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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자들 입법 만행 '수술실 CCTV' 설치
장성구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이사장
[ 2021년 07월 04일 17시 46분 ]
[특별기고] “이런 글을 써야 하나” 의구심을 갖고 망설였다. 그런데 정도를 한참 벗어난 모습에 ‘불의를 보고 외면하면 더 이상 선비가 아니다’라는 옛 성현의 말씀이 생각났다.

그러나 막상 컴퓨터 앞에 앉으니 치미는 분노에 마음이 떨리고 깊은 자괴감에 빠졌다. 어쩌다 의사, 그것도 수술을 주로 하는 사람이 돼 예비 범죄자요, 감시 대상이 됐나 하는 생각에 머리가 아뜩해진다.

전 세계 어떤 나라에서도 시행되는 일이 없는 수술실내 CCTV 설치 의무화에 대한 논란 때문이다.

처음에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정치적 사행성의 저급한 입법안으로 치부했고, 그래도 입법부인데 국회에서 이 정도는 걸러지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국회에서 논의되는 모습은 마치 의사를 향한 한풀이 해머를 휘두르는 모습 같았다.

더욱이 국민권익위원회라는 국가 기관에서는 국민 98%가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를 찬성하고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로 지원사격에 나섰다.

의료사고 증빙서류를 수집할 수 있고, 대리수술을 감시하고, 성희롱 등 불법행위를 감시하고 의료진의 갑질 행태 개선과 환자 인권보호를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권익위원회 설문지를 꼭 한 번 보고 싶다. 설문조사에서 98%가 찬성했다면 무슨 공산주의 선거도 아니고 설문지에 문제가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설문조사란 응답자를 자극하면서 유도성 문장이 포함돼 있으면 얼마든지 원하는 방향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예비조사를 통해 문항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확보해야 한다. 당연히 그렇게 했으리라 믿는다. 그래도 98%라는 찬성률에 놀라고 가슴이 뛰어 더욱 더 문항을 보고 싶다.

필자 생각에는 설문지 형태를 약간 바꾸면 국민의 98%가 위에서 열거한 찬성 이유와 동일한 근거로 CCTV 설치를 반대한다는 결론을 도출시킬 수 있다.

"대리수술 같은 추악한 범죄는 단죄해야 하지만 전체 의사들을 예비 범죄자로 간주하는 입법"

물론 대리수술이라는 있을 수 없는 비윤리적 행위가 밝혀져서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는 의사들이 얼굴을 들 수 없게 만든 한 인간 말종의 추악한 범죄다.

그러나 이것을 빌미로 하루에도 수 천 건 이상의 수술을 하는 우리나라 전체 의사들을 예비 범죄자로 간주하는 입법을 시도하는 것은 법 취지에도 맞지 않은 것이다.

어차피 말이 나온 김에 다시 한 번 건의하면 이러한 인면수심의 파렴치한 의사 아닌 의사를 일벌백계로 다스리기 위해서도 의사에 대한 자율 징계권을 대한의사협회에 부여해야 한다.

수술실 CCTV 의무 설치를 찬성하는 국민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나. 오로지 희망적이고 좋은 덕담을 따라 찬성표를 던졌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수술실이라는 곳에서 어떤 일이 진행되는지 상상도 못하고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문장만 들여다봤을 것이다. 아마도 TV 연속극에 잠시 나오는 수술 장면을 연상했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해 급속도로 발전하는 의학적 지식과 기술,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시스템의 변화로 매일 수술실을 들고 나는 의사와 관계자 이외에는 수술실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내 부모, 내 형제뿐만 아니라 어느 날 나 자신도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데 그 모습을 촬영해 녹화한다고 생각하면서 찬반투표를 해라.

국민들을 자극하고 흥분시키는 여러 추상적이고 부정적인 일들은 수술실에서 일어날 수 없다. 수술실에는 팽팽한 긴장과 침묵만 흘러간다. 그래서 지나친 간장을 완화하기 위해 간혹 약간 밝은 음악을 틀기도 한다.

아무리 글이라고 해도 수술실 상황을 기술하는 게 적절한지 한동안 고민했다. “내가 마취에서 깨어날 수 있을까”, “수술은 계획대로 잘 될까”라는 긴장과 우려 속에 침묵만 흐를 수 밖에 없는 곳이 수술실이다.

이런 모습은 환자나 의사나 전혀 차이가 없다. 이런 엄숙한 모습을 무슨 소설을 쓰듯 희화적으로 추정하고 그것도 모자라 촬영을 하자는 사람들이 제정신일까 생각해 본다. 

"마취 상태로 수술대 위에 누워있는 환자들 모습, 촬영하는 것은 환자들 능멸하는 것 일 수도 있어"

나 개인이나 내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벌거벗고 무의식 상태로 누어있는 모습을 촬영해도 된다는 생각은 또 다른 형태의 인간 말종이다.

마취 상태로 수술대 위에 누워있는 환자들의 모습 자체를 일반인들이 봐서는 안 되는 이유는 그 자체가 혐오스럽고 놀라운 것이며 환자들을 능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질병에 따라 수술법이 다양하고, 마취된 환자 수술을 위한 체위(수술을 위한 환자의 자세)는 일일이 말로 형언하기가 무안하다.

내 스스로 모습이나 내 가족 모습일수록 봐서는 안 된다. 마취돼 있는 환자는 그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싫어하는 자존심이 있기 때문이다.

한 순간이나마 말 못하는 환자이지만 인격을 존중해야 옳은 것이다. 수술실에는 사그라져 가는 삶을 되찾기 위해 하늘이 내려주신 천부의 자존심조차 포기한 모습, 그 자체만 있을 뿐이다.

이 모습을 촬영하겠다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인간들의 원초적 야비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정치적 흥행을 위해 인륜의 근간을 뒤흔들어 놓는 법을 만드는 것은 사안 삼각성에 대한 사유가 깊지 못하고 문제점에 천착하지 못한 일탈된 행동이다.

이런 글을 써야 하는 것에 대한 망설임이 있었지만 세상이 일부 망동적인 세력에 의해 끌려가는 모습을 참을 수 없어 펜을 잡았다.

힘 있는 사람들은 이 글에 전혀 관심이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더라도 어느 시사평론가의 지적대로 국민을 위해 CCTV를 우리 사회 어느 곳에 설치해야 할까를 심각하게 고민하라.

법의 지배(rule of law)와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를 구분하지 못하는 우매한 국민들이라고 해서 입법권을 마음대로 휘둘러 국민을 우롱하는 것은 권력을 갖은 식자들의 만행이다.
dailymedi@daily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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