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항생제 전쟁과 저수가 패러다임
허지윤 기자
2016.08.20 10:10 댓글쓰기

[수첩] 항생제 오남용에 대한 담론은 꽤 오래 진행돼왔다. 지난 2006년 1월 법원은 참여연대가 ‘항생제 처방률 상·하위 요양기관 명단 등을 공개하라’며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낸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등 관련 단체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항생제 문제를 왜 의사만 탓하느냐”는 목소리와 함께 “현실적으로 항생제 적정처방이 쉽지 않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최근 정부는 다시 ‘항생제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정부가 확정한 ‘항생제 내성 관리대책’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44%인 감기 항생제 처방률을 2020년까지 절반으로 낮추고, 전체적인 사용량도 현재보다 20% 줄인다는 방침이다.


의료기관의 항생제 적정 사용 유도를 위해 진료비 차등 지급 폭을 넓히고 의료기관 간 환자 이동 시 내성균 정보를 공유하는 시스템도 만든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동물에 대한 항생제 과다 사용 방지책도 마련하고, 대국민 캠페인도 모색키로 했다.


정부 로드맵은 꽤 훌륭하지만 대한민국이 ‘항생제 남용 국가’라는 오명을 쓰게 되기까지 어떠한 패러다임이 작동했는지 등 과거로부터의 행적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병원은 더 많은 환자를 유치해야 적자를 면할 수 있고, 환자는 감기가 더 잘 낫는다는 병원을 찾아다닌다. 의사는 환자에게 치료를 잘한다는 인식을 남겨야 하고 결국 보다 강한 약을 처방한다.’


의료기관들이 박리다매식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밖에 없는 ‘저수가 시스템’도 항생제 남용을 부추긴 요인 중 하나라는 지적이다.


즉 항생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사의 적절한 처방이 관건이지만 현행 저수가 체제는 최대한 많은 환자를 봐야 적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구조다.


일선 의료현장에서 항생제가 필요 없는 바이러스성 질환과 항생제가 필요한 세균 감염을 빠른 시간 내에 명확하게 구분하는 게 쉽지 않은 문제도 있다.


한 개원의는 “대다수 의원에선 세균배양검사를 할 여건조차 갖춰져 있지 않다. 기간도 일주일 이상 걸려 검사의 의미가 없다. 항생제 사용량을 2020년까지 절반으로 줄인다는 것은 현 의료 현실에선 다분히 교과서적인 발상일 뿐”이라고 말했다.


한림대학교 의과대학 엄중식 교수는 “감기만 해도 충분히 시간을 들여 감별하고 항생제 처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며 “낮은 의료수가로 조성된 진료환경에서는 언감생심”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병‧의원을 압박하면 이를 피하기 위해 의사들이 진단코드를 바꿔 항생제를 처방하는 풍선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항생제 사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과 함께 의료 패러다임을 바꿀 체계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국민 보건을 위한 항생제 내성 관리는 정부뿐만 아니라 의료계와 국민의 실천이 함께 이뤄져야 제대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가 현실적으로 적절한 처방을 내릴 수 있는 진료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투자와 보상, 환자의 인식 개선과 의료 지시 준수 노력 역시 병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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