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CCTV 의무화, 국민 위한 최선책인가'
백성주 데일리메디 취재팀장
2020.10.30 17:30 댓글쓰기

의과대학 정원 논란 상흔이 채 치유되기도 전에 의료계는 다시 정책적 난관에 봉착하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과거 무산된 사례가 있는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다.


여권 유력 대선후보로 떠오른 이재명 경기지사가 CCTV 설치 입법화를 거듭 요청하는 등 이슈화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올해 국정감사에선 유령‧대리수술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주무부처 반응도 긍정으로 바뀌면서 실현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이 가운데 CCTV 설치 주장 근거가 된 불법 대리수술 실상은 놀라움 그 이상으로 국민들의 뇌리에 박히고 있다.


일부 의사의 ‘일탈’이나 ‘편법’ 정도로 여겨졌던 행태가 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실제 한 의사는 자격이 없는 의료기기 판매업체 직원에게 총 100회에 걸쳐 무면허 의료행위를 지시하기도 했다.


이재명 지사는 최근 국회의원 300명 전원에게 편지를 보내 “수술실 CCTV 설치는 환자들이 안심하고 수술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최소한 방안”이라며 입법화를 주장했다.


경기도는 지난 2018년 도의료원 안성병원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한 데 이어 지난해부터 수원, 의정부, 파주, 이천, 포천 등 산하 6개 병원에 CCTV를 설치해 운영 중이다.


최근에는 민간의료기관 참여 유도를 위해 수술실 CCTV 설치비 일부를 지원키로 하고, 참여 의료기관을 공개 모집했다. 공모에는 이미 3곳이 신청했다.


피해자와 의료인의 정보 비대칭이 심한 의료영역에서 CCTV 영상은 상대적으로 환자에게 유리하고 객관적인 증거로 쓰일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소식이다.


환자에게만 유리한 것도 아니다. 의료진 역시 의료분쟁 발생시 해당 영상을 통해 과실이 없음을 입증할 수 있다.


하지만 의료계 주장처럼 수술실 CCTV 설치에 따른 부작용은 분명 존재한다. 실체가 분명치 않지만 예상되는 폐단도 적잖다.


CCTV 존재는 의료진이 수술시 내리는 선택에 부담감을 줄지 모른다. 모든 신경을 집중해도 부족할 큰 수술을 하면서 환자의 건강이 아닌 다른 부분에 집중력이 분산될 수 있다.


사생활 침해 문제도 우려된다. 환자에게는 수술을 받는 신체 부위가 영상에 기록되는 것 외에 성형수술 여부는 개인정보 보호법상 보호돼야 할 ‘민감 정보’다.


의료진 사생활 역시 보호돼야 한다. 수술실은 엄연히 의료업 종사자의 사적이고 전문적인 공간이고, 수술 진행 역시 사생활의 영역에 포함될 수 있다.


무엇보다 수술실 CCTV는 환자와 의사 간 신뢰를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가져온다. 심할 경우 지금 이 순간에도 환자 생명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의사를 범죄자로 낙인찍을 수 있다.


영업사원의 대리수술과 같은 경악스러운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의료계 자성과 제도적 점검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국가와 사회발전의 장기적인 비전이나 목표, 국민 기본권에 대한 심각한 고민 없이, 다수 여론에 따른다는 명분으로 지지를 이끌어내는 도구로 활용돼선 안 된다.


돌팔이 의사는 환자에 해(害)가 되지만 근시안을 가진 정치인은 나라와 국민에 위해(危害)를 가하게 된다. 정책의 모든 과정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절차를 충분히 거쳐야 한다.


수술실은 CCTV가 설치된 공공장소와는 다른 공간이다. 의료계 주장처럼 외래진료 일정과 수술 일정을 모두 공개하고, 수술에 참여하는 의료인 명단 사전 고지로 유령·대리수술은 막을 수 있다.


수술실이 아닌 입구에 CCTV 설치와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는 것만으로도 입법 취지를 충족할 수 있다.


코로나19가 확산된 대구 지역에 앞다퉈 내려간 의료인들 힘의 원천은 신념과 사명감, 그리고 의료인에 대한 사회적 존중과 신뢰에 바탕을 둔다.


수술실 CCTV는 유튜브로 수술을 공부하고 무자격자에게 환자 생명을 맡기는 일을 사라지게 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 되는 게 마땅하다. 신뢰에서 비롯된 양질의 의료서비스는 국민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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