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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치료 어려운 나라=대한민국, 오명 씻을 때 왔다"
홍승봉 대한신경과학회 이사장
[ 2021년 07월 05일 05시 02분 ]
[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아닌 의사가 내릴 수 있는 처방일수가 60일로 제한된 ‘SSRI(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재) 처방 규정’을 둘러싼 논쟁은 어제 오늘의 사안이 아니다. 의학적 근거가 충분치 않은 규정이 의료현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의료계는 지적한다. 제한된 처방권은 환자 접근성을 낮추고, 결과적으로 환자 건강권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최근 코로나19 사태 이후 우울증 환자가 급증하면서 관련 논의에 다시 불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십 수년간 의료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SSRI 처방권 확대와 관련해서 홍승봉 교수(삼성서울병원 신경과)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주]

Q. ‘SSRI 처방권’ 둘러싼 논란이 새삼 다시 뜨겁다
-우울증 치료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급격히 늘어났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새 우리나라 우울증 환자 유병률이 급속도로 증가했다. 작년 10월 OECD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우울증 환자는 36.8%다. 전년 대비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유병률 자체도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되는 상황에서 우울증 환자는 계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우울증은 치료약물 외에 ‘활발한 외부활동’ 같은 생활습관이 치료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일상생활이 제한되면서 상황은 더욱 나빠질 것이다. 여기에 자영업자의 극단적 선택, 노인들의 고독사, 젊은 층의 우울감 같은 사회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Q. SSRI는 대표적인 우울증 치료제. 해외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나
-SSRI는 90년대 이후로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치료제다. 이전까지 쓰이던 삼환계 항우울제(TCA)는 독한 약이었다. 부작용이 심해 사망자가 발생할 만큼 논란이 많았다. 이후 등장한 약이 SSRI 계열 항우울제들이다. 부작용이 거의 없어서 사용률이 대폭 증가했다. 이 약의 파급력이 어느 정도였냐면, 미국과 유럽에서 자살률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북유럽 국가에서도 이 약의 효과를 설명하는 논문이 쏟아져 나왔다. 우울증 치료를 하는 데 있어 가장 안전하고 보편적이란 학계 검증이 예전에 이뤄졌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일정한 교육과정을 거친 간호사에게도 처방권이 있다.
 
Q. 해외와 달리 우리나라는 SSRI에 대한 처방권이 제한돼 있는데
-우리나라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아닌 의사, 예를 들어 내과, 소아청소년과, 가정의학과 전문의들은 60일치만 처방을 내릴 수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우울증 치료를 위해선 최소 6~12개월 이상 약물치료가 이뤄져야 한다. 사실상 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이 약으로 우울증 환자를 치료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규제가 있는 곳은 한국 뿐이다. 외국 의사들은 이러한 규정을 듣고 놀란다. 지난 5월에 열린 덴마크와 우리나라가 공동 주최한 심포지엄이 열렸는데, 덴마크 의사 및 대사관 직원들 모두 한국의 SSRI 항우울제 처방제한은 잘못된 것이 분명한데 어째서 폐지하지 않고 있냐고 반응하기도 했다.
 
Q. 우리나라에서 비(非)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에게 SSRI 처방을 제한한 근거는
-정부에 따르면 건강보험재정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경제 수준이 우리나라보다 낮은 아프리카 르완다도 SSRI 처방권을 제한하진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규제가 결코 ‘안전성’ 때문이 아니란 것이다. 우울증보다 독한 약물이 사용되는 조울증과 조현병(정신분열증) 치료 약물에 대해서도 이러한 규제가 없다. 사용하기 어려운 치료약은 모든 의사들이 자유롭게 처방할 수 있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증상이 심각한 조울증과 조현병을 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치료하고, 우울증은 치료를 못하는 것이다. 덧붙이면 TCA계열 약물은 과량 복용시 치사율이 높았지만, SSRI는 75일분을 한 번에 복용해도 환자가 사망하지 않았다는 연구도 있다. 더 ‘순한 약’인 SSRI에만 처방권이 제한된 것이다. 

"우울증과 자살률 세계 1위, 안전한 SSRI 보편적 처방 시급"
"훨씬 독한 약에도 처방권 제한이 없는데 매우 안전한 SSRI에만 제한, 합리적 근거도 없어"
"우울증 치료는 최소 6~12개월 이상 약물 복용 필요, 60일 제한때문에 환자들에 도움 못주는 안타까운 현실"   
"우리나라 우울증 환자 급증, 정신과 전문의만으론 효과적인 대처 역부족"
"미국에선 가정의학과·소청과·산부인과가 SSRI 처방건수 가장 많아, 일부 주는 간호사도 처방"

 
Q. 의료계가 SSRI 처방규제 철폐를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발생된 논문들은 이미 SSRI 항우울제의 사용율과 자살율은 반비례함을 보여주고 있다. SSRI 처방권을 제한하는 규정이 국민 건강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규정 때문에 내과, 소아청소년과, 가정의학과, 산부인과는 사실상 우울증 치료를 하지 못하고 있다. 우울증 치료에 대한 환자 접근성이 매우 낮은 것이다. 우리나라 우울증 환자는 최소 500만 명 정도로 알려졌다. 이들을 약 3천명 정도밖에 안 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보는 것이다. 전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1년에 보는 환자가 250만 명인데, 이들 중 우울증 환자는 약 50만 명 정도다. 단순 계산으로도 450만 명이 치료받지 못하는 것이다. 참고로 미국에서 SSRI을 가장 많이 처방하는 것은 가정의학과 전문의다. 이어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정신건강의학과 순이다. 미국의 우울증 치료율은 90%인데, 우리나라는 10%밖에 안 된다.
 
Q. SSRI 처방규제 철폐에 대해 정신건강의학계는 반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기본적으로 정책에 대한 판단은 정부가 내리는 것으로 안다. 타당한 근거가 없다면 불합리한 정책은 마땅히 수정해야 한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SSRI 항우울제 처방 규제는 적폐 중에 적폐이고 무엇으로도 합리화 할 수 없다. 심평원 역시 60일 처방제한의 의학적 근거, 교과서나 논문을 제시할 수 없다.
의료계 내부적으로도 소통이 이뤄져야 한다. 간 토론회 등 많은 대화의 장(場)을 계획하고 있다. 앞서 지난 2017년 SSRI 처방권이 정신건강의학과 외 전문의에게 처음 확대될 당시에도 많은 갈등이 있었다. 하지만 많은 공청회와 토론회 등을 거쳐 정책이 결국 바뀌었다. 이번에도 학회 차원에서 공론의 장을 기획하고 있다.
우울증은 현대인의 ‘만성질환’과 같다. 당뇨나 고혈압과 같이 어떤 병의원에 가도 쉽게 치료를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현행 규제 개선이 필수적이다. 우울증 치료가 어려운 나라라는 오명을 이제는 씻을 때가 됐다.
mut@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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