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국민은 누구나 필수의료 보장받아야 한다"
임준 서울시립대학교 도시보건대학원 교수
2022.10.12 06:12 댓글쓰기

[특별기고 3] 2022년 7월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진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국내 필수의료 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도 필수의료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어디까지를 필수의료로 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긴 하지만 정부는 제2차 공공보건의료기본계획에서 국민 생명과 안전에 관한 보건의료 영역을 필수의료로 규정하고 이를 보편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전방위적인 대책을 제시한 바 있다.  


일반적으로 의료는 공급자 독점 및 소비자 무지 등의 특성으로 시장 실패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며 모든 국민이 보편적으로 보장받아야 할 기본권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의료서비스에 소요되는 비용 조달과 실제 의료서비스 공급이 공공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의료서비스에 소요되는 경상비용 조달이 건강보험을 통해 공공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서비스 공급은 그렇지 못해 시장 원리에 의해 배분이 이뤄지고 있다. 


"시장 구매력 크지 않은 지역이나 의료수익 적은 필수의료는 서비스 공급 원할하지 못해"


그 결과, 시장 구매력이 크지 않은 지역이나 의료수익이 나지 않는 필수의료 분야엔 의료서비스 공급이 원할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응급, 외상, 심뇌혈관질환, 분만, 신생아 등 필수중증의료 분야는 투자 비용이 큰 반면 인구가 적은 지역에선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없어 상당수 지역에서 의료공백이 발생하고 있다. 급기야 일부 분야는 서울 한복판에서도 공백이 초래되는 현상이 일어나는 실정이다.


어느 지역에 살 든 아프면 제 때 좋은 치료를 받고 질병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공동체가 성립할 수 있는 기반이면서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소한의 필수의료 분야, 더 좁게는 필수중증의료 분야는 기본권으로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필수중증의료를 담당할 의료 자원은 수도권에 집중돼 있고, 수도권과 비수도권, 도시와 지방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의료인력 문제는 더 심각해서 수도권과 대도시가 아니면 병원서 필수의료를 담당할 의사와 간호사를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만큼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지역 간 필수의료서비스 공급 차이로 건강 차등이 발생한다고 단정하기 어렵지만 밀접하게 관련돼 있음을 부정하기도 어렵다. 


치료가능사망률이라는 개념이 있다. 기본적인 필수의료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지 않아서 막을 수 있는 사망을 나타낸 개념이다.


일반적인 사망률 격차도 서울과 지방 간 큰데 치료가능사망률 격차는 더 크다. 전국을 의료이용 양상에 따라 70여 개 중진료권으로 구분한 후 입원사망비를 분석해보면, 주로 농어촌 지역 중진료권에서 높게 나타난다. 양질의 종합병원이 없기 때문에 응급상황 대처 능력이 부족한 것이 주요한 이유다. 


정부는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2021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제2차 공공보건의료기본계획을 수립, 국민 생명과 안전에 관한 필수의료를 보편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각 시도 소재 국립대학교병원 등을 권역 책임의료기관으로 지정하고, 다른 상급종합병원과 필수중증의료 분야 협력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한 시도가 그 중 하나다. 


전국 시도 내 70개 중진료권엔 지역 책임의료기관을 지정해서 중진료권 내 다른 보건의료 자원 등과 함께 자체 충족적인 보건의료체계를 구축해 양질의 필수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수도권과 대도시 중진료권은 가능하지만 농어촌 중진료권은 필수의료 인프라 절대 부족"


그러나 아직까지 실제적인 변화를 가져오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수도권과 대도시 중진료권은 이미 양질의 보건의료자원을 확보하고 있기에 책임의료기관을 지정하고 의료자원 간 연계, 조정을 강화하면 필수의료 공백을 해소할 수 있다.


그렇지만 농어촌 중진료권은 연계 조정만으로 어렵다. 왜냐하면 일정 규모 양질의 종합병원 등과 같은 기본적인 필수의료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공공병원 확충을 포함한 정부의 대대적인 필수의료 인프라 확충이 요구되지만, 아직까지 정책수가를 가산해주는 정도에 머물러 실효성이 있는지 의구심이 들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필수의료 인력 부족 문제는 발등에 떨어진 불인데, 아직까지 이렇다할만한 정부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시도 권역책임의료기관 역할을 담당하는 국립대학교병원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지역 간 불균형적인 의료인력 분포를 해소하기 위해 전문의 정원과 전공의 수련 등 필수의료인력 관리 정책을 원점에서 검토해야 한다.


또한 필수의료를 담당할 의사, 간호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에 양성 계획도 필요하다. 국립대 의대 중 학생 정원이 적고 지방에 소재한 의대를 중심으로 정원 확대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립중앙의료원을 필두로 한 국가중앙병원 역할 강화도 국가 수준의 필수의료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중요하다. 이를 뒷받침할 인력 양성 기관으로 국립의학전문대학원 설립도 속도를 내야 한다.


"필수의료 수행 민간의료기관 중요하지만 공공병원 역할 훨씬 더 중요"


필수의료 수행에서 민간의료기관 역할이 중요하지만, 민간의료기관이 공익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필수의료 지역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공공병원 역할 강화도 매우 중요한 과제다. 


대부분 지역에서 거점병원 역할을 하는 대표적 공공병원인 지방의료원이 지역에서 양질의 필수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다른 민간의료기관과 필수의료협력체계를 주도해나가려면 대대적인 인프라 확대와 역량 강화가 이뤄져야 한다.


또한 국가 전체적으로 공공병원 비중이 매우 낮은 상황에서 국립중앙의료원, 지방의료원 등 공공병원이 별개로 활동할 것이 아니라 강력한 공공병원협력체계를 구축해서 활동했을 때 실질적인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역 간 필수의료 격차 문제는 가장 기본적인 인권의 문제이자 저출산 고령화 직격탄을 맞고 있는 지역 존망이 걸린 문제다.


지역 소멸이 회자되는 지역은 대부분 필수의료 인프라가 취약한 지역이다. 지역 소멸 문제는 일부 SOC 투자를 늘린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역에 사는 국민이 행복하게 삶을 누릴 수 있는 정주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당연히 필수의료 보장은 그 중에서 핵심적인 과제다.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당연한 권리이자 지역 균형 발전을 가능케 할 필수의료체계 구축과 공공병원 역량 강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필수의료 인프라 부족으로 인한 안타까운 사망 사건은 끊임없이 발생해왔다. 지역 최고 의료기관인 국립대학교병원에서 필수의료를 담당할 당직 의사가 없어 사망에 이르는 사건은 언제 발생해도 이상한 사건이 아닌 상황이 됐다.


이런 문제가 터질 때마다 국민적인 공분이 일어나고 정부 당국은 여론에 밀려 이런 저런 땜질식 처방을 지속하는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돼야 하나?


지금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미 정부 당국도 파악하고 있는 근본적인 의료체계에 대한 대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어쩌면 해결 불능 상태에 빠지지 않고 전환을 추진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에 도달했는지도 모르겠다. 정부의 냉정하고 과감한 정책 추진을 기대해 본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가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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