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vs 한의사 '첩약 급여화' 갈등
박정연기자
2020.07.10 17:24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수첩] 코로나19 사태가 좀처럼 종식되지 않은 가운데 의료계와 한의계의 갈등이 재점화 되는 양상이다. 정부가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을 공식적으로 추진하고 나서면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소위원회를 열고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정부안을 발표했다. 협의체가 가장 마지막으로 열린지 6개월 만이다.


당초 복지부는 지난해 말 시범사업 계획을 마무리하고 건정심 본회의에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안을 상정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논의가 중단된 바 있다.


복지부의 이번 시범사업 재개 소식에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의료계였다.


의료계는 줄곧 한약, 즉 첩약 유통과정의 안전성과 질환에 대한 효과가 담보되지 않았다며 사업에 반대해왔다.

그러나 소위원회 이후 시범사업 정부안 시행이 가시화되면서 의료계 단체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의료계 종주단체인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해 각 시·도 의사회, 학회, 분과별 의사회는 일제히 성명서를 발표하며 시범사업을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특히 의협은 지난달 28일 청계천에서 공개집회를 열며 행동에 나섰다. 정부가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 전면투쟁에 나설 것이라며 ‘총파업’ 카드도 꺼내들었다.


의협은 첩약 급여화와 관련한 건정심 소위원회가 개최된 6월 3일에도 회의장소인 국제전자센터 앞에서 철회를 촉구하는 시위를 진행했다.
 

최대집 회장은 “의협은 국민건강을 최우선으로 책임져야 하는 전문가 단체”라며 “첩약 급여화 반대는 단순히 한의계와 직역 간 다툼의 문제가 아닌 국민 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검증되지 않은 첩약에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해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이를 통해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하겠다는 게 보건복지부 입장에서 가능한 일인지 되묻고 싶다”고 반문했다.


의료계 단체들 역시 “국민 목숨을 담보로 한 위험한 실험”이라며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갔다.


물론 한의계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일련의 의료계측 반발에 대해 강경 입장을 담긴 논평을 발표하며 반박하고 나섰다.

한의협은 “첩약 급여화는 국민 진료 선택권 및 확대와 경제적 부담 완화를 위한 사업”이라며 “의료계의 악의적인 선동과 여론몰이가 깊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의료계는 시범사업의 정당성을 훼손하고 직역 간 밥그릇 싸움, 진흙탕 싸움으로 몰고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의료계와 한의계가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건정심 소위원회가 열린 회의실 앞에서는 한약사회도 반대 집회를 열었다. 한약사회는 첩약 급여화의 안전성을 위해 한방 의약분업이 전제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을 두고 부딪치는 의료계 단체들은 공통적으로 ‘국민 건강을 위해’라고 말한다.


첩약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의료계, 조제과정에서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한약사들, 반면 한약의 효과는 이미 확인됐고 탕전실 체계 등 다소 미비한 부분은 시범사업을 통해 바로잡아 나가자는 한의계 모두 대의는 국민건강에 있다고 말한다.
 

물론 이들 단체의 주장 전부 일리는 있다. 각 직역별 분야에서 사안을 분석해 정말 중요한 문제들을 꼬집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반복되는 대외홍보는 국민들에게 피로감을 자아내고 있다. 주장의 핵심에는 눈길이 가지 않고 강경함의 표현에만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들 단체의 사정도 있다. 원탁에서 좁혀지지 않은 입장 차이가 있고, 혹은 발언권 자체가 부여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각 직역 간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진행되는 사업에서 이견과 반발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재고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각계가 주장하는 바는 모두 중요한 사안이다. 적지 않은 세금이 투입되는 사업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이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보다 생산적인 논의는 회의장 밖이 아닌 안에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직역 간 물러설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최대한의 합의점을 끌어내는 게 종주단체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


의료인은 국민건강을 수호하는 전문가들이다. 직역 갈등의 상황에서 차분한 대화와 타협으로 국민들에게 신뢰를 보여야 한다. 국민들이 안심하고 건강을 위임할 수 있도록 종주단체들의 행보 변화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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