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CCTV 설치 논쟁, 관건은 의료계 본연 역할
한해진 기자
2019.06.12 05:32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한해진 기자] 진화된 줄 알았던 수술실 CCTV 설치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CCTV 설치 의무화법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된 지 일주일 만에 다시 발의됐으며, 경기도 측은 의료원 산하 6개 도립병원에 CCTV 운영을 시작하면서 이를 전국으로 확대할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물론 대한의사협회의 입장은 완강하다. 의협은 최근 “세계적으로 수술실 CCTV 설치를 법으로 의무화한 나라는 전무하다”며 “수술실 CCTV 강제화보다 수술실 출입자 명부 작성, 출입자 지문인식, 수술실 입구 CCTV 설치 등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진료 위축 및 방어수술 조장 ▲의사와 환자 간 신뢰관계 저해 ▲개인정보 침해와 영상 유출 가능성 등을 우려하며 수술실 CCTV 설치를 반대하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또한 전국 수련병원 90여 곳의 전공의 866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하고 “짧은 설문조사 기간에도 현장에 있는 전공의가 많이 참여해 다양한 의견을 줬다. 그만큼 수술실 CCTV 강제화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여론은 곱지 않다. 지난해 한참 뜨거웠던 대리수술 사태를 시작으로 CCTV 설치 주장에 힘이 실리는 결과를 낳는 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탓이다.
 
한 예로 경남 양산의 모 산부인과 의원에서 유도분만 도중 산모와 아이가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가 결국 사망한 사건은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올라갔다.
 
분당차병원에서 신생아를 바닥에 떨어뜨리는 사고를 3년간 은폐해 왔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이로 인해 주치의 의사 2명이 구속되기도 했다.
 
가장 근래에는 서울 강남 某 성형외과에서 사각턱 절개 수술을 받던 중 과다 출혈로 중태에 빠졌다 사망한 환자의 유가족이 수술실 CCTV 증거를 기반으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한 바 있다. 

이에 한국환자단체연합은 “수술실에서 촬영된 CCTV 영상이 아니었다면 환자 사인(死因)은 밝혀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당 환자의 유가족 또한 최근 수술실 CCTV 찬반 토론회에서 “미꾸라지 한 마리가 흙탕물을 만든다. 미꾸라지를 제 식구라고 감싸지 말아달라”고 밝혔다.
 
한편으로 이는 의료계의 CCTV 의무화 반대 입장이 국민 시각에서는 아직도 ‘무조건적인 반대’라고만 인식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협에서 지금까지 다양한 근거를 논리적으로 제시해 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여론이 이처럼 강경한 만큼 정부 입장에서도 의무화를 위한 정책 마련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미 경기도가 지자체 차원의 운영을 시도하고 있는 만큼 전국적인 확대 가능성도 크다.
 
위기가 코앞에 닥쳐 왔지만, 급할수록 정공법을 택해야 한다. 여론에 다시 한 번 귀 기울이는 시간을 갖지 않는다면 아무리 합당한 이유를 대도 CCTV 반대는 의사들의 ‘이기심’이라며 손가락질 받을 수밖에 없다. 의료계가 주로 주장해 왔던 사생활 침해나 개인정보 유출과 같은 논리는 이미 설득력을 잃었다.
 
대한의료법학회 박동진 회장은 "CCTV를 설치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타당하게 설명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결국 의료계 몫“이라고 강조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설문조사에 참여한 전공의들 가운데서도 15%의 응답자는 “의사 선택에 맡길 수 있다면 CCTV 설치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의료계가 먼저 윤리의식을 강화하고, 내부 고발 및 자율징계 활성화를 통해 국민 동의를 얻을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CCTV 논란을 논쟁으로만 끝내려 하지 않고 자성의 계기로 삼을 때 비난의 불씨가 비로소 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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