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의학=원천기술 산실, 연구 지원 활성화 절실”
황선욱 고려대 의대 교수
2021.10.12 10:40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신용수 기자] “올해도 왜 우리나라는 노벨상을 못 받았을까?”

매년 10월이면 연례행사처럼 우리나라 의‧과학계에서 나오는 아쉬운 소리다. 이웃나라 일본이 지금까지 수십 명의 노벨상을 배출한 것과는 사뭇 대비하는 광경이다. 올해도 일본은 마나베 슈쿠로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에 이름을 올리면서 노벨상 수상에 성공했다. 
 
매번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원인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의학계는 전통적으로 임상의학에서는 강점이 있지만, 기초의학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평(評)이 많았다. 하지만 노벨상의 경우 ‘기초의학’에 더 후한 점수를 매긴다. 올해 노벨생리의학상도 기초의학을 연구한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그렇다면 올해 노벨상 수상자와 같은 실험실에서 연구를 진행한 기초의학자는 올해 노벨상 선정 이유와 우리나라 기초의학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데일리메디가 올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와 수년간 연구를 함께 했던 황선욱 고려대 의대 생리학교실 교수를 만났다.
 
촬영=신용수 기자
온도와 압력 감각을 깨운 연구자들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데이비드 줄리어스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UCSF) 교수와 아르뎀 파타푸티안 미국 스크립스연구소 하워드 휴즈 의학센터 교수는 온도 수용체와 촉각 수용체의 발견으로 의‧약학 발전의 가능성을 연 공로를 인정받았다. 
 
황선욱 교수는 노벨위원회가 올해 노벨상 주제로 감각 수용체 발견을 선정한 이유로 생리적 경로의 발견을 꼽았다. 생리적 경로를 찾아내 새로운 치료제 표적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그동안 오감 중 시각과 후각 수용체를 규명한 연구진들은 이미 노벨상을 받았다”며 “청각과 미각, 촉각 중 통증과 관련된 촉각의 중요성을 인정 받아 수상한 것으로 보인다. 향후 미각과 청각도 연구 진척에 따라 노벨상에 이름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촉각을 세분화하면 물리적‧화학적 자극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번에는 온도와 압력 등 물리적 자극을 규명한 연구자들이 선정됐다”며 “고온 수용체를 발견한 줄리어스 교수와 압력 수용체를 발견한 파타푸티안 교수가 각각 공로를 인정받았다”고 했다.
 
연구 성과를 가장 먼저 낸 것은 줄리어스 교수였다. 그는 고추 속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을 인체가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던 중, 수용체 TRPV1에 캡사이신이 결합해 통각을 느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후 추가연구를 통해 TRPV1이 뜨거움을 인식한다는 사실을 발견해 1997년 네이처에 발표했다. 
 
이후 신생 연구자인 파타푸티안 교수가 줄리어스 교수와 2002년 저온 수용체 TRPM8 발견 성과를 각자 독립적으로 발표하면서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다. TRPM8의 발견 또한 TRPV1처럼 물질로부터 비롯했다. 박하 향 성분인 멘톨이 TRPM8에 결합한다는 점을 통해 TRPM8이 저온 수용체라는 사실을 찾아낸 것이다.
 
파타푸티안 교수는 기계적인 감각을 인지하는 수용체인 Piezo1과 Piezo2를 독자적으로 발견하면서, 새로운 거성의 탄생을 선언했다. 온도 감각과 기계적 감각의 비밀을 풀 열쇠가 인류의 손에 들어온 것이다. 
 
다만 TRPV1과 Piezo1‧2 등 촉각 수용체를 표적으로 한 치료제 개발은 아직 시작 단계에 있다. TRPV1 표적 치료제는 부침을 겪고 있고, Piezo 기반 치료제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황 교수는 “아직 연구개발 과정에서 뚜렷한 성과가 드러난 TRPV1 표적 진통제는 없는 것이 사실”이라며 “물론 고농도의 캡사이신을 이용한 도포제가 당뇨병성신경병증 및 대상포진 통증 완화용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합성 소분자 기반 TRPV1 저해제가 성공한 사례는 아직 없다”고 말헀다.
 
이어 “캡사이신을 포함해 TRPV1 표적 치료제 후보들은 대부분 발열 부작용을 안고 있다”며 “TRPV1을 저해하면 우리 몸에서 열이 부족하다고 인식해 열생산을 늘리면서 발열이 생기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현재 학계와 산업계 모두 이 부작용을 우회할 전략을 찾고 있다”고 했다. 
 
또 “Piezo 계열 표적 치료제는 태동기 단계”라며 “사실 학계는 Piezo 수용체의 노벨상 수상을 굉장히 빠른 것으로 보고 있다. Piezo1‧2의 단백질 구조가 완전히 규명된 게 불과 2~3년 전 일이다. 이 정보를 활용한 신약후보물질들이 곧 나올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Piezo2의 경우 감각신경에 집중 분포한 까닭에 새로운 진통 표적이 될 수 있다고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원생 중심 한국 실험실, 세련된 연구 쉽지 않아”

황선욱 교수는 서울대 약대 출신으로 동 대학원 약물학 석사와 생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파타푸티안 교수의 연구실에서 2002~2005년까지 약 3년간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함께 연구를 진행했다.
 
황 교수는 “본인이 합류할 당시 파타푸티안 교수는 30대 중반의 패기 넘치는 신참 조교수”였다 “학생들과 연구원 일반적으로 규모가 있는 안정적인 연구실을 선호하는데, 본인을 비롯해 파타푸티안 교수 연구실에 합류한 동료들은 다소 성향이 달랐다. 서로 합심하고 소통하는 분위기 속에서 모두의 숨결이 들어간 연구를 만들어가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랩이 만들어질 때 결성된 ‘드림팀’들은 TRPM8를 비롯해 저온 수용체 연구에 크게 공헌했다”며 “파타푸티안 교수는 당시에도 기계적 감각 수용체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고 있었다. 발견한 온도 수용체들이 기계적 감각에도 영향을 미치는지를 실험하고 검증하는 연구를 함께 진행했었다. 이같은 그의 의지가 후일 Piezo 수용체 발견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 교수는 파타푸티안 교수를 ‘Dr. Cool’(닥터 쿨)로 회상했다. 저온 수용체를 발견한 연구자라는 뜻과, 멋진 박사라는 뜻을 중의적으로 내포한 별명이었다고 한다. 황 교수는 “파타푸티안 교수가 주도하는 격의 없고 활발한 소통이 실험실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형성했고, 좋은 연구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어서 황 교수는 미국 유학 당시와 우리나라의 연구실 분위기 차이를 설명했다. 우리나라 연구실이 대학원생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과 달리, 미국의 연구실은 주로 박사후연구원이 주도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라는 것.
 
황 교수는 “국내 연구실은 대학원생의 연구역량을 높여가는 교육적인 성과는 크다”며 “다만 숙련된 연구원의 세련되고 속도감 있는 연구 설계와 진행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같은 환경에서도 우리나라 연구실에서도 좋은 성과들을 꾸준히 내고 있다. 앞으로 정부가 박사후연구원들의 연구 여건 개선에 보다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파타푸티안 교수(맨 왼쪽) 연구실 근무 당시 황선욱 교수(왼쪽 두번째)./사진제공=황선욱 교수
골든 크로스 곧 온다, 응용연구→기초연구 패러다임 바꿔야 

황 교수는 2005년 귀국 이후 고려대 의대 교수로 근무하면서 기초의학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고려대 대학원 의과학과 학과장도 역임하고 있다.
 
황 교수는 현재 국내에서 주로 감각 수용체 정보를 활용한 원천기술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그는 “발견한 수용체를 어떻게 치료 표적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뇌 발현 빅테이터를 통해 감각 수용체의 상위조절 분자를 찾고 이를 진통제 개발까지 이을 수 있는 기업공동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또한 의대 교수로서 본과생들에게 전기생리학 및 감각을 가르치고 있다. 수업 중 Piezo2 노벨상 수상을 예견하곤 했는데 현실이 돼서 놀라웠다”며 “대학원 학과장으로서는 단백질 구조 예측 분야를 사실상 평정했다고 평가받는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알파폴드2를 주목하고 있다. 향후 대학원 수업에 이 분야를 적극적으로 반영해 개편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국내 기초의학 연구의 기수 중 한 사람으로서, 우리나라 기초의학 분야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황 교수는 "국내 의‧과학 연구 시작이 늦은 만큼 조급할 필요는 없지만, 기초연구 지원 환경 개선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황 교수는 “일본의 경우 이미 20세기 초부터 기초의‧과학 연구 중시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후발주자인 우리나라와 비교하기는 무리가 있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80년대 중반부터 연구개발 중요성에 눈을 떴다. 당시 지원을 받았던 학생들이 이제 의‧과학계 50~60대 중견급 학자로 들어섰고, 세계적 성과도 거두고 있는 만큼 진중하게 지켜볼 일”이라고 분석했다.
 
또 “우리나라 연구개발 투자도 많이 성장해 일정 궤도에 올라왔다”며 “하지만 아직 민간 재원, 기업 연계 응용 연구에 치중된 경우가 많다. 기초 연구가 곧 혁신신약(first in class) 기술확보의 원천인데도 민간과 기업은 위험성이 큰 비목적 기초 연구에 대한 투자를 꺼린다. 공공 연구투자 기관이 책무를 느끼고 감당해야 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나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기초 연구가 지원을 받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며 “경제적 파급 규모, 실용화 확률 등 과거 응용 연구 위주 시대 잣대가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기초연구는 세상에 없던 질문, 도전성을 높이 사는 파격, 첨단기법을 도입하는 과감함 등 3박자가 필요하다. 연구에 대한 인식 변혁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황 교수는 마지막으로 기초의학 연구를 꿈꾸는 의‧약사와 의‧약대생 등 예비 기초의학자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을 남기면서 인터뷰를 마쳤다.
 
“코로나19 사태의 핵심 이슈로 백신‧치료제 주권이 주목받고 있다. 결국 의‧약계 과학기술 역량이 만드는 주권이다. 여전히 우리나라가 선진국과 비교하면 아쉬움이 있지만, 이는 오히려 우리나라가 턱밑까지 추격해 그들을 바라볼만한 수준까지 도달했다는 것을 뜻한다. 지금 같은 추세면 여러분 세대가 역전을 이루는 골든 크로스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기초의학계 선배로서 질병 퇴치 꿈을 놓고 고민 중인 후배들 도전을 기다린다. 여러분들의 시대가 곧 도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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