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 수가·정책 이어 부당한 법원 판결 직면"
장성구 前 대한의학회장
2023.01.09 05:32 댓글쓰기

[특별기고] 대한민국 의사들은 전 세계 어느 나라 의사들보다 바쁘다. 이미 마음과 육신이 모두 지칠 대로 지쳐가고 있다. 


천인단애(千仞斷崖)에 외롭게 매달려 모진 풍상을 견디어 내야하는 운명이다. 흔히 말하기를 의사는 환자를 열심히 돌보는 것을 천직으로 삼는다고 한다. 


"패권적 법(法) 횡포, 맞설 수 밖에 없는 현실 답답"


그러나 우리나라 의사들은 환자를 열심히 진료하는 것만으로는 하늘이 내려준 천명을 다 할 수 없다. 


깊은 함정으로 추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그래서 허구한 날 삭발을 하고,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며 때로는 수만 명이 모여 규탄대회를 열어야 한다. 


다른 선진국 의사들은 전혀 겪지 않을 황당한 현실과 투쟁을 벌려야하는 게 한국 의사들의 척박한 운명이다. 


의사들은 메르스, 사스, 코로나19와 같은 바이러스 대유행에 온 몸을 던지며 진료현장에서 사투를 벌였다. 


반면 이 사회의 음습한 곳에서는 무당 굿판과 같은 황당한 행위를 치료법이라고 내밀며 국민들을 현혹하는 ‘샤머니즘’과도 싸워야하는 게 대한민국 의사들이다.


이들의 절규는 의사 스스로만을 위한 게 아니고 환자와 국민 그리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  지키기 위한 전문가로서의 몸부림이다. 


의사들은 추악한 권력자들에 의한 악법 제정도 막아 내야한다. 뿐만 아니라 사회정의와 상식,  합리적 판단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법적 규제와 판결에 항거해야 한다. 


의사들이 그들의 본분에 충실히 전념할 수 없다면 결국 가장 큰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국민들이 안쓰럽기 때문에 그들을 대신해 의사들은 사회부조리, 그리고 법의 패권적 횡포와 싸울 수 밖에 없다.


개탄스런 한국 의사들 척박한 운명, 삭발투쟁과 피켓시위로 내모는 규제 정책


아직도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탈진된 몸을 채 추수리지도 못한 2022년 해넘이에 의사들은 허망한 소식에 눈과 귀를 의심했다. 


대법원에 상고 된지 10년이나 된 사건에 대해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해괴하고 망동된 판결(2022년 12월 20일)을 접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과연 문명국을 지향하는 나라인지 의심스러워 헛웃음이 난다. 의사들은 물론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갖은 모든 국민들을 망연자실하게 만든 판결이다.


초음파 검사를 수 십 차례 실시하고도 결국 환자를 곤경에 빠뜨린 한의사의 의료법 위반에 관한 원심을 파기한 것이다.


언론에 보도 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논리를 간략히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한의사인 피고인이 초음파 진단기기를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한의사의 ‘면허된 것 이외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봄이 타당하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취지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 한의사가 한방의료행위를 하면서 그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이를 사용하는 게 의료행위에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 초음파 투입에 따라 인체 내에서 어떠한 생화학적 반응이나 조직의 특성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세포막 손상, 염색체 손상, 산화, 중합반응 등으로 인한 부작용이 보고된 바 없으며, 초음파 진단기기는 임산부나 태아를 상대로도 안전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필자는 이 판결문에 경악을 금할 수 없고 절망한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대한민국 대법관들 식견이 이 정도 밖에 안되는 구나’라는 실망 또한 감출 길이 없었다.


판결 내용은 억지로 구색을 갖추기 위한 궁여지책 변명과 핑계만 가득하다. 10년이라는 세월을 끌어온 사건에 대한 판결이라고 하기에는 명쾌한 점을 찾아볼 수 없다.


법에 무지한 필자지만 논리적 공박을 벌일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된다. 판결문이라기 보다 괴변에 가까운 졸렬하고 비이성적인 내용의 나열일 뿐이다. 정치가들의 말장난과 흡사하다.


마치 법의 판결 속에 숨은 샤머니즘(shamanism)의 꿈틀거림이라고 말하고 싶다.


경악스러운 대법원 판결, 10년 걸린 결론은 '절망' 그 자체


이 판결문을 보면서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2008년 10월 우리나라를 방문한 토어번 멜치어(Torben Melchior) 덴마크 대법원장의 인터뷰 내용이다. 


덴마크 국민들은 84%가 법원 판결에 절대 승복한다. 특히 대법원 판결에는 90% 이상의 국민들이 신뢰를 보낸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현황을 비교하면 낯이 뜨거워 얼굴을 들지 못할 지경이다. 덴마크 국민들이 법원의 판결에 이렇게 높은 신뢰를 보내는 이유는 간단하다고 한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에 바탕을 둔 합법적 판단과 떳떳하고 양심적인 판결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란다. 너무도 당연한 일인데 왜 이렇게 한없이 부러울까? 


이번 대법원의 판결을 보면서 의사들과 판사(이번에 판결한 판사분들과 유사한 판사)의 생각사이에 엄청난 괴리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법관의 판결이란 법에 근거해 내리는 것이다. 그러나 판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사회적인 정의와 정확한 지식에 근거한 법적인 잣대와 양심적인 판단이어야 국민들이 승복한다. 


우리나라 사회 질서와 법체계를 이렇게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다. 우리나라 법은 떼 법에 지배를 받고, 헌법은 국민감정법의 지배를 받는다. 


자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추구하는 나라의 현상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참으로 부끄러운 모습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법조계의 깊은 각성이 필요할 듯하다.


법조계 사람들은 법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헌법의 한 조문을 구현하기 위해 입법부에서 법률을 제정하고, 대통령은 이를 공포한다. 


그리고 이 법을 시행하기 위해 시행령이라는 규정을 만든다는 사실을 법조인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이것은 합리적인 과정이 전제된 당연한 순리와 정연한 논리의 철학이 스며들어 있는 반드시 지켜야할 단계임을 의미한다.


덴마크 국민들, 법원 신뢰대한민국 법조계 깊은 각성 필요


그러면 환자 진료와 치료행위란 무엇인가? 여기에는 절대 ‘꿩 잡는 게 매다’ 또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어설픈 논리는 적용할 수 없다. 


왜냐 하면 의학적인 행위는 사람의 생명과 건강이 담보돼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의학은 동적이며 침습적인 행위가 뒤따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것이 바로 과학적 근거와 합리적인 사고가 바탕을 이루고 있는 현대의학이다. 현대 임상의학은 첨단 의생명과학 발전의 최종 종착점이며 꽃이다. 


이 엄청난 대원칙이 엄정하게 지켜져 왔기 때문에 의학은 무서울 정도의 발전을 이뤄왔다. 이제 나노의학과 유전체의학이 이미 임상적으로 환자 치료에 적용되고 있다.


대법원의 판결 직후 한의사 단체는 앞으로 초음파는 물론 CT, MRI를 사용하겠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대한민국 의료의 막장을 보는 듯하다. 


국민 건강권 사수가 국가의 사명임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대법원 판결이라는 허술한 법적 빌미로 국민들이 언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다면 이는 결코 정의로운 나라가 아니다.


법원 판결 중에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내용을 본다. ‘어떤 진단 검사를 하는 게 환자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기 때문에 의사 아닌 사람도 그 검사를 할 수 있다’.


이것은 의학적인 지식이 없는 환자의 인격을 무시하는 생각뿐만 아니라 법원이 나서서 환자의 인격을 난도질 하는 것과 진배없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의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무고한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일을 부추긴 것이다.


현대의학의 진단기기는 질병의 현대 의학적 개념과 정의를 바탕으로 개발한 것이다. 의사가 환자를 대상으로 검사를 할 때는 그 결과를 판단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 판단 결과를 바탕으로 어떤 추가적인 검사를 할 것인지 결정할 능력도 필요하다. 계속되는 단계적인 검사와 그 결과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치료대책을 세워 치료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단을 위한 검사가 환자에게 위해성 여부가 검사를 수행할 사람의 자격을 결정하는 게 아니다. 그 검사 결과의 의학적 판단 여부가 기준이 돼야 한다.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대책을 세우고 치료에 임하는 것은 일련의 연속된 과정이다. 


그러므로 어떤 한 종류의 검사가 인체에 위해를 발생시키지 않기 때문에 의사 아닌 사람도 수행할 수 있다는 논리는 절대 성립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 검사의 행위자체가 위해하지 않다고 해도 판단을 잘못하면 환자는 생명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만일 질병의 진단과 치료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어떤 검사를 단편적으로 하고 판단도 제대로 못했다면 그것은 환자를 희롱하고 인권을 짓밟는 행위다.


법원이 환자 인권 난도질 상황대한민국 고품격 의료 실현 요원


필자도 지금까지 수만 명의 환자에게 복부 초음파를 시행했다. 그러나 복부초음파에 나타난  수 많은 장기들의 영상 중에 내가 판단할 수 있는 전문 영역만 관찰하고 결론을 낸다. 


그러나 만일 내 판단이 미심적거나 다른 장기의 상황 판단이 중요하게 생각되면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도움을 받는다. 


의사는 환자를 대할 때 항상 겸손하고 잘못 판단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그렇게 배웠다. 


의사는 ‘나도 모자랄 수 있는 사람이다.’ 라는 것을 항상 생각하고 있어야 환자들이 피해를 받지 않는다. 이것은 의사의 실천적 직업윤리와 철학 중 하나다.


의사도 사람인지라 진료 중에 환자에 대한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갈등과 고민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은사님들께 배운 대로, 그리고 제자들에게 가르친 대로 심사숙고하고, 최종적으로 결정한 내용을 환자나 보호자와 상의한다. 


이러한 결정 과정 핵심은 ‘이 환자가 나라면, 이 환자가 내 형제라면, 이 환자가 내 부모라면 나는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이 동기가 된다.


법적으로 금지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 생명을 위협하는 일도 법적으로 허용한다는 판결은 무책임하기 이를 데 없는 불법한 짓이다. 


법조문은 읽었는지 몰라도 사람과 인간 사회는 바라보지 못한 행위다. 대법원의 이러한 판결이 정의롭고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할 국민들이 얼마나 있을까 묻고 싶다. 


환자와 국민들은 의사와 국가사회의 제도를 통해 질병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법률적 의미와 법 적용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40년 이상을 환자 진료에 전념해온 전문가 식견에는 황당하고 무책임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고품격 의료 실현‘이라는 대한민국 꿈을 좌절시키는 패악이다. 


법 적용과 판결이 이렇게 무모한 방향으로 진행되면 과연 대한민국은 정의로운 문화국가가 될 수 있을까? 수십 년을 의학 발전을 위해 몸바쳐온 사람 중 한명으로서 회한(悔恨)의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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