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겐 간식이지만 나에겐 생존식(食)이야!'
소아당뇨 청소년들 학교생활 고충 심화···'역으로 형사고소 당하기도'
2020.04.09 12:01 댓글쓰기

평생을 안고 살아야 하는 당뇨병. 어린아이들이 당뇨병에 걸리는 것은 희귀한 일이라고 알고 있지만 국내 소아·청소년 환자가 3~4만명에 이른다.

부모의 관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한참 민감한 나이인 만큼 소아당뇨병 환우와 가족 고충은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다. 2년 전에는 소아당뇨 아들을 위해 불법으로 연속혈당측정기를 수입한 엄마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반짝 관심을 받았지만 사회적 인식 부재는 여전한 상황이다.

모르는 것, 다른 것은 틀린 게 되고 약자인 환자들은 피해자가 되기 일쑤다.

지금도 많은 소아당뇨 환자들이 또래 학생들로부터 따돌림 등 괴롭힘을 당하거나 이를 피하기 위해 병을 숨기며 생활하고 있다. 

제1형당뇨병환자인 중학교 2학년 H군은 같은 반 친구에게 저혈당 간식을 뺏기는 등 오랜 시간 동안 괴롭힘에 시달리다 저항했다는 이유로 최근 형사고소를 당했다.

이들 소아당뇨 환자에게 저혈당 간식은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응급약과 같다. 이들이 저혈당 쇼크에 빠질 시 경련 및 의식저하, 이성적 판단 불가를 겪으며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른다.

주기적으로 저혈당 간식을 뺏으며 놀림을 이어온 A군은 H군이 당뇨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괴롭힘을 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침조회 후 H군은 심한 저혈당 증세를 느껴 젤리를 섭취하려 했으나 A군이 이를 빼앗아갔다. 이 같은 괴롭힘은 처음이 아니었다. A군의 괴롭힘은 H군이 중학교 1학년 2학기 수업을 듣기 시작한 때부터 시작됐다.

H군은 “2학기 초부터 저혈당 증상을 자주 느껴 간식을 넉넉히 소지하고 다녔다. 교무실이나 보건실에서도 간식을 준비해 주지만 저혈당이 심할 경우 그 곳까지 움직이기 힘들다. 수업에 방해되지 않도록 미리 대비한다”고 말했다.

그가 소지한 저혈당 간식들은 가방 안에 있었고 A군은 쉬는시간, 혹은 H군이 없을 때 간식을 몰래 가져간 것으로 전해졌다.

H군은 “간식을 갖고 있냐고 물으면 A학생은 거짓말로 일관했으며 사실이 밝혀진 후에야 허락 없이 가져간 것을 인정하곤 했다. 괴롭힘은 2학기가 끝날 때까지 주기적으로 일어났다”고 말했다.

반복된 괴롭힘에 지난해 11월 19일 H군은 여느 때와 같이 저혈당 간식을 뺏어간 A군에게 저항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을 하게 됐다.

H군은 “그동안 저혈당 간식을 빼앗긴 일뿐만 아니라 여러 괴롭힘이 떠올랐다. 저혈당 증세를 느끼면서 몸이 떨리는 상황에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A군의 얼굴을 5대 정도 때렸다”고 털아놨다.

이후 A군은 전치 2주 진단을 받았고, 교내학교폭력위원회(이하 학폭위)에 H군을 가해자로 신고했다.

학폭위가 열리기 전 A군은 진술서에서 자신이 H군의 저혈당 간식을 주기적으로 뺏었음을 시인했지만, 학폭위에서는 변호사와 함께 참석해 괴롭힘을 모두 부인했다.

학교폭력위원회에서는 A군 행위의 심각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고, 쌍방책임으로 결론내렸다. 두 학생 모두 서면사과와 접근금지 및 보복행위금지 처분을 받았다.

학폭위 진행과 판단을 납득할 수 없었던 A군 부모는 서울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 재심을 요청했다. 이에 A군 부모는 “괘씸하다”며 H군을 상대로 형사고소를 한 상황이다.

A군의 부모는 “아이가 젤리 하나 뺏은 것인데 그게 폭력을 행사할 만큼 잘못된 일이냐? 당뇨병이라고 해서 봐주려고 했는데 재심을 신청하다니 괘씸하다”는 입장이다.

H군 어머니는 “아이의 폭력에 대해서는 마땅히 처분을 받아야 하지만 환자가 저혈당 상태에서 지속적인 갈취와 놀림을 받은 끝에 폭력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반영돼야 한다”고 전했다.

법조계는 H군이 앓고 있는 제1형당뇨병 배경이 제대로 반영된다면 정당행위로 판단, 혐의 없음이나 기소유예를 받을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경찰 조서 작성 등 형사고소 과정과 형사고소를 당했다는 사실 그 자체에서 오는 정신적 피해를 H군은 피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복수의 변호사들은 “학폭위에서 재심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대로 판결했어야 했다”며 “이번 사건은 소아당뇨 환자들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동시에 학폭위 제도의 허술함을 보여주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선생님·학생들 소아당뇨 몰라, 학교 차원 지원 등 인식 개선 절실”

소아당뇨 환자가 학교에서 따돌림 등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여동생이 제1형소아당뇨를 앓고 있는 여고생 A양은 공개석상에서 “동생이 또래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상황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고 말했다.

이 학생은 “환자라는 이유로 학교 폭력에 쉽게 노출된다. 학교에서 소아당뇨 환자에게 중요한 골든타임을 알고 배려하는 것에 대해 학생들이 불만을 갖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어 “같은 반 친구들이 단톡방을 이용해 사이버폭력을 행하고 연속혈당측정기를 뜯는 물리적 폭력을 가한 적도 있다. 이에 동생은 환청, 환각에 시달리며 입원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소아당뇨에 대한 인식 부재는 비단 학생들만이 아니다.

이 여고생은 “동생에게 인스턴트를 많이 먹어 당뇨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하는 선생님도 있었다”며 “체육교사, 영양교사 등 선생님들부터 당뇨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일침했다.

초등학교 재학 중인 제1형소아당뇨환자 B학생은 최근 친구들의 놀림에 못이겨 서울에서 지방으로 학교를 옮겼다.
B학생은 “당뇨를 앓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교에서 친구들의 놀림이 시작됐다”고 토로했다.

현재 전학 간 학교에서 당뇨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면서 생활하고 있다.

그는 “예감이 안 좋아서 친구들한테는 (당뇨를 앓는 사실을) 비밀로 하고 있다. 중학생 때는 알려줄까 싶지만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김미영 대표는 “소아당뇨 환자가 학교에서 또래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는 허다하다”며 심각성을 전했다.

그는 “병을 앓는 게 알려지면 괴롭힘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아 소아당뇨 환자들이 화장실에 숨어 인슐린 주사를 맞고 병을 숨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소아당뇨 환자에게 목숨과 같은 주스, 사탕, 초콜릿 등이 보통 학생들에게는 단순한 군것질거리로 인식되는 게 문제”라며 “최소한 같은 반 아이들에게는 제대로 교육을 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특히 “제1형당뇨병환자를 저혈당 간식으로 괴롭히는 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제대로 반영해서 처벌을 내려야 된다”고 덧붙였다.

의료진 또한 같은 반 학생들과 교사에게 환자의 병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분당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김재현 교수는 “결국 병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며 “어른들이 먼저 병에 대해 잘 숙지한 다음 교육을 통해 아이들에게 알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당뇨병 환자가 학교에 1명도 없는 상황, 교사 생활 중 1번도 못보는 상황이 많아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라며 “전반적으로 당뇨병에 대한 인식 개선이 가장 시급하다”고 말했다.

대한당뇨병학회 김대중 홍보이사는 “선생님, 학생들 모두 소아당뇨에 대해 모른다. 드문 질환이라는 이유로 알아야 할 동기가 적은 것도 문제다. 가끔씩 뉴스에서 접할 뿐”이라고 전했다.

이어 “소아당뇨 아이들이 잘 지내려면 학교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며 “유치원이든, 학교든 환자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환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과보호 역시 문제다. 체육활동, 소풍 등에서 배제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이는 명백히 비의학적인 행동이다. 인슐린 주사만 잘 맞으면 소아당뇨 환자들도 무리없이 활동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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