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제기 맘모톰 소송 ‘각하’ 판결 의미
정혜승 변호사(법무법인 반우)
2019.12.20 16:57 댓글쓰기

지난 2012년 임의비급여 진료행위가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결 이후 보험사들은 해당 가능성이 있는 행위들에 주목해 신경외과, 정형외과, 비뇨의학과 등을 막론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처음에는 의료기관이 임의비급여 진료행위를 하는 바람에 보험금을 지급하게 됐고, 이것은 의료기관의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라는 취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6년 판결에서 의료기관은 환자와 진료계약을 체결했을 뿐 보험사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는 점을 들어 의료기관의 불법행위책임을 부정했다.


그러자 보험사들은 이번 맘모톰 소송과 같이 ‘채권자대위권’에 근거한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채권자 대위권이란 채권자 A가 채무자 B에게 받을 돈이 있는데, 마침 채무자 B도 제3 채무자 C에게 받을 돈이 있을 때, A가 B를 건너뛰고 직접 C에게 이행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다.


언뜻 보면 합리적인 것 같지만 민법은 A가 B에 대한 권리를 보전하기 위한 때에만 제한적으로 소제기가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민법 제404조 제1항).


아무리 B가 C에게 받을 돈이 있어도 B가 지금은 안 받고 싶을 수도 있고, 감액해 주고 싶을 수도 있으며, C에게 받은 돈을 A가 아닌 다른 채권자에게 먼저 줘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A가 B의 의사를 무시하고 함부로 C에게 직접 청구를 하게 되면 B와 C의 자유로운 의사에 모두 간섭하는 셈이 되거나 B의 다른 채권자들을 해할 수도 있다.


따라서 보통은 B가 빈털터리인데 뻔히 C에게서 돈을 받아와 A에게 갚으면 될 것을 B가 가만히 보고만 있을 때 혹은 A-B와 B-C간 채권이 같은 사실관계에서 발생한 경우 채권자 대위권을 행사하게 된다.


이 사건에서 A는 보험사, B는 환자, C는 의료기관이다. A는 B가 맘모톰으로 조직 절제술을 하면 약관상 보험금을 줄 수 없는데도 주고 말았다.


약관 및 진료내용을 충분히 검토 못한 A의 과실이다. 그런데 그 금액이 꽤나 쌓였다. 그런데 A 생각에 C가 임의비급여 진료를 한 셈이므로 B가 C에게 진료비 반환을 요구해야 할 것 같다.


그러니 B를 대신해서 C에게 진료비 반환청구를 하면 자신이 질못 지급한 보험금을 보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언뜻 보험사측 주장만 들으면 마치 의료기관이 해서는 안되는 행위를 하고 그 대가를 받았기 때문에 보험사가 이를 대위하는 게 당연해 보일 수도 있다.


실제 충분히 심리를 거치지 못한 몇몇 사건에서는 보험사의 채권자대위청구를 인용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른 건강보험 환수처분 논리를 사기업인 보험사가 그대로 가져온 것에 불과했다.


이번 판결 재판부는 바로 이 점을 간파해 보험사의 청구를 무력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르면 전 국민이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고 모든 의료기관이 요양기관으로 지정돼 있다. 그리고 요양기관은 환자를 진료한 대가를 환자로부터 직접 받기도 하지만 상당 부분을 보험자인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지급받는다.


때문에 이 3자는 밀접한 관련이 있고 요양기관이 부당한 이익을 얻었을 때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보험자가 직접 환수처분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보험사는 사정이 다르다. 환자–의료기관의 관계와 환자–보험사의 관계는 단절돼 있다. 게다가 이 때 의료기관의 정체성은 국민건강보험법상 ‘요양기관’이 아닌 ‘의료기관’이다.


환자와 자유롭게 진료계약을 체결한 당사자인 것이다. 보험사는 이 사건에서 건보공단과 의료기관의 관계를 들며 직접 청구가 가능하다는 취지로 어필했지만 사실과 다른 주장이므로 별 소득은 없었다.


또한 채권자대위소송이 성립하려면 다음 3개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 두 개의 채권이 밀접한 연관이 있어야 한다.


둘째, 남(환자)의 채권을 대신 행사해야만 자신(보험회사)의 채권이 현실적으로 유효, 적절하게 확보된다는 사정(즉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는 취지)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대신 행사하는 남(환자)의 자유로운 재산관리행위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 되지 말아야 한다.


재판부는 위와 같은 점을 고려해 보험사에게 왜 환자에게 직접 보험금의 반환을 구하지 않고 의료기관에게 대위청구를 하는지 이유를 소명하라고 거듭 요구했다.


이 사건 판결은 첫번째 요건까지는 갖췄다고 봤다. 환자가 의료기관에 지급한 진료비에 기반하여 보험금이 지급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번째 요건부터는 인정하지 않았다. 이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보험회사가 환자에게 직접 권리행사를 할 수 없는 사정이 있어야 한다.


대표적으로 환자가 빈털터리라서 청구해도 돈을 못 받을 것 같을 때 환자가 받을 돈이 있다면 그것을 대신 청구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보험사는 환자에게 일일이 소송을 하기 번거롭다는 점, 나아가 환자를 상대로 다수의 소를 제기할 경우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는다는 점 등을 제시하며 해당 요건을 갖췄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단지 번거롭다는 사정만으로 남의 채권을 대신 행사할 사정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 사정은 스스로 잘못 보험금을 지급해 초래한 것이다.


또한, 보험사가 잘못 지급한 보험금에 대한 청구 과정에서 제재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여러 환자에게 청구해야 할 것을 묶어서 하나로 대위청구를 한다면 오히려 제재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법원을 이용한 셈이 된다.


법원도 이 점에 주목해 두번째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법원은 세번째 요건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 부분이 의미가 깊은데, 과연 환자들이 의료기관에게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할 것인지 여부 자체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이 소송을 진행하며 이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만약 상대방의 주장대로 임의비급여 진료행위가 위법하다 하더라도 의료기관은 실제 들어간 비용에 대해 회수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의료기관이 사람을 치료하고자 진료한 대가를 과연 얼마나 불법하다고 볼 수 있을지, 건강보험정책 상 진료비를 수수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별론으로 하자.


다만 의료기관이 실제 들인 비용만큼 환자에게 ‘부당이득반환청구’조차 못하게 할 정도의 불법성을 띠는지는 다시 한 번 살펴봐야 하는 부분이다.


법원도 환자가 의료기관을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한다는 보장도 없는데 보험사가 이 환자를 대신해 청구한다는 것 자체가 환자들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에 반하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판결문에 담기지는 않았지만 이 사건에서는 보험사가 환자에게 보험금을 반환받을 수는 있는지도 다퉜다.


임의비급여’라는 용어도 모를 환자들이 그 행위에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는다는 약관의 존재를 과연 알고 있는지, 이를 얼마나 이해하고 보험가입을 했는지도 의문이기 때문이다.


만약 보험사가 환자에게 보험금 반환청구를 하더라도 환자는 얼마든지 약관에 대한 명시설명이 부족했다는 이유로 이를 다퉈볼 수 있다.


게다가 보험사는 일반인도 아니고 거대 영리기업인데 지급해서는 안되는 보험금을 장기간, 다수에게 만연히 지급해왔다는 사실도 환자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따져볼 만한 사정이다.


일각에서는 보험사가 환자 동의를 얻어 다시 소를 제기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설령 보험사가 환자 동의를 받아온다고 하더라도 의료기관이 환자에게 전혀 비용청구를 할 수 없는지, 환자가 과연 보험사에 보험금을 반환해야 하는지 등을 놓고 공방전이 예상된다.


즉, 동의를 받아온다고 이러한 소송이 무조건 가능한 것은 아니다. 부디 보험사도 정확하게 업무처리를 해 본인들의 손해를 예방하고, 단지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법원 또는 수사기관을 이용하는 일이 없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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