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수술실 CCTV 의무화와 中 참새 박멸 데자뷰
'가장 심각한 사안은 젊은의사들 외과 등 기피로 의료체계 붕괴 가속'
2021.09.15 05:46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박대진 기자] 결국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모든 의료기관들은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고 환자나 보호자가 요청하면 촬영해야 한다.
 
정당한 사유 없이 녹화를 거부할 경우 500만원 이하 벌금, 영상 유출‧변조‧훼손시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의료계는 결사항전의 의지로 입법 저지에 나섰지만 잇단 대리수술으로 등을 돌린 여론 앞에 공허한 메아리일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의사들 입장에서는 과도한 ‘침소봉대(針小棒大)’에 가슴을 칠 일이다. 일부 잘못으로 모든 수술실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해야 하는 상황을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반면 환자단체나 시민단체는 “유령수술, 대리수술, 성범죄, 의료사고 은폐 등을 예방하고 수술실 안전과 인권을 지켜줄 것”이라며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일련의 상황을 접하며 불현듯 2년 전 기억이 소환됐다. 당시 정부는 문재인케어 자찬(自讚)에 열을 올렸다. 
 
2년 동안 3600만명의 국민이 2조2000억원의 의료비 경감 혜택을 받았고, 국민 상당수가 문재인케어에 긍정적이라는 설문조사도 공개했다.
 
당시 필자는 그러한 정부를 향해 중국의 절대 권력자 마오쩌둥의 ‘참새 박멸’ 일화를 빌어 지도자의 근시안적 결정과 오판에 우회적 일침을 가했다.
 
마오쩌둥은 1958년 농촌 시찰 중 참새무리가 벼이삭을 쪼아 먹는 모습을 보고 진노했다. 가뜩이나 식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배고픈 인민들이 먹어야 할 곡식을 참새가 축내고 있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그 자리에서 ‘참새 소탕령’을 내렸다.
 
즉각 참새박멸지휘부가 만들어졌고, 전국 전역에 걸쳐 대대적인 참새 섬멸이 시작됐다. 시민들은 냄비와 세숫대야를 두드리며 참새를 몰았고, 날다 지친 새들은 땅으로 곤두박질 쳤다.
 
나뭇가지에 앉은 참새는 포수에 의해 사살됐다. 운 좋게 살아남은 참새들은 먼 곳으로 달아났지만 독극물을 섞어 뿌려놓은 곡식을 먹고 떼죽음을 당했다.
 
참새 소탕령으로 무려 2억 마리가 넘는 참새가 섬멸됐다. 중국 전역에서 참새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씨가 말랐다.
 
인민의 곡식을 축내는 참새가 사라졌으니 식량난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이어졌다.
 
천적인 참새가 없어지자 메뚜기와 해충들이 창궐해 벼를 갉아먹었고, 그해 최악의 흉작을 기록했다. 쌀 수확량이 급감하면서 수 천만명의 인민이 굶어 죽었다.
 
아무리 선한 의도이더라도 혜안이 없으면 더 큰 화(禍)를 불러일으킨다는 정책의 역설을 비유할 때 왕왕 인용되는 역사다.
 
문재인 정부의 ‘참새 박멸’은 최저임금 인상과 부동산 대책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서민과 중산층이 사랍답게 살 만한 환경을 조성하겠다’며 추진한 최저임금의 과격한 인상은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빼앗고, 대규모 실업자를 양산시켰다.
 
‘무주택자와 임차인을 보호한다’는 선한 의도로 추진된 부동산 정책은 사상 초유의 집 값 상승으로 이어지며 젊은세대들의 내 집 마련에 대한 꿈마저 잃게 만들었다.
 
수술실 CCTV 역시 맥(脈)을 같이 한다. 수술실에서의 환자안전을 보호해 줄 것이라는 선한 의도이지만 전혀 상반된 결과로 이어질 공산이 다분하다.
 
CCTV 자체에 부담을 느낀 의사들은 의료분쟁에 대비해 최소한의 방어적 수술만을 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 환자 생존율과 회복율 저하는 불가피하다.
 
예를 들면 정상조직과 암의 경계가 불분명할 경우 의사는 완전 절제를 시도를 하지만 CCTV 설치 후에는 무리하게 절제하기보다 안전하게 남기려는 경향을 보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응급수술이나 위험수술 기피에 따른 상급종합병원 환자쏠림 심화도 우려스럽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고위험 수술을 기피하는 의사들이 늘어날 수 밖에 없고, 결국 환자들은 수술을 받기 위해 상급종합병원으로 쏠릴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한 외과 교수는 “의사들이 고위험 수술을 포기하고 대형병원으로 보내게 될 것”이라며 “이로 인해 상급종병 쏠림으로 수술을 기다리다 사망하는 환자들이 속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극히 일부 의사들의 잘못된 행동을 감시하기 위해 수 많은 외과계 의사들의 손목을 묶는 것은 국민들의 생명에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가 야기할 여러 부작용 중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젊은의사들 기피에 따른 의료체계 붕괴다.
 
이미 많은 젊은의사들이 외과계를 기피하는 경향은 수 십년 전부터 시작돼 점점 심화되고 있고, 대한민국에서 외과계는 점점 기피하는 진료과가 돼 버렸다.
 
힘든 수련 과정과 장시간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전문성과 노동량에 비해 보상은 별로 없고 수술로 인한 분쟁이 점점 많아지기 때문이다.
 
특히 흉부외과의 경우는 신규 의사보다 은퇴 의사가 더 많아 그 숫자가 점차 줄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기존 인력의 근무 강도가 갈수록 증가해 현 의료진의 피로감 등이 점차 한계에 도달하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 소재 대학병원의 흉부외과 교수는 “수술실 CCTV는 의사들이 외과계를 더욱 기피하게 만들고 전국에 외과계 의사가 부족해 수술을 못하는 날이 도래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60년 전 중국 대륙에서 벌어졌던 참새 박멸 역설이 조만간 대한민국에서 재현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
 
중국사에 큰 획을 그었던 지도자의 근시안적 정책 결정은 수 천만명의 인민이 굶어죽는 대재앙으로 부메랑됐다. 부디 수술실 CCTV법이 참새 박멸의 데자뷰가 아니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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