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다 사망' 수년째 지속 암환자들 절규
백성주 데일리메디 팀장
2020.07.17 15:05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백성주기자] “한국은 부자나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 협상을 앞두고 꺼낸 말이다. “부유한 나라는 훨씬 더 많이 지불해야 한다는 압박의 의미를 담았다.
 
글로벌 제약사의 약가 협상 과정에서도 이와 유사한 논리가 나오고 있다. 의료시스템이 잘 갖춰진 대한민국 의약품 가격이 다른 국가의 직접 비교 대상이 되면서 글로벌제약사의 공세는 더욱 심화됐다.
 
캐나다, 중국 등에선 국내 공급되는 신약 가격을 약가 협상결정시 자료로 사용하거나 직접 반영중이다. 글로벌 본사의 높아진 관심 덕분에 대관담당자의 부담과 결과에 대한 본사의 압박 수위 역시 커졌다.
 
항암 신약 등이 고가라는 이유로 건강보험 급여 등재에 실패 또는 제외되면서 코리아 패싱도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까다로운 급여 절차 때문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데다 가격마저 낮추려드니 글로벌 제약사들이 한국에 신약 출시를 아예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그 피해는 암 등 중증 환자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당연한 일상이 됐지만 암환자와 가족들이 한 건물 앞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항암제의 높은 가격을 고수하고 있는 다국적제약사를 압박한다는 취지였다.
 
이들은 면역항암제 건보 급여기준 확대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암환자들이 생명 연장의 기회를 잃고 죽어가고 있다. 면역항암제를 투여하면 죽지 않을 수 있는데도 높은 약값을 받으려는 제약사와 건강보험 재정을 절약하려는 정부가 양보 없이 대치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청와대국민청원에서도 항암제 급여화를 촉구하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폐암 투병중인 아버지 대신 글을 올린 청원자 A씨는 아빠를 살릴 수만 있다면 약값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5개월 동안 항암치료비는 1억이 넘는다. 모아뒀던 돈은 다 쓰시고 집을 팔고 전세를 알아보고 있다고 사연을 전했다.
 
최근 암질환심의위원회에선 비소폐포폐암, 신장암 등에 사용하는 면역항암제 옵디보(BMS·오노)와 키트루다(MSD) 급여기준 확대를 심의됐다. 하지만 가격 문제로 다시 무산됐다.
 
수년째 정부와 제약사 논의가 제자리걸음이자 환자들 사이에선 위기의식이 퍼지고 있다. 고가 신약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다.
 
국내 항암제에 대한 접근성은 그리 좋지 못하다. 일본의 경우 선() 급여, () 평가의 네거티브 제도를 선택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선 반대의 포지티브 제도를 적용해 혁신 신약의 건보적용이 3년 이상 소요되기도 한다.
 
정부의 가격협상력을 높이고 제약사에 대해 낮은 마진 요구는 공적인 건보재정을 보전하기 위한 방편이 될 순 있지만 말기 암환자들 입장에서는 피를 말리는 일이다. 의료비 폭탄으로 인한 메디컬 푸어사례도 빈번해졌다.

강진형 교수(서울성모병원 혈액종양내과)치료가 절박한 환자들에는 결국 어떤 대안을 만들지가 당면과제인데, 그런 측면에서 사후평가제도는 반드시 필요한 제도라며 경제성 평가에서도 사후평가가 필요한 것은 일단 제도를 간소화해서 등재기간을 단축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얘기인 즉, 암환자의 생존율을 두고 약의 실효성을 즉각 평가하기란 어렵기 때문에 질환의 시급성을 고려, 일단 선별등재한 후 비용효과를 평가해서 효과가 없다면 약값을 깎아나가면 된다는 설명이다.
 
면역항암제의 경우 이미 6개 제품이 국내 허가됐다. 하지만 폐암과 흑색종, 방광암을 제외한 나머지 암종에서 계속 건보적용이 미뤄지고 있다.
 
기존 항암요법 대비 드라마틱한 효능을 보이고 있는 키트루다는 지난 20173월 우리나라에 들어왔으나 2차 치료제로만 건강보험 혜택이 주어진다.
 
애타는 암환자들의 요구로 제약사가 첫 치료에 급여화를 신청했지만 2년 넘게 감감무소식이다. 키트루다의 1년 약값은 1억원에 달하지만 보험이 되면 연간 500만원 수준이 된다.
 
한정된 건보 재정으로 비용 효과성과 형평성을 따질 수밖에 없는 정부 입장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생명의 촌각을 다투는 중증 환자들은 당장 필요한 약을 쓸 수 없는 현실에 놓여 있다.
 
최근 한국의 신약 접근성은 OECD 31개국 가운데 19위에 그쳤다. 막대한 비용을 쏟아가며 개발된 신약의 가치 역시 인정받아야 한다는 주장과 맞물리면서 정부가 재정분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앞으로 고가 약들은 더 나올텐데 건강보험 재정 문제로만, 제약사의 이윤 문제로만 생각한다면 향후 신약에 대한 접근성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K-방역으로 세계에 이름을 알린 대한민국 의료 당사자인 국민이 재정 당국과 제약사의 힘겨루기로 피해 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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