 내건 문재인케어와 재정 문제는 해묵은 논란이다. 돈 문제를 얘기하고 싶었으면 차라리 작년과 올해 피감기관 살림살이 내역이라도 비교해 ‘코로나19 시국에 왜 이렇게 돈을 많이 썼냐’고 트집을 잡는 편이 나았을 것 같다. 
 
국정감사에서는 그동안 공공기관에서 쉬쉬해 왔던 내용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한다. 혹은 몇 년째 국감장에서 지적됨에도 불구하고 개선이 전혀 없는 점에 시비라도 걸어야 한다.

국회는 이를 명분으로 묻혀왔던 자료를 얼마든지 요구할 수 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을 계속 물어보고 할 말이 없게 만든 뒤에 의기양양하기 위해 기관장들을 불러오는 게 아니다.
 
의사 파업으로 촉발된 면허 관리 문제나 코로나19 등으로 공단과 심평원 내부 사정에 집중할 수 있는 여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했을 수도 있겠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복지위 덕분에 공단과 심평원 국감 사후 일거리가 대폭 줄었다는 점이다. 임시방편으로나마 대안을 내놓는 척이라도 했던 예년과 달리 올해는 굳이 나서서 변명할 건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더 두려운 점은 이대로라면 내년 국감에서도 또 문케어 얘기를 하루 종일 들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문케어를 빼면 공단과 심평원에 물어볼 내용이 없어 보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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