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신만고 끝 설립·출발한 '의대교수 노조'
촉매제 역할 수행 동남권원자력의학원·중앙보훈병원·아주대 의대
2021.07.09 12:16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기획 1] 금년 4월 전국의과대학교수노동조합(이하 의교노)이 창립총 회를 열고 공식 출범을 알렸다. 

지난 2018년 8월 헌법재판소가 대학교수들의 노조 설립을 금 지하는 교원노조법 제2조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지 2년 반 이 경과한 2020년 5월 국회가 ‘교원’ 범위를 넓게 인정하는 ‘교원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을 통과시킨 지 1년 만이다.

그동안 대학병원 교수들은 ‘근로자’로서 권리를 찾기 위한 단 체 설립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경쟁이 심화되고 수가 등 건강보험 정책의 압박으로 병원들이 성과중심 문화를 지향, 이로 인해 환자들의 전반적인 건강이 위협받을 수 있다며 병원을 상대로 한 교섭권이 강화돼야 한 다는 주장을 펼쳤다.

의교노에 따르면 앞으로 사용자인 병원과, 근로자인 의대 교 수 간 대화 테이블에는 적잖은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이러한 변화의 단초가 트이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은 길 을 걸었다.

의대교수 노조 설립 시작은 지난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

당시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은 폐암 치료 임상시험 중 환자가 사 망한 사건과 관련해 논란을 빚고 있었다. 일련의 사태에 병원 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내부고발 의사가 사실상 ‘해고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사들을 중심으로 강한 반발이 일었다. 결국 동남권원자력의학원 분회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 연대 본부 산하지부로 설립됐다.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을 시작으로 대형병원에서 ‘의사노조’ 필 요성 논의가 이뤄졌다. 같은 해 중앙보훈병원 소속 의사들은 병원의 ‘실적 강요’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며 의사노조를 만들었다.

이어 2018년 12월에 대학병원 교수들이 처음 노조 깃발을 내걸었다.

아주대 의과대학 교수들에 의해 국내 첫 의대교수 노조가 출범 한 것이다. 공식 명칭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아주대 의대 분회’였다. 이들은 사용자인 병원의 근로기준법준수 등을 요구하며 공식적인 노조 활동의 시작을 알렸다.

하지만 첫 의대교수 노조에겐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노조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 필요한 교섭권이 이들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당시 중앙노동위원회는 대학 전임교원에 대해 ‘노동자가 아니 다’라고 판단했다. 봉직의 등 의대 소속 일부 의사에 대해선 노동자 신분을 인정했지만, 전임 교원인 교수의 경우 근로자 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이후 아주대 의대 교수노조 측은 기나긴 소송전에 돌입했다.
 
의대교수=노조설립주체 인정 ‘교원노조법’ 통과

아주대 의대의 교수노조가 장기 소송전에 들어간 이후 이번에 는 국회에서 움직임이 일었다.

국회는 2020년 5월 본회의를 열고 ‘교원 노동조합 설립 및 운 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을 통과시켰다. 앞서 헌법재판 소는 교수의 ‘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해당 법안 2조에 대 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2020년 3월 31일까지 법 개 정에 나설 것을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따라 2020년 4월 1일부터 교수노조 설립이 가능했지만 의대, 교수노조를 고려 중인 의료계에서는 국회가 퇴직교원의 노조 조합원 자격 및 대학별로 상이한 근로조건·이중신분(대 학교수·의사) 등에 대해 명확히 해주길 기대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교원노조법 개정안은 초·중·고 교원에 한정 했던 범위를 대학 교원으로 넓혀, 의대교수들의 노조 설립이 가능토록 했다. 교수의 근로자성을 인정한 것이다.

세부적으로는 개별 학교 단위로 노조 설립이 허용되지만, 임 금협상 등 단체교섭 시에는 창구를 단일화해야 한다.

이 때문에 본회의에서는 반대 입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해직 교수들이 조합원 자격을 인정받지 못 할 뿐더러 사실상 교섭 창구 단일화를 강제, 대학 측이 어용노조 등을 통한 노조활동 방해가 용이하게 됐다는 것이다.

일부 문제가 언급됐지만, 해당 법이 국회를 통과했다는 소식 자체는 노조 설립을 준비하던 의대 교수들에게는 희소식이었 다. 실제로 이후 의료계에서는 의대교수 노조 설립 움직임이 급속히 속도가 붙었다.
 
2021년 4월 '전국의과대학교수노동조합' 출범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중앙보훈병원 그리고 아주대 의대 이후 전국 의대 교수들 사이에선 노조 설립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 됐다. 국회에서 교원노조법이 통과되는 동안 병원에서도 노조 에 대한 관심이 행동으로 이어졌다.

구심점은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이었다. 이들은 2020년부터 노조 발기인 대회를 개최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 했다. 하지만 협의회 자체가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는 의대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노조 설립 방식 자체에 대해서도 구성원 간 의견 차이가 보였다. 

실제 교수협의회가 설립된 지 얼마 안돼 일부 의과대학은 교 수협의회에 이어 곧바로 노조까지 결성하는 것에 대해 부담감 을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교수들이 ‘의대교수 노조’에 대한 인식이 성숙되지 않았 다는 주장도 나왔다.

결국 2020년 11월 계획됐던 의대교수 노조 발기인대회는 열 리지 못했다. 이어 2021년 2월 또 다시 연기되면서 설립은 무산되는 듯 싶었다.

하지만 2021년 4월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아주대 의대 교 수들이 국내 최초로 의대교수 노조 설립을 밝힌 것이다. 아주 대 의대 소속 교수들은 교원노조법이 국회를 통과한 후 의대 교수들로 이뤄진 노조를 설립하기 위해 세밀한 준비를 했다.

아주대병원 임상 교수들은 앞서 지난 2018년 의사노조를 설 립하고 대학 교수 노조 결성을 금지하는 교원노조법에 반발하 며 행정소송을 진행했으나 1심에서 패소한 바 있다.

이후 대학교수 노조 설립을 금지하는 교원노조법 2조 조항이 개정되면서 대학교수 노조 설립이 가능해졌고 아주의대 교수 들이 첫 스타트를 끊게 된 것이다.

아주대 의대 교수노조는 지난 2021년 3월 12일, 중부지방고 용노동청경기지청으로부터 노조 설립 신고증도 교부받았다.

아주대 의대 교수노조 설립 소식은 전의교협의 노조 설립 움 직임에 또한 힘을 실어줬고 2021년 4월, 우여곡절 끝에 전국 의과대학교수노동조합(의교노)이 마침내 닻을 올리게 됐다.

의교노는 2021년 4월 23일 밀레니엄힐튼 서울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초대 위원장에 김장한 울산의대 교수를 선출했다.

의교노는 교수들이 개별적으로 가입하는 전국 단위 노조 형태 로 설립됐다. 아주의대를 제외하곤 개별 의대 차원의 노조 설 립 움직임이 지지부진한 만큼 의교노가 의대별 단위노조 설립 을 위한 일종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 의대에서 단위노조가 설립되면 의교노 조직은 해 체하고 다시 해당 단위노조를 한 데 묶는 노조연맹을 설립하 는 것이 향후 의교노 계획이다.
 
인제대 의대 교수들, 2호 노조 설립
 
아주대 의대와 의교노가 출범 소식을 알린지 얼마 되지 않아 국내 ‘2호 의대 교수노조’가 탄생했다. 

인제대 의대가 아주대 의대에 이어 두 번째로 의대교수 노조를 설립했다. 

인제대 의대 교수노조는 지난 6월 7일 교수노조 설립 허가증 을 교부받았다. 창립총회는 지난 5월 22일 개최했다. 인제대 의대 교수노조 측에 따르면 이들은 일반적인 노조와 같이 교 수들의 임금 사안이나 근로조건 개선에 초점을 두고 활동을 전개해나갈 계획이다.

인제대 의대 또한 사용자인 병원과 근로자인 교수 간 갈등 상 황이 현재 진행 중이다.

앞서 인제대 산하 병원에서 근무하는 전임 교원 130명은 연 가 보상비 미지급 문제와 관련해 병원을 상대로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제기한 바 있다. 양 측의 공방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병원과 의대 교수 간 최근 갈등으로 떠오른 ‘연가 보상비 지급’ 관련해선 아주대 의대 교수들의 소송건이 진행 중이다. 이 사 건은 금년 7월 공판을 앞두고 있다.

한편, 인제대 의대는 아주의대 교수노조에 자문을 많이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례가 있는 만큼 ‘두 번째 시작’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단 설명이다. 

병원계에선 인제대 의대 교수노조가 출범한 이후 3번째, 4번 째 의대 교수노조가 설립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인제대 의대가 그랬듯이 참고할 수 있는 선례가 있으며, 또한 직접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의교노 와 같은 단체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제 막 탄생한 의대 교수 노조의 갈길은 멀다. 실제로 아주대 의대 교수노조는 첫 단체교섭이 추진하고 있지만 사측의 반대로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의대 교수노조에 대한 인식이 아직 자리 잡지 못했고, 구체적 인 역할도 정립되지 않은 상황이다. 병원과 교수의 대화법에 변화가 생길지 의대 교수노조의 향후 행보에 의료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여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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