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의사 산부인과 기피 1위 '무과실 의료사고 처벌'
고비용·고위험 의료행위 대비 저수가도 꼽혀···전공의들 '미래 부정적' 비관
2021.10.02 07:03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최근 몇 년 새 산부인과 기피현상이 두드러진 것에 대해 젊은 의사들은 ‘무과실 의료사고에 대한 보호장치 부재’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이어 고비용‧고위험 의료행위에 비해 낮은 의료수가, 저출산에 따른 분만건수 감소도 산부인과 기피현상에 영향을 미친 주된 이유라 답했다.
 
1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107차 대한산부인과학회 학술대회에서 연자로 나선 박정열 대한산부인과학회 사무총장(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교수)은 최근 이 같은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박 사무총장은 “지난해에는 산부인과 전문의가 불과 124명 배출됐다. 산부인과 의사 수급 문제가 심각해지는 가운데,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대한산부인과학회(이하 학회) 차원에서 인식조사를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학회가 최근 전공의 17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산부인과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란 질문에 절반이 넘는 응답자가 부정적인 전망을 내비쳤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선 ‘무과실 의료사고에 대한 보호장치 부재’가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이어 ‘개원 시 의료수가로 인한 경영난’, ‘개원 시 분만건수 감소로 인한 경영난’ 등이 뒤를 이었다.
 
박 사무총장은 “산부인과 위기와 관련해선 저수가, 저출산 등의 키워드가 널리 알려져 있는데, 젊은 의사들은 의료소송에 대한 사안을 가장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앞서 의료계는 선의로 실시한 의료행위에 대한 보호방안을 위해 의료사고특례법 제정을 주장했는데, 젊은 의사들도 이러한 부분에 가장 큰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임상현장에서 일해 온 의사들뿐만 아니라, 앞으로 본격적으로 임상현장에 나설 의사들도 법적 안전책의 시급성에 공감하고 있단 얘기다.
 
다만 산부인과의 미래가 마냥 어두운 것만은 아니라고 그는 덧붙였다. 박 사무총장은 “‘산부인과 의사에 도전하고 싶은가’란 질문에 50%가 넘는 응답자가 긍정적으로 답변했다. 현실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몇 가지 정책만 바뀐다면 많은 젊은의사들은 언제든 산부인과를 선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분만병원들 "인력난‧운영비용 부담 등 힘들어" 호소
 
그렇다면 이미 분만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의사들의 생각은 어떨까. 지금 의료기관을 운영하고 있는 이들은 보다 현실적이고 시급한 문제 상황을 토로했다. 
 
신봉식 대한분만병원협회장(린 여성병원 원장)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일선 병원들이 우선 맞닥뜨린 문제는 인력난이다. 정부가 코로나19 의료기관 지원과 관련해 의료인력을 모집하면서 개원가로 오는 간호사들이 줄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이어 “문제는 필수 의료인 분만을 할 인력이 부족하다는 건데, 협회가 파악하기로는 약 30% 정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의료사고에 대한 일선 병의원들의 불안감도 전했다. 그는 “지난해 강원도 속초의 제일 오래된 분만병원에서 사고가 났는데, 한 번의 실수로 문을 닫았다”며 “분만병원은 기본적으로 큰 리스크를 안고 운영하는 만큼 정부의 정책적 배려가 다수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신생아-분만수가 연동, 종합병원 산부인과 필수과 재지정, 상종 분만관련 중증 기준 합리화 필요”
 
학회가 지목하는 산부인과의 가장 큰 위기는 ‘분만병원 고사’다. 무엇보다 국민건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시급한 해결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와 관련, 이날 토론에서 패널로 나선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분만수가를 대대적으로 손질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 회장은 “본인 역시 시골에서 분만을 하다 포기했다. 문제는 ‘비용’이다”고 운을 뗐다. 이들에 따르면 분만병원은 최소 시설비용이 10억원, 운영비용이 연간 5억원 가량 필요하다. 24시간 가동되야 할 뿐만 아니라 여러 명의 전문의‧간호사 인력을 둬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김 회장은 저출산 시대에서도 분만병원이 운영을 지속해나갈 수 있도록 출산률과 수가를 연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분만취약지에는 지역가산제를 최소 ‘200%’이상으로 책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황종윤 강원대병원 고위험 산모 신생아 통합치료센터장은 종별로 서로 다른 해결방안을 제안했다. 
 
황 센터장은 “의료기관 각 종별로 시급한 정책개선점이 있다”며 “우선 100~300병상 종합병원의 경우, 앞서 산부인과가 필수과에서 제외되면서 과를 철수한 곳들이 많다”며 “재지정을 통해 2차 의료기관의 분만 기능을 강화하고, 지역 의료인프라의 안정적인 분배를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급종합병원과 관련해선 “현재 산과의 많은 진료가 중증질환 전문진료에서 빠져 있다. 현실적이지 못한 중증 기준에 상급종합병원 근무 의사들도 애를 먹고 있다”며 “현재 학회는 ‘고위험 임신 기준’을 만들어 뒀는데, 최소한 이 기준에 맞춰 합리적인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복지부 관계자들은 이같은 학회 의견에 '정책에 적극 참고하겠다'고 언급했다.
 
복지부 이창준 보건의료정책관은 “출산률과 분만수가 연동제는 계속해서 언급되고 있는데, 복지부에서도 이 사안을 주의 깊게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저출산’이란 사회현상 자체는 극복할 것이 아닌 적응해야 할 것으로 바라본다. 이런 관점에서 분만관련 정책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중규 보험급여과장 또한 출산률-수가연동제와 관련해 “그동안 급여량이 급속도로 증가했을 때 수가를 조정한 적은 있지만, 반대의 경우는 없었다”며 “전례가 없는 것은 둘째 치고, 이러한 부분에 대해선 사회적으로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직접적인 수가지원은 아니지만, 현재 국민행복카드와 같은 지원정책도 지속적으로 확대 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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