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얼굴에 예기치 않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면, 평소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과 계획이 무너지고 당혹스러움에 휩싸이게 된다. 누구도 차분하게 이성을 유지하며 얼굴이 망가진 상황을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이러한 경우 대부분의 환자는 정서적 패닉 상태에서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되며,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광고나 주변인의 조언에 맹목적으로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70% 이상 환자는 자연적으로 회복되며, 초기 당혹감을 이용한 상술에 현혹되었음을 뒤늦게 깨닫는 경우가 많다.
"안면신경마비, 환자 불안감 이용 과장광고 많고 다른 질환보다 비과학적 치료법 유독 많다"
안면신경마비는 환자 불안감을 이용한 과장 광고로 인해 다른 질환보다 비과학적이고 근거 없는 치료법이 유독 많은 분야다. 안면신경마비는 이비인후과 진료가 필요한 질환이다.
갑자기 또는 서서히 얼굴 한쪽의 눈이 잘 감기지 않거나 입이 비뚤어지는 증상이 나타날 경우, 일반인은 대처 방법을 몰라 당황할 수 있다.
찬바람을 많이 맞아서 생긴 현상으로 가볍게 여기거나, 심지어 뇌졸중이 아닌지 걱정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안면마비 치료 전문가들에 따르면, 일반적인 상식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최근 세계 안면신경 심포지엄이 한국에서 열렸는데 국내 안면마비 치료 수준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면마비가 발생했을 때 어떤 병원을 찾아야 하는지, 어떤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는 국민이 여전히 많다.
"국내에서는 年 9만~10만명의 안면마비 환자 발생 추정"
2014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매년 약 9만~10만 명의 안면마비 환자가 발생한다. 이 가운데 67%는 헤르페스 바이러스나 대상포진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하는 벨마비 및 람세이 헌트 증후군이고 13%는 귀 주변을 포함한 두부 외상이 원인이다.
또 10%는 귀나 침샘의 종양 및 염증 때문이며, 나머지 10%는 선천성, 의인성, 혹은 중추성 안면마비로 분류된다. 즉, 안면마비의 90% 이상은 귀 안이나 귀 주변의 질환과 연관돼 있으며, 찬바람이나 뇌졸중이 주요 원인이 아니라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안면마비 증상이 나타나면 가장 먼저 귀와 관련된 이비인후과를 방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한다. 대부분의 OECD 국가에서도 안면마비 클리닉이 이비인후과 내에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또 치료 시기별로 진료과가 분업화돼 있다. 급성기에는 이비인후과에서 진단과 치료를 진행하고, 만성화된 경우에는 성형외과에서 안면 재건을 하거나 재활의학과에서 재활 치료를 받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경로다.
안면신경마비의 정확한 명칭은 ‘Facial nerve paralysis’ 혹은 ‘Facial palsy’로 안면신경 마비로 인해 한쪽 안면근육이 마비되는 증상을 의미한다. 과거 한자어 표현인 ‘구안와사(口眼喎斜)’나 ‘와사풍(喎斜風)’은 일본어 잔재로 시대에 맞지 않는 용어다.
현재 일본에서도 ‘안면신경마비’라는 표현으로 통일해 사용 중이다. 이러한 부적절한 용어는 뇌졸중과 혼동을 유발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안면신경마비에도 치료 골든타임이 존재한다. 회복 가능성은 증상의 중증도와 치료 시기에 따라 달라진다. 신경이 부어오르면서 측두골 내부의 좁은 공간에서 압박을 받게 되고, 이 부종이 2~3일 이상 지속되면 신경 변성이 진행될 수 있다.
"부종이 변성 일어나기 전(前) 조기 치료 필수, 시기 놓치면 환자 30%는 완전 회복 힘들어"
따라서 변성이 일어나기 전에 부종과 압박을 줄이는 조기 치료가 필수다. 일반적으로 증상 발생 후 3일 이내에 스테로이드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권장된다. 치료 시기를 놓치면 안면신경마비 환자의 약 30%는 완전 회복되지 않으며, 이 중 절반은 치료 시기를 놓친 경우다.
대표적인 후유증으로는 연합운동(Synkinesis)과 안면근육의 위축 및 처짐 등이 있다. 연합운동이란 특정 동작을 할 때 원하지 않는 다른 안면 부위도 함께 움직이는 현상이다.
과거에는 이러한 후유증을 치료할 방법이 부족했지만, 최근에는 안면 재활 치료 등을 통해 근육 경직을 완화하고 안면 움직임을 회복할 수 있는 다양한 치료법이 개발돼 있다.
이러한 치료에도 효과가 없을 경우, 비과학적이고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보다는 세계적 수준의 한국 의술을 활용한 안면 재건술을 고려하는 것이 권장된다.
안면신경마비의 감별진단도 중요하다. 전체 안면마비 환자의 약 25%는 벨마비나 대상포진이 아닌 다른 질환이 원인이다.
대표적 원인으로는 만성 중이염, 청신경 종양, 안면신경초종, 이하선 종양 등이 있으며, 이러한 질환은 초기 증상이 뚜렷하지 않아 조기 발견이 어렵다. 따라서 안면마비 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반드시 정확한 감별진단을 통해 원인을 파악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안면마비가 발생했을 때 환자들이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검사를 받아야 하며, 어떤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요구된다. 이비인후과 전문의들은 정확한 진단과 과학적인 치료를 제공함으로써, 환자들이 비과학적인 광고나 민간요법에 휘둘리지 않도록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안면신경마비로 인한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안면장애 유병률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국내 안면신경연구회는 안면마비의 올바른 치료와 재활을 위해 지속적으로 연구와 교육을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도 최선을 다 할 것임을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