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수가협상···실망스런 함수관계
장기전 치렀지만 의료계 단체 절반 '결렬'···향후 과제는
2020.07.03 10:22 댓글쓰기

“그 어느때보다 길고 어려운 협상이었다.” 2021년도 수가협상에 참여한 공급자와 가입자 단체가 남긴 감상의 공통점이다. 올해 시행된 수가협상은 코로나19 리스크와 맞물려 어느 때보다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섰고 결국 의원과 병원, 치과 결렬이라는 유형별 수가협상 이후 첫 사태를 맞게 됐다.

올해 수가협상은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의료계는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부담을 이유로 '통상적 협상과는 다른' 차원의 인상률을 주장할 것으로 보이지만 공단 측도 '국민경제 회복'을 들며 건강보험료 상승을 경계하는 입장을 내비쳤다.

5월 초 첫 상견례 자리에서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코로나19 사태는 내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통상적 수가협상 절차와 더불어 의료기관에 대한 지원 측면이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영호 대한병원협회 회장도 “수가협상을 위한 자료 검토조차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번 수가 협상을 통상적 협상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에 국민건강보험단은 ‘국민경제 회복’으로 맞대응했다.

김용익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코로나19 대응이 생활방역 단계로 접어든 것은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함께 국민경제 회복을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라며 “의료계의 어려움도 크고 보험료를 내야 하는 국민의 부담도 크기 때문에 쌍방 간 입장을 고려하며 협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수가협상 결과 예년보다 인상률이 높을 경우 공단은 보험료 상승에 따른 부담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국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과 매해 증가하는 적자분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아야 하는 셈이다.

이런 분위기는 공단의 첫 재정소위 이후로도 지속됐다.

회의 후 진행된 브리핑에서 최병호 재정운영위원장은 "코로나19 상황을 수가협상에 계량적으로 반영할 수는 없다"며 "(코로나19를) 고려하지 않아야 한다는 게 저의 생각"이라고 밝혔다.

최 위원장은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으로 수가를 올려달라는 것이 의료계 요구인데 그렇게 되면 자연히 가입자의 건강보험료를 올려야 한다는 결론이 된다. 공단 또한 요양급여 선지급 등으로 재정 상황이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데 그런 것까지 따지는 것은 재정위원회 권한이 아니다. 보험료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하는 것"이라며 "아예 코로나19를 배제하는 게 낫지 않나 싶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깨졌던 밴딩 ‘1조의 벽’을 넘지 못하는 결과가 될 가능성도 커지는 순간이었다.

최근 5년간의 밴딩 추이를 보면 ▲2015년 6685억원(2.22%) ▲2016년 6503억원(1.99%) ▲2017년 8143억원(2.37%) ▲2018년 8234억원(2.28%) ▲2019년 9758억(2.37%) ▲2020년 1조478억원(2.29%) 등 꾸준히 증가 추세였다.

이 가운데 전년 대비 유일하게 밴딩 폭이 축소됐던 때가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 진행됐던 2016년도 수가협상이다.

의료계에서 메르스로 인한 경영난을 호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밴딩이 전년 6685억원에서 6503억원으로 축소됐을 뿐만 아니라 대한병원협회의 경우 건정심에서 최종 수가인상률이 1.4%에 그치면서 수가협상단장을 비롯해 임원진이 사의를 표명하는 사태까지 이르기도 했다.

의료계는 코로나19에 따른 보상책을 기대하고 있지만 최악의 경우 예년 수준은 커녕 그에도 못 미치는 밴딩폭이 설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공단 수가협상단 측도 협상 막바지까지 코로나19와 수가협상을 연결짓는 것에 난처함을 드러냈다.

1차 협상 후 대한약사회 윤중식 보험이사는 “공단 측으로부터 ‘올해 수가는 지난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서 정한다’는 답을 들었다”며 “요양기관의 붕괴를 막아야 한다는 데는 공감했으나 코로나19 사태를 수가에 반영하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자료를 기반으로 한다는 것은 곧 올해 상황을 수치화해 수가 인상률에 반영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가능성을 전면 차단한 것은 아니지만 공급자 단체가 한목소리로 코로나19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과는 달리 다소 선을 긋는 태도였다.

“코로나19를 고려한다, 안 한다를 얘기하는게 큰 의미가 없다"고 피력했던 의협을 비롯한 공급자 측 수가협상단과의 동상이몽이 예측됐다.

분위기가 다소 누그러진 2차 재정소위 후도 비슷했다.

2차 재정소위 후 최병호 위원장은 “우리 기대와 의료계 기대가 다를 수 있겠지만, 당초 예상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의료계 어려움을 가입자 측에서 상당히 많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전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더불어 “가입자 입장에서도,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이 많고 수가가 이분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의료계가 (현 상황을) 버텨줘야 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다만 우리 기대와 의료계 기대치가 달라서 어떤 반응이 나올지는 모르겠다”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1차 때보다 추가소요재정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늘었다’의 정의가 서로 다를 수가 있다는 우려였다.

공단 강청희 수가협상단장은 당시 이를 두고 “재정소위가 공급자의 요구를 반영해 작년보다 다소 높은 밴드를 결정했으나 최종 밴딩도 이와 비례해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는 성급하다”라며 “수가협상은 원칙적으로 연구용역 결과에 따른 배분 기준을 적용하게 되므로 코로나19와 같은 특정 상황이 고려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그는 다만 “이번 사태를 고려한다면 재정위에서 전체 재정밴드를 견인하는 역할을 기대할 수 있겠다”며 여지를 남겼다.

공단이 이처럼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인 데는 지난해 수가협상의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도 있다. 1차로 공개된 밴딩 수치가 너무 낮아 공급자 측의 공분을 산데다 막상 끝에 가서는 두 배 높은 밴딩으로 계약이 체결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 때문에 관심이 쏠린 코로나19 이슈에 대해서도 마지막까지 중립적인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역시나’ 우려했던 대로였다.

협상 마지막날 자정을 훨씬 넘긴 새벽 3시경부터 체결과 결렬이 나뉘었다. 대한조산협회는 오전 3시30분경 4차협상에서 3.8%의 인상률로 가장 빨리 타결했다.

대한조산협회 김옥경 회장은 “그동안 기관 숫자가 작아 수가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는데 앞으로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연구를 통해 조산원 현실을 파악하고 더 나은 방식의 협상이 이뤄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의협은 새벽 3시53분경 6차 협상에서 부결을 선언했다. 인상률 협의에 있어 공단이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는 설명이다.

박홍준 단장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모르겠다”며 참담한 심경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거듭 말하지만 결렬을 목표로 한 적 없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 협상을 하자라고 했는데 거기에 대해(인상률) 협상이 불가하다고 건보공단이 말했다. 타협의 여지가 없다고 한 것”이라고 힐난했다.

이후 입장한 대한한의사협회는 4시 30분경 6차 협상에서 타결로 매듭을 지었다.

이진호 수가협상단장은 어두운 표정으로 “코로나19로 공급자와 가입자 모두 어려운 협상을 한 것 같다. 녹록치 않은 환경에서도 건전한 진료를 한 한의사들에게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며 짧은 소감으로 마무리했다.

5시30분경에는 대한병원협회가 부결을 선언했다. 송재찬 단장은 “회원들께서 기대를 많이 하셨을 텐데 만족시켜드리지 못한 점이 아쉽다. 공단과 재정위에서 배려를 많이 했다고 하지만 간극을 메우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뒤이어 입장한 대한치과의사협회도 결렬 선언과 함께 입장문을 발표했다. 치협은 “공단 측이 제안한 인상률이 보장성 강화 정책에 희생을 감수하며 적극 협조한 회원들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공단 수가협상단장인 강청희 급여상임이사는 “1차 인상률로 1.7%를 제시했다가 1.99%까지 올랐으나 가입자와 공급자 간 간극을 좁히지는 못했다”며 “의견 차이 해소와 설득을 위해 55차례에 달하는 만남과 협의과정을 거쳤으나 코로나19 대응 일선에 서 있는 병원·의원·치과 유형이 결렬돼 아쉬움이 남는다”고 밝혔다.

결국 어느 해보다 입장 차이가 컸던 양측은 마지막까지 간극을 좁히지 못한 채 돌아섰다.

표면상으로 보면 세 곳의 단체만 협상이 결렬됐지만, 이들이 전체 인상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0%에 달한다는 점에서 아쉬운 결말이 됐다.

2008년 유형별 수가협상이 시작된 이래 최초 세 단체 결렬, 의협은 3년 연속 결렬이라는 기록도 남았다. 과연 내년에는 이 같은 씁쓸한 기록을 뒤바꿀 만한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을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여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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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단은 07.03 17:02
    하나의 이익단체... 공단은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지. 의협아 목에 칼 대고 공단이랑 관계 끊어라. 공단 하수인 오릇하다 말라 죽으나, 목에 칼대고 피흘려 죽으나 죽는건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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