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장병원 고용된 의사 급여 '무조건 전액환수' 제동
대법원 '의사 협력 정도 등 공단 사실관계 살핀 후 금액 조절' 판결
2020.06.10 05:29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비의료인이 개설한 사무장 병원은 대표적인 생활 적폐로 꼽힌다. 현행법은 명의를 빌려준 의사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책임을 묻는다.
 

그런데 만일 사무장 병원 운영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의사와, 사무장에게 속아 명의를 빌려주고 본의 아니게 책임을 지게 된 의사가 있다면 이들에게 같은 처분이 이뤄져야 할까.


비의료인이 개설한 ‘사무장 병원’에 명의를 빌려준 의사에게 요양급여를 무조건 전액 환수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사무장 병원에 대한 요양급여 환수는 적법한 가운데, 의사가 실제로 취한 이득과 협력한 내역등을 따져 적정한 환수액을 정해야 한다는 첫 판단이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의사 A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급여비용징수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A씨가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환송했다고 9일 밝혔다.


A씨는 지난 2013년 사무장 병원에 명의를 빌려줬다는 이유로 건보공단으로 요양급여비용 전액 환수 처분을 받았다. A씨가 환수처분을 받은 금액은 51억원에 이른다.
 

현행 의료법 33조 2항은 비의료인의 의료기관 개설을 금지하고 있다.


이에 근거해 건보공단은 “비의료인이 개설한 사무장 병원이 청구한 요양급여비용은 부당이득징수 대상에 해당한다”며 환수처분을 한다.


1심과 2심은 이 같은 건보공단 처분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비의료인이 개설한 의료기관에 지급된 요양급여비용은 부당한 이득으로 전액 징수가 정당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사무장 병원에 대한 요양급여비용 징수 자체는 적법하지만, 징수액에 대해선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따라 그 정도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다.


대법원은 우선 “부당이득징수는 건보공단의 재량행위다”라고 못박았다.


하지만 ▲요양급여 비용의 액수 ▲의료기관 개설․운영 과정에서의 개설명의인의 역할과 불법성의 정도 ▲의료기관 운영성과의 귀속 여부와 개설명의인이 얻은 이익의 정도 ▲그 밖에 조사에 대한 협조 여부 등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명의를 빌려준 의료인에게 요양급여비용 전액을 징수하는 것은 ‘재량권 일탈’이라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바람직한 급여체계 유지를 통한 건강보험 및 의료급여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려는 관련법의 입법취지를 고려해야 한다”며 사무장 병원이라 할지라도 이미 이뤄진 의료행위에 대한 요양급여비용 전부를 받지 못하는 것은 침익적인 성격이 크다고 판단했다.


이사건 1심과 2심을 맡았던 김준래 변호사(법학박사, 前국민건강보험공단 선임전문위원)는 “사무장 병원 사건에서도 의사가 적극 협조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며 “이에 사무장 병원에 고용된 의사라면 무조건 요양급여비용 전액을 환수하는 것은 부당한 게 아니냐는 이견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번 판결은 대법원이 5년 동안 숙고한 끝에 나온 것으로 향후 사무장 병원에 명의를 빌려준 의사들에 대한 요양급여환수처분의 중요한 지침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대법원이 이번 판결을 통해 관련 법체계를 다듬어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풀이했다.


그는 “그러나 법체계는 국민적인 합의를 통해 형성돼야 하는 것으로 향후 국회에서 관련 입법보완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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