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대응 무색한 일부시민 안일함으로 '참사' 우려
박민식기자
2020.02.21 19:05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박민식 기자/수첩] 코로나19에 수 만명이 감염돼 아비규환이 된 중국,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서 무더기 감염자가 나온 일본. 이런 이웃나라들에 비해 우리는 비교적 성공적인 방역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내부에서 나온 자화자찬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실제로 월스트리트저널, ABC 등의 외신들은 한국의 방역 시스템에 박수를 보냈다.
 

사실 우리는 2015년 중동에서 찾아온 낯선 불청객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부끄러운 기억을 갖고 있다. 당시 정부와 의료계 모두 감염병 대응 시스템이 미비했고, 186명이 메르스에 감염돼 38명이 목숨을 잃었다.
 

메르스로 우리에겐 아픈 상흔이 새겨졌지만 이는 향후 보다 철저한 준비를 가능케 해주는 주사 자국과 같은 것이었다. 실제 이번 중국발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정부와 병원들의 모습은 이전과 확연히 달랐다.
 

정부는 질병관리본부를 컨트롤 타워로 확진자부터 접촉자까지 신속하게 파악하고 관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병원들 역시 선별진료소를 설치하고 출입을 통제하며 병원 내 감염 사전 차단에 애썼다.
 

음압병실에서 의료진의 집중 케어를 받고 완치된 환자들도 속속 병원문을 나섰다. 일부 비판적인 목소리도 있었지만 여론은 과거와 달라진 정부와 병원들 대응에 우호적인 반응을 보였다. SNS상에서 격려도 나왔다.
 

하지만 이처럼 정부와 의료계가 고군분투 하고 있는 가운데 감염병 확산 방지에 또 다른 축인 일부 국민은 메르스를 겪으며 얻은 교훈을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지난 18일 대구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31번 환자는 확진 이전에 의료진의 코로나19 검사 권유를 두 번이나 거절했다. 해외 방문력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그 사이에 이 환자는 더 많은 사람들과 접촉했고, 대구에서는 이틀새 10여 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왔다. 특히 31번 환자가 다녀간 교회와 병원에서 대거 환자가 추가됐다. 급기야 오늘(20일) 전체 확진자가 200명을 넘었고 그 중 상당수가 신천지대구교회와 연관이 있다.
 

유사한 상황이었음에도 며칠 전 고대안암병원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29번 환자 역시 해외방문력이 없었지만 의료진은 코로나19 감염을 의심해 검사를 진행했다. 해당 환자는 최종 확진 판정을 받았고 즉각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다.
 

두 사례 모두 의료진은 훌륭한 선제적 대응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 중 하나의 사례에서 환자가 의료진 권고를 따르지 않았고 그로 인해 초래된 결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물론 환자 본인은 해외방문력이 없었기 때문에 코로나19일 것이라고는 의심치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전국이 코로나19로 경계태세인 가운데 전문가인 의료진 의견을 두 차례나 흘려들은 점은 아쉬울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 뿐만 아니다. 자가격리자들이 격리기간 동안 타인과의 접촉을 금하는 지침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경우들도 발생하고 있다.
 

15번 환자의 경우는 자가격리 기간 중에 같은 건물 다른 층에 사는 가족과 식사를 했다. 결국 15번 환자와 함께 식사를 했던 이는 20번 환자가 됐고 정부는 15번 환자의 고발을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외에도 30번 환자는 아직 확진을 받기 전 자가격리를 위해 집안 소독이 이뤄지는 동안 한 언론사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응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성숙치 못한 대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의료진과 정부의 방침을 따르지 않는 일부 환자들만이 아니다.
 

온라인 상에서는 환자나 접촉자의 개인정보가 기재된 문서들이 공유되는가 하면 코로나19와 관련한 거짓 루머도 끊임없이 유포되고 있다. 모두 과도한 공포감만 조장하며 환자의 자진 신고를 막을 수 있기에 방역에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들이다.
 

그 사이 해외방문력도, 기존 확진자와의 연결고리도 없는 환자들이 나오기 시작하며 코로나19의 확산 양상은 변해가고 있다. 더 이상 정부와 병원들의 힘만으로는 코로나19에 대응하기 힘든 시점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과도한 ‘안일함’, 과도한 ‘공포’ 그 어느 쪽도 바람직하지 않다. 개인 위생에 유념하는 것은 물론 과학적인 근거에 기반한 의료진과 정부의 방침을 믿고 따르는 것만이 메르스 사태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제는 정부, 의료계와 함께 국민들도 메르스 사태에서 배운 뼈아픈 교훈을 되새기며 힘을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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