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와 성추행 경계선에 서 있는 의사들
김성미기자
2017.01.15 12:15 댓글쓰기
[수첩]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은 의사들의 직업적 자유를 옥죄는 대표적인 악법으로 꼽힌다.
 
아청법상 취업제한 조항에 따르면 성범죄로 벌금형 이상의 형이 확정된 경우 10년 동안 의료기관에 취업할 수 없다.
 
지난해 3월 헌법재판소는 해당 조항에 대한 위헌 판결을 내렸다. 범죄의 죄질이나 형량에 상관없이 취업제한 기간을 10년으로 일률 적용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판단이다.
 
여성가족부는 헌재 결정을 받아들여 지난해 11월 아청법 개정안을 내놨다. 의료계는 아연실색했다. 취업제한 기간을 현행 10년에서 최대 30년으로 상향 조정했기 때문이다.
 
개정안은 3년 초과 징역 또는 금고형의 경우 303년 이하 징역 또는 금고형, 치료감호의 경우 15벌금형의 경우 6년의 범위 내에서 법원이 죄의 경중 및 재범 위험성을 고려해 판결 시 취업제한 기간도 정하도록 했다. 이 개정안은 국회 계류 중이다.
 
의료계 반발의 핵심은 의사라는 직업의 특수성이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환자 진료를 위해서는 신체 접촉이 불가피 한데, 이로 인해 환자가 주관적인 수치심과 불쾌감을 느낄 경우 성범죄가 성립돼 억울한 범죄자로 낙인찍힐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진료 도중 여중생을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은 의사 김모(41)씨 사례는 의료계 종사자들의 깊은 우려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20134월 김씨는 인천광역시 한 소아과에서 봉직의로 근무했다. 김씨는 변비 증세를 호소하며 병원을 찾아온 A(당시 14)의 배꼽 주변과 속옷 안쪽을 손으로 누르며 진찰했다.
 
불쾌감과 성적 수치심을 느낀 A양은 담임교사에게 알린 뒤 경찰에 신고했고 김씨는 기소됐다. 그는 "진료행위였을 뿐 성추행은 전혀 없었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1심 재판부는 진료방법이 부적절한 수준을 넘어 피해자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했다며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진료에 필요한 행위였다면 이로 인해 환자가 다소 불쾌감과 수치심을 느꼈다고 하더라도 추행으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2심 재판부는 전문가들의 소견을 들어본 결과 배꼽 주변을 눌러보다가 더 아래쪽인 속옷 안쪽을 눌러본 것은 정상적인 복부촉진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대법원도 2심 판단을 받아들이면서 김씨는 성범죄 의사라는 누명을 벗을 수 있게 됐다.
 
2심에서 김씨가 한 촉진이 정당한 진찰행위로 인정받지 못했다면 김씨는 앞으로 10년 동안 환자를 진료할 수 없었을 것이다. 생존권을 위협 받는 상황이었다.
 
의료인들은 김씨 사례처럼 언제라도 무고한 범죄자로 몰릴 위기에 높여 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민감한 부위를 적극적으로 촉진하는 행위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법 때문에 의사들이 방어진료를 하면 이로 인해 환자들이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여성 환자를 진료할 때는 3m 길이 청진기를 사용하라웃픈글이 의료계에 회자되기도 했다.
 
물론 수면내시경 환자 성추행처럼 진료를 빙자해 성범죄를 저지른 의료인은 마땅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오해로 인해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 기회를 박탈해서는 곤란하다.
 
정당한 진료 행위를 했지만 오해를 받는 경우와 진료를 빙자한 성범죄는 엄격하게 구분돼야 한다.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하는 악결과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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